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주희가 오는 11월 21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이주희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4곡 모두 따뜻한 곡으로 준비했어요. 멜로디 라인이 뚜렷해 그냥 피아노 소리가 아니라 마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가을 시즌에 딱 맞는 힐링 레퍼토리죠.”

섬세한 테크닉과 풍부한 음악성을 겸비한 피아니스트 이주희가 포근한 11월을 선사한다. 오는 21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독일 유학 때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익힌 루트비히 판 베토벤, 펠릭스 멘델스존, 프란츠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근처에서 만났다.

처음 들려줄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내림B장조(Op.22)’. 악성(樂聖)이 만든 초기 소나타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 스스로 ‘그랜드 소나타’로 불렀다.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작품성을 놓고 왈가왈부 말들이 많지만, 전통에 입각한 형식적 틀 속에서 젊은이다운 느긋함을 자유자재로 뽐낸 초기 소나타의 대표작이다. 리사이틀을 앞두고 살짝 걱정을 드러냈다.

“10대 시절에 처음 들었고, 20대 때 독일서 심도 있게 배웠고, 드디어 30대가 되어 무대에서 공식으로 선보입니다. 이 곡의 매력은 고전적이고, 질서 있고, 잘 정리 정돈됐다는 점입니다. 간결하죠. 입시곡으로도 많이 쓰여요. 학생들에게 자주 가르쳤는데, 정작 이 곡으로 독주회 오프닝을 열려고 하니 부담감도 느껴요. 제자들도 올 텐데...”

두 번째로는 베토벤의 ‘안단테 파보리 F장조(WoO.57)’를 연주한다. ‘파보리(favori)’는 사랑 또는 호감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좋아하는, 호감을 느끼는 느린 곡이라는 의미다. 원래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의 2악장으로 작곡됐지만, 러닝타임이 너무 길고 다른 악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자 아예 빼내 새로운 소품으로 따로 출판했다.

선율이 아름답다. 베토벤도 무척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 곡의 주제 동기를 연가곡집 ‘멀리 있는 연인에게(Op.98)’와 ‘피아노 소나타 30번 E장조(Op.109)’ 3악장에 다시 사용했다. 이주희는 “에피소드를 사이에 두고 주제가 반복되는 론도의 면모와 주제 자체가 변화하는 변주곡의 면모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며 “순간순간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변화를 감지하며 감상하면 훨씬 더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팁을 줬다.

베토벤이 생전에 발표한 작품에는 대부분의 다른 작곡가들처럼 ‘Op 번호’를 쓰고, 당시에 출판되지 않았거나 사후에 발견한 유작에는 따로 ‘WoO 번호’를 붙인다. ‘WoO’는 ‘작품번호 없음(Werke Ohne Opuszahl)’의 약자다. 1955년 독일의 음악학자 한스 할름과 게오르크 킨스키가 ‘Op 번호’가 없는 베토벤 205개 작품에 ‘WoO 번호’를 달았다. ‘안단테 파보리’에는 ‘WoO.57’를 붙였다.

이주희는 충남예고와 중앙대 음악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공부했다. 칼스루에 국립음대 석사과정과 뮌스터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치며 전문연주자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유학 시절 이탈리아 돈 빈체조 비티 국제콩쿠르 1위, 에우테르페 국제콩쿠르 1위없는 2위 등 다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어린 시절 ‘남들이 다니니까 나도 가야지’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될성부른 떡잎이 보였다. 개인 레슨을 받은 것은 초등 5학년 때 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중학교 때 ‘그래 피아노를 전공해보자’ 결심했다. 국내에서 노선영, 이연화, 허원숙, 정주원 등을 사사했다. 그는 “허원숙 선생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피아노 세상에 눈을 떴다”며 “그동안 피아노를 배우면서 재미있었는데 지식이 들어오니 더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남편도 피아니스트다. 독일 유학 시절 만나 최근 결혼했다. 서로의 연주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느냐고 묻자 “음악 이야기는 잘 안한다. 같은 길을 걷다보니 오히려 준비 과정의 어려움과 고충을 이해해줘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부부의 애틋한 동병상련이다.

이주희는 연주 활동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피아노 연주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도 열심이다. 현재 중앙대·강릉원주대·예성여고·계원예중·충남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영재교육원 등에 출강하며 후학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물론 뿌듯하다”라며 “단지 성과를 냈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과 신뢰 관계를 쌓고, 그들이 진정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게 돼 더 기쁘다”며 웃었다.

‘무언가(독일어로 Lieder ohne Worte·영어로 Songs without Word)’는 말 그대로 ‘말이 없는 노래’, 즉 가사가 없는 노래다. 멘델스존은 자신의 감성과 들려주고 싶은 말을 피아노 선율에 듬뿍 담아 ‘무언가’를 작곡했다. 1829년부터 1845년까지 16년 동안 8권에 48곡의 ‘무언가’를 남겼다.

이주희는 그 가운데 5권 ‘무언가 Op.62’를 연주한다, 모두 6곡으로 구성돼 있는데 여섯 번째 곡 ‘Allegretto grazioso’는 ‘봄의 노래’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많이 들었던 곡이다. 이주희의 손끝을 타고 겨울 내내 얼었던 얼음이 풀리면서 빠르게 흐르는 시냇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단순한 선율이면서도 봄의 기운을 깨우는 곡이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이주희는 2016년 체코 프라하의 스메타나 홀에서 북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리와 협연했던 때를 못잊는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무대에서의 첫 협연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그동안 느끼지 못한 새로운 희열을 느꼈다. 짜릿했다. ‘아! 이 맛에 음악을 하는 구나’ 실감했던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5월과 10월 두 차례 독주회를 열었다. 평소 수영과 요가로 체력을 다지고 있는데도 40분 넘어가는 대곡을 초이스한 탓에 허리 디스크 때문에 고생했다. 그래서 올해는 소프트한 곡을 선곡했다. 연주도 연주지만, 누구나 ‘귀호강’ 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마지막 들려줄 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a단조(D.784)’. 한창 작곡가로서 성공을 이루고 있던 때에 병마 때문에 음악 활동의 공백기를 겪어야 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아름답게 빚어낸 곡이다. 이주희는 부드러운 터치와 강렬한 타건으로 슈베르트의 마음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조금 이르게 한해를 마무리하는 공연을 준비하지만, 그의 눈은 내년을 향하고 있다.

“저는 슬럼프가 없어요.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당장 실천 가능한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스타일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요. 이미 지나간 것은 생각하지 않죠.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일을 빠짐없이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큰 목표도 이루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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