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야쿠프 흐루샤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호흡을 맞춰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오케스트라의 배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포맷에서 벗어났다. 앞쪽에 바이올린·첼로·비올라가 반달 모양으로 위치했다. 지금까지 눈에 익은 것은 바이올린·비올라·첼로의 순서인데 ‘살짝 파격’을 감행한 것. 더블베이스는 비올라 뒤에 자리를 잡았다.

중앙에 계단을 넣어 관악 파트를 층층이 쌓았다. 1열에 플루트 2명·오보에 2명, 2열에 호른 2명·클라리넷 2명·바순 2명, 3열에 호른 2명·트럼펫 2명·트럼본 2명·튜바 1명을 배치했다.

야쿠프 흐루샤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심포니가 왜 이런 악기 포메이션을 선택했는지 곧 실감했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열었다. 2016년 지휘 명장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의 첫 내한 이후 7년만의 재방문이다.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교향적 전주곡 c단조(WAB 297)’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 9개의 교향곡 가운데 ‘8번 G장조(Op.88)’를 연주했다. 자신들의 시그니처 음향인 ‘보헤미안 톤’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야쿠프 흐루샤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호흡을 맞춰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뒤 흐루샤와 포옹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목관과 관악의 황금 사운드가 단연 압권이었다. 엑설런트한 소리를 뽑아냈다. 중간에 계단식으로 관악 파트를 배치해 현악기와의 찰떡 케미를 시각적으로 펼쳐냈다. 지금 나오는 목관과 금관의 소리가 어떤 악기인지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 친절했다. 귀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소리를 감상하는 효과를 줬다. 사운드를 청각과 시각으로 즐긴 셈이다. 관악기의 훌륭한 플레이팅이었다.

2부에서 연주한 ‘교향곡 8번’은 명연(名演)이고 호연(好演)이었다. 1악장 첫 음에서부터 4악장 마지막 음이 끝날 때까지 몸에 있는 모든 감각세포를 총동원해 듣게 만들었다. “음악을 들을 때 특별히 어떤 것에 포커싱을 맞춰야 하는지 구체적인 조언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조차도 무대 위에서는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보헤미안 사운드’를 제대로 느끼려면 아주 자유로운 감상법이 필수입니다.” 올해 42세(1981년생)인 야쿠프 흐루샤는 공연에 앞서 이런 팁을 줬다.

야쿠프 흐루샤가 밤베르크 심포니와 호흡을 맞춰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야쿠프 흐루샤가 밤베르크 심포니와 호흡을 맞춰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1악장(빠르고 쾌활하게)은 첼로, 클라리넷, 호른이 한데 어우러진 찬가풍 선율을 빚어내며 시작됐다. 이어 플루트가 새소리처럼 청초한 선율을 노래하면서 행진곡 스타일이 이어졌다. 1주제부가 끝나고 2주제부는 목관이 리드미컬하고도 열정적으로 펼쳐졌다. 복합적인 모양새를 띠면서 다채롭게 전개됐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보해미아 사람들의 소탈하고도 활기 넘치는 일상이 그려졌다. 풍부한 활력과 생동감, 상쾌한 정취가 넘쳐나는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악장이다.

2악장 아주 느리게는 목련 피듯 화사하게 시작됐다. 보헤미아의 자연과 풍토를 소박하고도 장려한 필치로 묘사한 한 편의 전원시 같은 릴렉스 악장이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전원의 정취가, 사랑스러운 새들의 속삭임이, 그것들을 비추는 밝은 해살이 담겨있다. 거기에 특유의 아련하고 우수 어린 동경의 분위기가 드라마틱하게 흘렀다.

3악장(조금 빠르고 우아하게)에서는 벚꽃의 만개했다. 통상적인 스케르초가 아니라 우아한 선율감이 두드러지는 무곡 악장이다. 왈츠와 랜틀러(미뉴에트·스케르초·왈츠 등 교향악 속 3박자 춤곡)를 연상시키는 사뿐하고 촉촉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민요의 정취가 담뿍 스며있는 가락도 신선하고 사랑스럽다.

트럼펫의 시원한 팡파르로 4악장(빠르되 지나치지 않게)이 열렸다. 팀파니가 가볍게 뒤를 받쳐주었다. 첼로가 꺼내 놓은 선율에 기초한 변주곡이 전개되고 복합적인 구성미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짐짓 점잔을 빼며 거드름을 피우지만 차츰 속도와 열기를 더해간다. 결국엔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달려 정점에서 호쾌하게 마무리된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야쿠프 흐루샤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호흡을 맞춰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앙코르 두 곡 모두 드로르자크였다. ‘왈츠 A장조(Op.54) 1번’과 ‘모음곡 A장조(Op.986) 피날레’를 들려줬다. 계속되는 박수에 흐루샤는 밥 먹어야 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강소(強小) 오케스트라’다. 작지만 강했다. 밤베르크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인구 7만의 도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로 이주한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1946년에 창단했다. 제5대 상임지휘자인 흐루샤도 체코 출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음악엔 체코 사운드가 뿌리깊이 흐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야쿠프 흐루샤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호흡을 맞춰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야쿠프 흐루샤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호흡을 맞춰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1부에서 김선욱은 로베르토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Op.54)’를 연주했다. 진정한 낭만적 협주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곡은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와의 사랑이 깊이 새겨진 곡이다.

1악장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잘난 체 하지 않고 하나로 녹아들었다, 육중했지만 둔탁하지 않았다. 열여섯 살 소녀의 발걸음을 닮았다. 간간이 섞여 나오는 오보에와 플루트의 개입도 산뜻했다. 서로 다리를 하나씩 묶어 하나 둘 소리 내어 걷는 2인 3각 같았다. 관악기의 주제 선율이 전체를 지배했다. 후반 카텐차에서 김선욱은 빼어난 스킬을 보여줬다. 1악장이 끝나고 박수가 나왔다. 연주자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2악장은 가벼웠다. 오전의 산책 같았다. 다이어트 하려고 악착같이 걷는 속보걸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3악장은 중간에 호른·바순·클라리넷의 하모니로 액센트를 선사했다. 이어 행진곡풍의 전개가 이어지고 후반부에 소박한 화려함이 돋보이는 오케스트레이션이 나왔다. 더운 날도 아니고 추운 날도 아니다.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날이다.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진심이 가득한 협주곡이다.

앙코르는 슈만 ‘숲의 정경(Op.82)’ 중 3번 곡인 ‘고독한 꽃’을 연주했다. 흐루샤는 뒷자리에 앉아 감상했다. 브라보가 계속되자 흐루샤는 한 곡 더 하라며 김선욱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브람스의 ‘인터메조 A장조(Op.118)’ 2번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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