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챙기고 부실오페라 만들면 페널티 부과해야” 최연소 오페라단장 그레이스 조의 직격

쓰러져가는 단체 맡아 뉴아시아오페라단으로 간판 바꿔 점프업
외부지원 없이 100% 자체재원 ‘카르멘 갈라콘서트’ 기적의 공연
오페라에 디제잉·팝페라 접목 등 톡톡 아이디어 새로운 활력
“클래식 문턱 낮추려 유명 아리아 재즈버전으로 연주” 새 도전

박정옥 기자 승인 2022.10.19 17:32 | 최종 수정 2022.10.19 17:35 의견 0
뉴아시아오페라단의 그레이스 조 단장은 “클래식 문턱을 낮추려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재즈버전으로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굿스테이지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건물을 지었는데 부실이 발생하면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묻잖아요. 오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았는데 결과물이 시원찮으면 반드시 페널티를 부과해야 합니다. 그래야 허튼짓 안하고 최고의 공연을 만들 수 있어요.”

뉴아시아오페라단의 그레이스 조 단장은 첫마디부터 직격탄을 날렸다.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오페라는 많은 사람이 매달려야한다. 대표적인 종합예술이다. 성악가, 오케스트라, 연출, 의상, 미술, 분장, 조명 등 수백 명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작품 하나가 나온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든다. 민간 오페라단이 100% 재정자립도를 갖추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여러 곳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환경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어느 정도 ‘비빌 언덕’ 역할을 한다. 예술은 모든 사람이 향유해야 하는 ‘공공재’ 임을 인식하고 지원을 하는 것이다.

최근 제주에서 만난 조 단장은 ‘누워서 침 뱉기’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용감하게 지적했다. 그는 “많은 예술단체들이 돈만 받아 챙기고는 정작 작품성은 뒷전인 날림공연을 쏟아내고 있다”며 “관리하고 감독해야할 관청도 사후적으로 살펴보지 않아 병을 더 깊게 했다”고 진단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오페라단에 있다고 했다. 욕심을 부려 무리하게 공연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오페라단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고, 관청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했다. 전국에 있는 오페라단 중 최연소 단장임에도 똑 부러지게 지금의 오페라 시장을 꿰뚫었다.

“오페라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처음부터 한몫 챙기겠다는 돈벌이 마인드로 접근하면 반드시 ‘폭망’입니다. 무조건 작품이 좋아야 해요. 이게 기본이죠. 기본이 돼야 성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투자비용이 필수인데, 이것조차 내놓지 않고 얼렁뚱땅 그냥 남의 돈으로 무임승차 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재정상태도 솔직히 공개했다. 금융권에서 얼마를 대출 받아 종잣돈을 만들었는지 밝혔다. “열심히 한 덕분에 아직까지는 연체하지 않고 이자내며 버티고 있다”며 “언제가 무대가 나를 먹여 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미래의 꿈에 투자하고 있다”며 웃었다.

오페라 시장을 갉아먹는 날림공연을 막을 비책도 제시했다. 그는 “공연 모습을 반드시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겨야한다”며 “이런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후검열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예술가라면 그 누구보다 자기검열에 철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예술단체들은 자기들만의 고유한 색깔이 있잖아요. 행정가들은 그것을 적극 키워줘야 합니다. 국민의 귀중한 세금을 가지고 ‘내 말 들어요’라며 그냥 흔들어대면 안됩니다. 각자의 예술적 개성을 인정해주고 어시스트해줘야 합니다.”

뉴아시아오페라단의 그레이스 조 단장은 “클래식 문턱을 낮추려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재즈버전으로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굿스테이지 제공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다. ‘소프라노 그레이스 조’의 출발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지금은 없어진 부산KBS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가면서 입문했다. 부산예고를 거쳐 경성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마그니타 글린카 국립음악원서 연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로 돌아와 소프라노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기획 업무도 병행했다. 공부 본색은 끝이 없었다.

2013년 ‘단장 그레이스 조’로 터닝포인트했다. 당시 부산소극장오페라앙상블이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경영상황이 악화되자 한번 맡아서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SOS 요청이 왔다. 당연히 망설였다. 공연의 A~Z를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여곡절 끝에 오페라단을 맡은 것이 서른다섯 살 때였어요. 사실 ‘오’자(50대) 달고 ‘육’자(60대) 달고 시작해야지 했는데, 너무 일찍 들어섰죠. ‘넌 할 수 있다’ ‘그래 젊었을 때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 해보자’라고 끝없이 자기최면을 걸었어요. 그래서 덥석 받았죠. 오페라 단장의 탄생은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왔죠.”

