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모라우가 안무·연출을 맡은 ‘아파나도르’가 오는 4월 30일과 5월 1일 GS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GS아트센터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마르코스 모라우(1982년생)는 현재 유럽 공연계가 가장 주목하는 아티스트다. ‘현대 무용계의 슈팅스타’ ‘현대 공연계의 비저너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출신인 그는 기괴한 상상력, 독특한 움직임, 다양한 매체 활용으로 현대무용 안무가로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모라우는 ‘춤을 못추는 안무가’다. 무용 전공자가 아닌 그는 사진과 움직임, 연극을 공부한 이력의 영향으로 기존 무용 관습에서 볼 수 없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왔다. 2004년 ‘라 베로날(La Veronal)’ 컴퍼니를 창단해 문학, 영화, 연극, 무용 등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과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2013년 스페인 최고 권위의 국립 무용상 최연소 수상, 2023년 독일 무용전문잡지 ‘탄츠 (Tanz)’ 올해의 안무가에 선정됐다.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베를린 국립 발레단, 리옹 국립오페라발레단,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 등 유수 무용단과의 작업에 이어 2026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 안무 데뷔를 앞두고 있다.

두서너 명의 전방위 창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다양한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GS아트센터의 기획공연 ‘예술가들’의 첫 주인공은 스페인 출신의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다. ⓒGS아트센터 제공


“나는 어떻게 하면 무대를 모든 종류의 예술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전장(battlefield)으로 구현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마르코스 모라우)

GS아트센터는 오는 4월 24일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개관 공연에 이어 마르코스 모라우의 대표작 세 작품을 잇따라 선보인다. GS아트센터는 ‘경계 없는 예술-경계 없는 관객’을 모토로 여러 장르를 연결한 다층적·입체적 예술 경험 제공을 목표로 한다. 매년 장르 경계 없는 작품으로 예술 경험을 확장해 온 두서너 명의 전방위 창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다양한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기획공연 ‘예술가들’을 준비했다. 올해 ‘예술가들’ 시리즈는 스페인의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각예술가·연출가 윌리엄 켄트리지다.

●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 & 마르코스 모라우 ‘아파나도르’(4월 30일·5월 1일)

마르코스 모라우가 안무·연출을 맡은 ‘아파나도르’가 오는 4월 30일과 5월 1일 GS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GS아트센터 제공


2023년 12월,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 제작으로 세비야에서 초연된 ‘아파나도르(Afanador)’는 콜롬비아의 저명한 사진작가 루벤 아파나도르가 플라멩코 무용수들을 찍은 흑백 사진집 ‘집시 엔젤’(2009)과 ‘천 번의 키스’(2014)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한 작품이다.

아파나도르는 안달루시아의 강렬한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그림자의 독특한 인상으로 이스라엘 갈반, 마틸데 코랄, 루벤 올모와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플라멩코 무용수들을 인상적인 흑백톤으로 담아내었고, 모라우는 아파나도르의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에서 받은 영감, 플라멩코와 무용수들을 향한 깊은 경외, 사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작품에 쏟아내며 ‘아파나도르’를 탄생시킨다.

“루벤 아파나도르는 플라멩코를 찍은 사진가고, 나는 컨템포러리 영역에서 공연을 만드는 안무가다. 이것은 무용 작품으로서 ‘아파나도르’가 전통과 아방가르드라는 두 가지 사이의 긴장 관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마르코스 모라우)

모라우는 플라멩코의 상징인 붉은색을 과감히 배제하고 흑과 백,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아파나도르가 연출한 사진 속 플라멩코의 이미지를 자신만의 세계로 확장한다. 30여명의 무용수들은 스튜디오가 된 무대에서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 사진의 일부가 되고, 무대는 투우장 같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무용수의 강한 에너지와 긴장감 있는 군무는 사진에서 출발한 플라멩코의 환상적 세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1978년에 설립된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은 스페인 전통 무용의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명문 무용단이다. 젊은 안무가들과 협업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고, 다양한 예술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해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의 스페인 무용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플라멩코 안무 경력이 없는 모라우에게 작품의 연출과 안무를 의뢰한 것은, 발레단의 이러한 의지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은 호아킨 코르테스, 안토니오 루이스 솔레르, 아이다 고메즈와 같은 전설적인 플라멩코 무용수들의 산실이었으며, 오늘 날에도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 그 예술성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인 단원으로는 2019년 아시아인 최초로 입단한 윤소정(1994년생·코르드발레)이 있다.

