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객석 곳곳에 오페라글라스(망원경)가 등장했다. 피아니스트의 손짓 하나,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유독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어느새 글로벌 셀럽이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일찌감치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기념사진 촬영용 패널 앞은 길게 줄을 섰다. 1, 2, 3층 객석과 합창석 등 2000여석이 빼곡히 들어찼다.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전석 광클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

클래식 스타 임윤찬이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218년의 역사를 가진 스위스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국내에서 이뤄진 임윤찬의 첫 해외 오케스트라 협연이었다.

1805년 설립된 루체른 심포니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 최고의 여름 음악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의 정규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책임진다. 거장 지휘자 쿠르트 잔데를링의 아들인 미하엘 잔데를링이 상임 지휘자로 악단을 이끌고 있다.

임윤찬이 리본 넥타이를 나부끼며 무대로 뛰어 들어왔다. 날렵한 등장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임윤찬과 미하엘 잔데를링, 그리고 루체른 심포니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를 들려줬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1악장은 오케스트라가 긴장감 넘치는 연주로 분위기를 깔아줬다. 비교적 긴 서주 파트가 지나가자 임윤찬은 어느새 서핑을 하듯 음의 파도를 탔다. 때로는 명확하게, 때로는 영롱하게 건반을 누르며 단숨에 무대를 장악했다.

운이 좋아 열아홉 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바라볼 수 있는 ‘명당’에 앉았다. 왼손과 오른손의 쓰임을 비교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오케스트라 없이 독주자가 마음껏 솜씨를 뽐내는 카덴차 파트에서 기량은 더욱 빛났다. 무심한 듯, 담담한 듯 한음 한음을 엮어나가자 모두 ‘얼음’이 됐다. 소리가 달아날까봐 숨도 멈췄다.

임윤찬의 피아노 리드로 시작된 2악장은 과시하지 않는 소박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았다. 만약 소리가 사람처럼 부끄러움을 탄다면 저런 소리가 아닐까 생각됐다.

3악장 앞부분은 1악장 긴박함을 다시 재연하는 일종의 변주가 펼쳐졌다. 혼자 연주할 차례가 되자 한음 한음 명징한 특유의 타건으로 자신만의 해석이 돋보이는 강렬한 연주를 선보였다.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카덴차가 끝난 뒤에는 명랑하고 익살스러운 오케스트라 연주가 뒤를 받쳐줬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한 뒤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자와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모차르트는 협주곡 20번의 카덴차를 썼다고 기록했지만 안타깝게도 악보는 남아있지 않다. 현재 악보로 남은 카덴차는 베토벤과 브람스 등의 것이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베토벤이 남긴 카덴차를 연주한다. 이날 1악장과 3악장의 카덴차는 모두 베토벤의 것이었지만 표현 방식이 새로웠다.

악보에는 한 음만 적혀있는 곳에 화음을 채워 넣기도 했고, 몇몇 쉼표를 자유롭게 늘려서 오랫동안 침묵의 시간을 만들었다. 또 악보에는 쉼표가 없는데도 음악을 정지해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카덴차를 새롭게 들리도록 했다. 임윤찬의 번뜩이는 솜씨다. 낯설어 더 감동이었다. 이런 이유로 공연이 끝난 뒤 “임윤찬이 편곡한 카덴차인 듯하다” “베토벤이 아니라 새로운 버전처럼 들렸다”와 같은 후기가 올라왔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임윤찬은 첫 번째 앙코르곡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를 위한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마지막 진혼곡)’를 들려줬다. 헤비했다. 박수와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악장이 손가락으로 ‘1’을 만들어 보이며 한곡을 더 연주해 달라고 청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드보르자크의 ‘유머레스크’가 흘러나왔다. 두 번 째 앙코르가 끝나고도 박수가 끊이지 않자 임윤찬은 손으로 ‘X’자를 만들어 ‘이제 그만’을 표하며 퇴장했다. 관객들은 웃음 터졌다.

임윤찬은 ‘진화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을 둘러싼 콩쿠르 스타의 경계를 뛰어넘어 뚜렷한 주관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매력을 드러냈다. 이날의 일등 관객은 시각 장애인 관객과 함께 온 안내견이었다. 그 어떤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1열 첫 번째 자리에 앉아 임윤찬의 음악을 감상했다.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루체른 심포니는 1부에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Op.21)을 들려줬고, 임윤찬이 떠난 2부에서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A장조 ‘이탈리아’를 선사했다. ‘부잣집 도련님’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느낀 감흥을 담았다. 전체적으로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앙코르로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 그리고 브람스 ‘헝가리무곡 5번’을 선사했다. 잔데를링은 헝가리무곡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해 음악으로 만들었다. 관객들도 훌륭한 단원 역할을 한 셈이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