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 없어 발가락으로 세상을 분다...펠릭스 클리저 인간승리 호른 리사이틀

11월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공연...피아니스트 조재혁 반주

민은기 기자 승인 2022.10.17 16:23 의견 0
두 팔이 없는 독일 출신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가 오는 11월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행복에 이르는 길은 재능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을 때 열린다.” 두 팔이 없어 발가락으로 연주하는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의 말이다. 올 4분기 많은 음악가들이 무대에 오르지만 단연코 화제의 공연은 독일 출신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의 리사이틀이다. 오는 11월 5일 울산현대예술관 대극장,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영국 본머스 심포니의 상주 음악가로 활약 중인 펠릭스 클리저는 태어날 때부터 양팔이 없었다. 목소리를 이용하는 성악이 아닌 이상 두 팔은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요건이다. 보통 호르니스트들은 왼손으로 음정을 조절하는 밸브를 누르고 오른손은 악기의 개구부(bell)에 손을 넣어 음색에 변화를 주고 볼륨의 미세한 변화를 조절한다. 그는 왼발을 이용해 호른의 밸브를 조작하고 오른손이 해야 할 일은 모두 입술이 대신한다.

이번 리사이틀은 호르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꾸민다. 슈만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Op. 70’, 뒤카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빌라넬레’, R. 슈트라우스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 TrV 155’, 베토벤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장조, Op. 17’, 글리에르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작품, Op. 35’, 라인베르거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 178’ 등을 연주한다. ‘클래식의 통역사’로 유연한 피아니즘을 선보이는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함께한다.

클리저는 5세 때 우연히 듣게 된 호른의 음색에 매료돼 무작정 부모님을 졸라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인 괴팅엔에는 호른을 가르쳐줄 선생님이 많지 않았고, 다섯 살의 나이는 길고 정교한 호흡을 요하는 호른을 다루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는 클리저의 뜻을 꺾지 못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오는 11월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독일 출신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의 리사이틀 반주를 맡는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2004년 하노버 예술대학 예비학생이 됐고 3년 후 정식으로 입학했다. 2008년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에 입단했고 2011년까지 활약했다. 이 시기는 영국의 유명 팝스타인 스팅의 투어 콘서트, 사이먼 래틀과의 연주 등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했다.

2013년 발표한 첫 앨범 ‘꿈,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낭만음악’으로 2014년 독일의 가장 저명한 음악상인 에코 클래식상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각주: 세상을 정복한 팔 없는 나팔수’를 출간했다. 역시 같은 해 독일지휘자협회와 리터 파운데이션이 수여하는 음악상을 수상했다.

OHMI(One-Handed Musical Instrument Trust)의 홍보대사로 활약하면서 자신처럼 양팔을 쓸 수 없는 음악가들을 위해 새롭게 고안되거나 개조되는 악기를 제작 지원하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2016년에는 독일 뤼벡의 유서 깊은 페스티벌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뮤직 페스티벌이 수여하는 ‘레너드 번스타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에코 클래식상 시상식에서 야닉 네제-세겡의 지휘로 뮌헨 필하모닉과 함께한 생상스의 ‘로망스’ 실황 연주는 온라인을 통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왔고 이후 그가 전 세계 무대에 초청받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에는 2015년 금호아트홀 연세 개관 음악제 참여를 위해 처음 내한했고 2018-2019년 제주국제관악제에 참여한 적이 있다.

올해 클리저는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연주자로서 두 번째 해를 맞았다. 지난 시즌 관객과 언론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데 이어, 이번 시즌에는 새로 영입된 오케스트라 동료들과 함께하는 실내악 프로젝트와 두 차례의 교향곡 콘서트에 더해서 음악 교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두 팔이 없는 독일 출신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가 오는 11월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스웨덴을 대표하는 작곡가 롤프 마르틴손으로부터 헌정 받은 호른 협주곡 ‘Soundscape’의 성공적인 독일 초연에 이어, 이탈리아와 스웨덴(데뷔 무대)에서도 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Soundscape’ 공연은 지휘자 알론드라 데 라 파라가 이끄는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교향악단과 노르란즈오퍼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이번 시즌 클리저는 열정적인 실내악 연주자로서 여러 무대에서 다양한 실내악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며 다양성, 동기부여 및 포용 등을 주제로 진행되는 패널 토론에도 활발히 참여할 계획이다.

클리저는 지휘자 알론드라 데 라 파라가 이끌었던 프로젝트 앙상블 ‘더 임파서블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2022년 여름 멕시코에서 열린 제1회 팍스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도 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탄생한 온라인 오케스트라인 ‘더 임파서블 오케스트라’에는 롤란도 빌라존, 알리사 와일러슈타인, 에딕슨 루이즈, 알브레히트 마이어, 막심 벤게로프 등이 함께 했다. 성공적인 디지털 연주회 이후 처음으로 참여 음악가들이 멕시코에 모여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왕성한 투어 활동 와중에도 앨범 작업에 큰 공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2015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앨범 ‘요제프 & 미하엘 하이든 호른 협주곡’, 2017년 9월에는 ‘브람스: 호른 삼중주’를 발매했다. 네 번째 앨범인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의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전곡 앨범은 2019년 독일 클래식 차트 톱10에 3개월간 머물렀다. 2020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성악곡을 편곡해 연주한 앨범 ‘Beyond Words’는 그의 꾸준한 도전 정신을 보여주며, 2022년에는 쳄린스키 콰르텟과 ‘호른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모차르트와 하이든 작품집’을 선보였다,

두 팔이 없는 독일 출신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가 오는 11월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금관악기지만 푸근하고 따뜻한 음색을 가진 호른은 솔로 레퍼토리가 다른 금관 악기들에 비해 많은 편이고 또한 실내악 편성으로도 많은 작품들이 있다. 명문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수준을 호른 연주자들의 실력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호른이라는 악기가 분위기 전환이나 극적인 순간의 스토리텔링을 맡게 되는 관현악 작곡 기법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 자체가 어려운 것도 한 몫을 한다.

음을 내기 위한 호흡의 정도와 그를 조정하는 입술의 완벽한 타이밍이 일치하지 않으면 쉽게 잘못된 음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과 상반신의 자유로운 도움을 받는 다른 호르니스트들과 달리 발가락으로 연주하는 호른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클리저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긴 손가락으로 어떻게 그렇게 가는 연필을 잡지요? 사실 남들처럼 손으로 연주해 본적이 없어서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클리저는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청중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