아예 간판을 바꿔달았다. 부산서 서울로 진출하는 오페라단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자는 목표를 설정해 ‘뉴아시아오페라단’으로 이름을 교체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명함에 자신의 이름도 본명 ‘영희’ 대신에 ‘그레이스’로 바꿔 넣었다.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역시 2013년 첫 공연이었던 ‘라 트라비아타’. 그때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해산하기 바로 직전까지 모든 연습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자신도 몰랐던 독종 정신을 발견한 시기였다며 웃었다. 지금은 ‘낄끼빠빠’를 잘하지만, 당시엔 모든 연습과 회의에 다 참석했다. 그렇게 해야만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연은 잘 끝났어요. 아이를 낳은 지 나흘 만에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연달아 공연장에 나가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했어요.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조금이라도 커버해볼 요량으로 한복을 입었죠. 그리고는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졌어요. 많이 힘들었죠. 세상에 작품 하나를 내놓는다는 게 열 달을 품은 아이를 낳는 고통과 똑같지만, 또 한편으론 생명을 얻는 기쁨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도 이때 찾아왔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 두 분과 여성 한 분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오페라가 영화보다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어줘 고맙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오페라를 만드는 게 정말 필요한 작업이구나, 신의 선물 같은 일이구나’라고 오히려 제가 울컥했어요.” 팬들의 이 귀중한 멘트는 그가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에너지가 됐다.

공연 준비를 하면서 조 단장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식사다. 단원들과 소통하는 최고의 무기는 ‘밥’이다. “연습을 할 때면 늘 도시락업체와 오랜 시간 통화를 해요. 이건 저의 오랜 노하우입니다. ‘오늘 반찬은 이걸로 해주세요’ ‘디저트는 저걸로 해주세요’라며 꼼꼼하게 챙깁니다. 저희 오페라단은 유명한 맛집입니다.”

뉴아시아오페라단은 그동안 부산 지역을 거점 삼아 굵직한 무대를 연속해서 선보였다. 지금은 제주까지 포함해 전국구로 활동하고 있다. ‘박쥐’ ‘리골레토’ ‘존 조반니’ ‘라보엠’ 등을 무대에 올렸다. 조 단장은 틀에 박힌 오페라를 벗어나 재미있는 오페라를 지향한다. 2018년도다. 부산의 랜드마크가 될 오페라하우스 기공 기념 오페라 공모에서 전막 부문 대상자로 선정돼 그해 12월 ‘라 트라비아타’를 다시 공연했다. 이 공연이 핫이슈가 됐다.

“뻔한 작품으로 승부하기 싫었어요. 오리지널에 가장 근접한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페라의 메카인 이탈리아에서 의상과 무대장치 등을 직접 공수했죠. ‘보여줄 거면 제대로 보여주자’라며 사이즈 있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제대로 돈을 썼죠.”

공연은 빅히트했다. 특히 조명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오죽하면 “마이클 잭슨 공연하냐”며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 가장 큰 성과는 스스로 부족한 실력을 자각한 것이다. 그래서 오페라 연출을 배웠다. 쭈뼛 쭈뼛 눈치 보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번갯불에 콩볶듯 이탈리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비록 5개월 짧은 기간이었지만 로마 아레나 아카데미아에서 최고 연출 과정을 졸업하고 내친김에 예술경영과정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뉴아시아오페라단의 그레이스 조 단장은 “클래식 문턱을 낮추려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재즈버전으로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굿스테이지 제공


그는 지난 8월 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30부산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는 오페라 갈라 콘서트 ‘카르멘’을 열었는데, 지자체의 재정지원 없이 티켓 판매 등으로만 수지를 맞췄다. 100% 자체 재원으로 ‘기적의 무대’를 올린 것. 무려 98%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작품만 좋으면 오페라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조 단장은 도전정신이 충만하다. 지난 몇 년간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로 작품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기본과 기준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끝없이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오페레타 ‘박쥐’를 공연했을 때다. 이야기의 배경을 현대의 부산으로 각색했다. 원작에서는 첫 장면이 무도회장인데, 조 단장은 LED 조명이 반짝이는 해운대의 한 클럽으로 바꿨다. 거기에 더해 유명 인기 DJ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곡을 디제잉 퍼포먼스로 선보여 참신한 무대를 연출했다.

얼마 전 공연한 ‘카르멘’ 갈라 콘서트 역시 재치가 번뜩였다. 대규모 합창단은 없었지만 합창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팝페라 그룹을 등장시켜 박수갈채를 받았다. 처음엔 모두들 반대했지만 막상 공연을 마치자 “무대가 풍성했다”고 칭찬이 이어졌다. 사실 갈라 콘서트는 ‘신경 안쓰는 공연’ ‘정성 안들이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인데, 이 재미없는 공연을 화끈한 공연으로 만들었다. 그레이스 조의 매직이다.

그는 “각계각층이 다양하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융복합에 늘 관심을 기울인다. 전통적인 오페라 무대를 추구하지만 작은 음악회나 하우스 콘서트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병행한다. 세계 한상 대회 개막식과 폐막식 음악 연출, 체육인의 밤 기획 등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앞세워 콜라보 공연을 과감하게 시도한다.

조 단장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체스154’라는 그룹을 만들어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여기에는 밴드팀, 타악팀, 현악앙상블팀, 팝페라팀 등이 있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이어지며 종횡무진 실력을 뽐내고 있다. 유학생활을 하고 왔지만 마땅히 설 무대가 없었던 아픔을 떠올리며 후배들은 그런 길을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고용창출에도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오리지널 오페라도 열심히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아리아 등 클래식 곡들을 재즈화하고 싶어요. 정통성으로만 승부하면 안통합니다. 아리아 자체를 모던하게 편곡해 대중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리아를 알게 되면, 스토리를 알게 되고, 결국은 오페라로 오게 될 겁니다.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모험이 오페라 시장에도 필요합니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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