2019년부터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루벤 올모는 그 자신도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의 솔로 댄서 이력을 지닌 스페인의 대표 무용수로, 2015년 스페인 국립 무용상과 2014년 막스상을 수상했다. 작품의 영감이 된 아파나도르가 촬영한 흑백 사진 속 주인공(플라멩코 무용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한국·스페인 수교 75주년 기념 공식 초청작 중 하나로, GS아트센터에서 4월 30일·5월 1일, 여수 예울마루에서 4월 24·25일 공연된다. 예매는 GS아트센터 홈페이지와 인터파크에서 가능하다.

● 라 베로날 컴퍼니 & 마르코스 모라우 ‘파시오나리아’(5월 16~18일)

마르코스 모라우가 안무·연출을 맡은 ‘파시오나리아’가 오는 5월 16~18일 GS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GS아트센터 제공


‘아파나도르’가 전통 플라멩코 안무를 모라우의 현대적 시선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라면, ‘파시오나리아(Pasionaria)’는 모라우의 안무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단체 ‘라 베로날’과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그의 독특한 안무적 특징이 잘 드러난다. 작품 제목 ‘파시오나리아’는 스페인어로 ‘열정의 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고통’ ‘수난’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을 지니고 있다. 모라우는 이 이중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강조해 강요된 진보가 만들어낸 인간의 미래를 파시오나리아 행성을 통해 그려낸다.

‘파시오나리아’의 미색 무대 풍경에는 상자를 든 배달원, 진공청소기를 든 남자 등 일상을 살아가는 8명의 무용수들이 감정 없이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인다. 이들에게서는 감정도, 생각도, 논리도 찾아볼 수 없다. 무용수들의 신체는 기묘하고 왜곡된 형태로 연출되는데, 이는 모라우와 라 베로날 무용수들이 수년간 연구한 ‘코바(Kova)’ 메소드를 통해서 표현된다.

핀란드어로 ‘단단한’이라는 뜻을 가진 코바는 감정이 억제된 신체에 로봇을 연상시키는 움직임과 긴장도 높은 동작을 주로 활용한다. 이 작품에서는 ‘코바’를 핵심 안무 스타일로 삼되, 그 과감한 표현에 비해 표정과 자세, 손의 위치, 시선은 섬세하게 통제한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으로 시작해 ‘마태 수난곡’으로 끝나는 음악적 흐름을 통해 감정이 부재한 세계를, 감정의 절정에 치닫는 음악들이 감싸게 함으로써 무대 위 존재들의 공허함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감정의 스위치를 내리고 타인들과 최소한의 피상적인 접촉만을 하고자 하죠. ‘파시오나리아’는 모두가 단절되고 도움을 구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입니다.”(마르코스 모라우)

● 라 베로날 컴퍼니 & 마르코스 모라우 ‘죽음의 무도: 내일은 물음이다’(5월 17·18일)

마르코스 모라우가 안무·연출을 맡은 ‘죽음의 무도: 내일은 물음이다’가 오는 5월 17·18일 GS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GS아트센터 제공


‘죽음의 춤’이라는 뜻의 ‘토텐탄츠(Totentanz)’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 편재했던 전통춤이자, 죽음을 기리는 일종의 의식이다. 모라우는 죽음이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부르주아와 노예 구분 없이 평등해지는 상황임에 주목하며, 모두 함께 마지막 날 죽음의 춤을 추는 상상을 펼쳐 보인다.

죽음과 삶을 상징하는 듯, 무대는 이질적으로 대비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리듬과 몸짓, 빛(색)과 소리로 채워진 실험적인 공간에서 마이크, 영상 등의 현대적 도구가 향로와 대야라는 전통 제례 오브제와 만나 감각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면서, 강력한 에너지로 흩어졌다 뭉치기를 반복하며 죽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한다.

“전쟁과 변화, 이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죽음과 우리가 어떻게 관계 맺는지 말하는 이 대중적인 춤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마르코스 모라우)

이 작품은 2025-2027년 트리엔날레 밀라노 텔 아트로의 상주 예술가로 선정된 모라우의 장소 특정적 작품이다. 모라우는 죽음 앞에서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관객과 무용수가 동일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했다. 작품은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카탈루냐 성당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됐으며, 관객들은 무용수들과 함께 움직이며 어느새 공연의 일부가 된다. 어둠이 내린 시간, GS아트센터 메인 로비, 100명의 한정된 관객만을 위한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