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는 오페라 개혁의 선구자였던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1714~1787)의 대표작이다. 복잡하고 장식적인 바로크 오페라에서 벗어나 음악과 극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인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한 첫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무와 바위까지 감동시키는 하프의 명인 오르페우스는 갑작스럽게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해, 그를 찾아 지하세계까지 내려간다. 아내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가지만 “지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경고를 어겨 결국 비극적 결과를 맞이한다.
하지만 글룩의 오페라에서는 새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오르페오가 신을 감동시켜 에우리디체와 함께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간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오페라에 맞게 이탈리아식으로 바꿨다. ‘오르페우스’는 ‘오르페오’로, ‘에우리디케’는 ‘에우리디체’로 표기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장수동 단장이 이끌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의 세계화’를 모토로 내세운 단체다. 이런 의미 있는 일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스토리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을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서울*오르페오’다.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12월 5일과 6일 공연했다.
‘서울*오르페오’는 뿌리가 깊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2010년부터 오리지널 버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수차례 무대에 올렸다. 특히 2015년 밀라노세계엑스포 초청공연, 2018년 한국오페라70주년 기념오페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해 주목을 받았다.
이런 성과를 기초로 전체적인 구성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따르고 있지만 제주 신화 ‘바리데기’와 민간신앙 ‘씻김굿’ 등을 융합해 실험적 양식의 새로운 오페라로 만들었다. 이게 2022년 CJ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한 ‘오르페오-그 영혼의 노래’다. 이번에 선보인 ‘서울*오르페오’는 그동안의 업그레이드를 반영한 최신 버전이다. ‘이어도’ ‘저승 명부(冥府)’ ‘농악’ 등 우리 전통 설화와 문화가 가미됐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하루 이용객 600만명의 서울 지하철이 멈춘 새벽 2시. 광화문 지하철역 선로 위에 피 묻은 면사포가 놓여있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악사 ‘바라’(오르페오)는 지하철 사고로 죽은 연인 ‘세화’(에우리디체)의 영혼을 달래주려고 연주한다. 통곡하는 바라 앞에 노숙인 차림의 ‘종달’(아모르)이 나타난다. 종달은 바라의 애절한 사랑에 감복했다며 세화가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조건의 단 한 가지,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녀를 돌아보면 안된다”였다.
바라는 오염된 검은 강을 건너 환상의 섬 이어도에 당도해 ‘구원의 노래’를 부른다. 바다문이 열리고 마침내 세화와 재회한다. 두 사람은 이어도에서 나와 다시 검은 강을 건너 광화문 지하철역에 이른다. 그러나 세화는 바라가 끝내 자기를 보지 않고 외면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이 식었다’라며 다툰다.
결국 바라는 종달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바라보고, 그 순간 세화는 싸늘하게 죽어간다. 세화의 뒤를 따라 바라가 자결하려는 순간, 무녀로 변한 종달이 나타나 지하철 노숙인들과 ‘상생의 노래’를 부른다. 마침내 바라의 사랑에 하늘이 감동한다.
번안·연출을 맡은 장수동은 오르페오를 ‘바라’로, 에우리디체를 ‘세화’로, 아모르를 ‘종달’로 바꿔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리스 신화를 한국 신화로 재해석한 솜씨가 놀랍다. 장소도 이승과 저승에서 지하철 광화문역과 이어도 등으로 바꿨다. 하지만 주제는 동일하게 ‘불멸의 사랑’이다.
‘서울*오르페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양 오케스트라와 국악의 결합이다. 기존 오케스트라에 대금/소금, 피리/생황, 해금, 25현 가야금 등을 추가했다. 작곡가 신동일이 편곡 작업에 참여했다. 양악과 국악의 합주는 이질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들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오르페오’를 공연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지휘는 지난 8월 양주시립교향악단 지휘자로 취임한 권성준이 맡았다.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를 졸업한 그는 오페라 지휘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 말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연주 서울오페라앙상블오케스트라. 합창지휘 박용규(노이오페파코러스), 안무 김평호(김평호댄스프로젝트), 오페라코치 김보미·윤빛나.
남편 ‘오르페오’에 해당되는 ‘바라’는 남성이 맡기도 하고, 여성(바지 역할)이 맡기도 한다. 첫날 공연은 카운터네너 지필두가 맡았고, 둘째 날은 메조소프라노 현서진이 맡았다. 현서진은 지난 8월 공개오디션을 통해 주역을 꿰찼다. 부인 ‘에우리디체 세화’ 는 소프리노 손주연과 김은미가, ‘아모르 종달’은 소프라노 이한나와 이주리가 캐스팅됐다.
문화예술평론가 남정숙은 바라와 세화의 탈출 장면에서 나오는 이중창 앙상블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을 알고 시작한 바라는 세화를 구원해야 하는 ‘절박함’과 비밀을 숨겨야 하는 ‘고통’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고, 세화는 반대로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런 하이라이트 부분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지 않았다”고 평했다.
또한 “무용단과 남사당의 융합은 한도를 넘는 낯설음을 드러냈다”며 “향후 글로벌 작업을 위해서 다양한 공연 스킬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긍정적인 면도 짚어줬다. 그는 “고전 오페라를 국악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도시적이고 아포칼립스적인 현대로 치환했다”라며 “여전히 사랑은 죽음을 초월할 가치가 있다는 핵심 주제를 시대를 넘어 일관적으로 이끈 점은 ‘서울*오르페오’가 보여준 가장 큰 음악적 힘이었다”고 말했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