‘악기당 하나의 협주곡만 작곡한다’ 원칙 깨뜨린 진은숙

카바코스 연주에 반해 20년만에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세계 초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1.06 10:09 | 최종 수정 2022.01.06 10:26 의견 0
작곡가 진은숙이 20년 만에 작곡한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정적의 파편(Shards of Silence)’이 6일 오후 7시 영국 런던 바비칸홀에서 세계 초연된다. Ⓒ통영국제음악재단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작곡가 진은숙에겐 ‘악기당 하나의 협주곡만 작곡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는 이런 신념에 대해 “모든 신작에는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 숱한 교향곡으로 다져진 음악사에 새로움을 추가하는 건 거대한 도전이고, 악기와 화성을 연구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무결점의 집요한 작곡 세계관을 보여준다.

진은숙이 원칙을 깨뜨렸다.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표한지 20년 만에 새로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정적의 파편(Shards of Silence)’을 무대에 올린다. 6일 오후 7시(현지시간) 영국 런던 바비칸홀에서 세계 초연된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리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협연한다. 2002년 베를린필하모닉 상임지휘자였던 래틀은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초연했다.

진은숙이 마음을 바꾼 것은 순전히 카바코스 때문이다. 그는 “카바코스의 강렬한 개성과 연주할 때 음악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걸 보고 원칙을 깨기로 결정했다”며 “두 번째 협주곡은 완전한 침묵과 폭발하는 화음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등 첫 번째 협주곡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적의 파편’은 카바코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셈이다.

그리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진은숙의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정적의 파편’을 세계 초연한다. 사지은 지난 2020년 1월 서울시향과 협연하고 있는 카바코스. Ⓒ서울시향


카바코스는 깊이 있는 연주로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다. 18세이던 1985년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88년 미국 나움버그 콩쿠르, 파가니니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2014년 독일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의 ‘올해의 음악가’상을 받았다.

이번 신작은 미국과 독일에서도 선보인다. 미국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는 3월 3일 보스턴심포니홀, 4월 14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한다. 27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는 3월 31일 들려줄 예정이다.

진은숙은 현대 클래식 음악의 세계적인 작곡가로 통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친누나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뒤 독일 함부르크 음대에서 죄르지 리게티(1923~2006)를 사사했다.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으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2005년 아놀드 쇤베르크상, 2010년 피에르 대공 작곡상, 2012년 호암상, 2017년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명성을 쌓았다. 지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공연을 기획해 한국 현대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서울시향에서의 성공 사례는 외국에서도 주목해 지난 2011년부터 올해까지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오늘의 음악(Music of Today)’ 시리즈 공연을 기획했다.

작곡가 진은숙이 20년 만에 작곡한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정적의 파편’이 6일 오후 7시 영국 런던 바비칸홀에서 세계 초연된다. Ⓒ클래식비즈 DB


2020년 1월 덴마크 최고영예인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했다. ‘레오니 소닝 음악상’은 첫 수상자였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벤자민 브리튼, 올리비에 메시앙, 마일스 데이비스, 죄르지 리게티, 피에르 불레즈 등 거장 작곡가들이 받았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진은숙은 올해 3월부터 2026년까지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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