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굴거리나무’ 원시적 생명력에 꽂히다...김진숙 작가가 그린 제주의 표정

4월3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가이아 ‘유동적인 기억’ 개인전

박정옥 기자 승인 2022.03.21 00:01 의견 0
‘곶자왈’과 ‘굴거리나무’의 원시적 생명력을 그리는 김진숙 작가의 개인전이 오는 4월 3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서 열린다. Ⓒ갤러리가이아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김진숙 작가는 지난 2016년 여름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삼다도(三多島)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곶자왈’이다.

곶은 ‘숲’을,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뜻한다. 널브러진 돌무더기 탓에 농사를 짓지 못하고 방목지로 쓰거나, 땔감을 얻거나, 약초 등의 식물을 채취하는 곳으로 이용됐다. 한마디로 토지 활용도가 낮은 ‘돈 안되는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광받는 핫 플레이스로 승격했다. 뒤늦게나마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용암이 만들어 낸 요철 지형은 지하수를 가득 품고 있다. 내린 빗물이 자연스럽게 대지에 스며들면 그것을 가두는 물탱크 역할을 한다.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다양하게 공존하며 숲을 이루고 있다. 생태계 허파 노릇을 하는 셈이다. 이젠 당당하게 ‘귀한 땅’이 됐다.

김 작가는 이 야생의 숲이 뿜어내는 생명력 넘치는 풍요에 매혹돼 곶자왈을 그린다. 원시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무, 풀, 꽂, 바람 등 아름답고 거침없고 풍성하고 소박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홀렸다. 날것 그대로의 요소들이 주는 경쾌함, 그리고 맑고 깨끗한 색채와 빛이 그림에서 아름답고 화려하게 구현된다.

‘곶자왈’(사진)과 ‘굴거리나무’의 원시적 생명력을 그리는 김진숙 작가의 개인전이 오는 4월 3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서 열린다. Ⓒ갤러리가이아


김 작가는 지난 15일 인터뷰에서 “천년의 시간이 쌓인 곶자왈에서 형광색 컬러를 발산하며 뻗어나가는 덩굴과 이끼, 그리고 키 작은 고사리를 보면 ‘아~ 살아 있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된다”며 “원시의 생명력을 간직한 숲을 걸으면서 만나는 이런 다양한 색을 품은 풀과 나무의 ‘선들의 중첩’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초기 작품은 지금의 것과 차이가 난다. 일상의 거리에서 만나는 풍경을 직선의 빛으로 가득한 도시의 세련된 공간으로 표현해왔다. 거리의 풍경은 안과 밖의 사물들이 중첩되어 섞이며 새로운 ‘사이공간’이 드러난다. 안도 밖도 아니면서 동시에 안이기도 밖이기도 한, 그 사이공간 속에서 풍경은 서로 혼합돼 은유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없는 역설적인 도시의 사이공간을 담아냈던 그의 세련된 선들은 이제 자연의 깊고 충만하고 생명력 넘치는 선이 되어 곶자왈이 쏟아내는 원초적인 힘으로 가득하다. 감정을 감추지 않은 화려한 색채는 화면에 빛을 쏟아내듯 넘실댄다. 그리하여 작가의 작품 주제는 한데 덩어리져 있는 곶자왈의 풍요로 바뀐다.

‘곶자왈’과 ‘굴거리나무’(사진)의 원시적 생명력을 그리는 김진숙 작가의 개인전이 오는 4월 3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서 열린다. Ⓒ갤러리가이아


그는 제주의 숲에서 원시의 호흡을 내뿜는 풍부한 자연을 만나고, 그 찰나의 순간은 작가의 내공 있는 중첩된 선과 풍부한 색채를 통해 고정된 정물 풍경이 아니라 꿈틀대는 빛과 생동감 가득한 살아있는 풍경이 된다. 초기부터 작가가 풀어낸 ‘유동적인 기억’의 연장선상에서 제주 숲그림 연작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곶자왈만큼이나 그의 그림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굴거리나무’다. 줄기가 핏줄처럼 항상 붉은 빛을 띠고 있어 역시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한라산의 눈을 흠뻑 맞았으면서 푸릇함을 잃지 않고 붉은색 줄기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김 작가의 생명력 넘치는 곶자왈과 굴거리나무를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오는 4월 3일(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서 ‘유동적인 기억-제주 숲(Liquid Memory-Forest on the Island)’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곶자왈’과 ‘굴거리나무’의 원시적 생명력을 그리는 김진숙 작가의 개인전이 오는 4월 3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서 열린다. Ⓒ갤러리가이아


갤러리아 가이아 윤여선 관장은 “공간을 깊이 있게 풀어내는 도시의 작가가 제주로 집을 옮긴 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분투하며 그려낸 곶자왈은 온갖 색채와 빛으로 가득한 생명력 넘치는 작품을 탄생시켜 감동적이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많은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2017년에는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시를 가진 바 있다. 뉴욕, 마이애미, 휴스턴, 홍콩, 싱가포르 등의 해외 아트페어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 탄탄한 실력을 가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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