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왕’과 ‘루치아’의 대명사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그루베로바 사망

향년 74세...영국 여왕 3부작 시리즈서 세명의 여왕 모두 소화 유명

박정옥 기자 승인 2021.10.19 16:54 의견 0
세계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18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인터넷 캡처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밤의 여왕’과 ‘루치아’의 대명사였던 세계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18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향년 74세.

그는 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소리를 가장 아름답게 낼 수 있는 성악가였다. 특히 도니제티, 벨리니 등의 벨칸토 오페라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위대한 고음’으로 통했다.

1946년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그루베로바는 브라티슬라바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후, 1968년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역으로 데뷔했다. 스물두살 때다.

재능을 알아본 스승은 그의 서유럽 진출을 노렸지만 당시 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비밀작전을 감행했다. 1969년 여름, 그루베로바를 빈 국립오페라의 오디션에 참가토록 하기 위해 경찰의 눈을 피해 빈으로 데려갔다. 노래를 들어본 빈 슈타츠오퍼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었다.

이듬해인 1970년 세계 5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국립오페라극장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으로 주목받으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후 음악적 성장과 성공을 위해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왔다.

메트로폴리탄 데뷔는 1977년에 이뤄졌다. 역시 ‘밤의 여왕’으로 미국에 첫선을 보였다. 같은 해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돈 카를로’의 에볼리 역을 맡았는데, 좀처럼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카라얀이 무대로 뛰어올라 그루베로바를 포옹하며 찬사를 보낸 사건은 유명하다.

그 후 그루베로바는 전 세계를 무대로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청교도’의 엘비라, ‘리골레토’의 질다 등 다양한 배역을 선보이며 당대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칭송받았다.

특히 그녀는 마리아 칼라스 사망 이후 자주 공연되지 않았던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 ‘로베르토 데브뢰’의 영국 여왕 3부작 시리즈에서 세 명의 여왕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오페라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남편 프리드리히 하이더와 함께 가곡과 종교음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루베로바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테너 조태진은 “독일 유학 시절 도이치오퍼 베를린에서 그의 대표적인 역인 루치아를 보고 끝까지 남아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세월이 참 야속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소프라노 장승희는 “세상에서 빛나는 소프라노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음악으로 위로했던 디바…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또한 지휘자 서희태는 “그의 완벽을 넘어선 기교는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내기 힘들만큼 뛰어났다.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를 노래할 때면 모든 관객은 숨조차 쉬기 힘들만큼 집중했다”라며 “공연장 전체를 감싸고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실크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음색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는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다”며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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