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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정원이 16일 열린 한국 데뷔 20주년 콘서트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크라이스클래식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이란 여정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싶었죠. 그렇게 빨리 달리지 않아도, 그렇게 높이 오르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20주년은 지난 시간을 마무리하는 고별 콘서트가 아니에요. 앞으로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선전포고와 같은 마음이 더 크죠.”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어느덧 한국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클래식계 최초로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그는 2001년 10월 LG아트센터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며 데뷔했다. 당시 연주회에는 팬들이 선물과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고, 공연은 연일 매진 행렬이었다.
김정원은 16일 서울 강남구 야마하 뮤직 커뮤니케이션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숨을 고르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원은 예원학교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빈 국립음대에 입학했다. 마리아 카날스, 부소니, 자일러, 더블린 등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1997년 빈에서 열린 뵈젠도르퍼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0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3차 심사까지 진출했지만 결선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도 폴란드 음악협회가 주최하는 콩쿠르 우승자 초청 연주에 이례적으로 우승자 대신 초청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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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정원이 16일 열린 한국 데뷔 20주년 콘서트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크라이스클래식
어린 시절 쇼팽에 빠지고 라흐마니노프에 매료됐다는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화려하고 꾸밈이 많은 음악보다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음악에 점점 더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그는 슈베르트의 21개 소나타 전곡 연주를 2014년 시작해 4년간 이어가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연주하는 동안 ‘슈베르트 디톡스’라고 할 만큼 몸무게가 10㎏이나 빠졌다. 의미 있는 작업이었지만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았고 그 여정을 끝냈을 때의 벅찬 감정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손이 느려지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방전되지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음악이 노화와 함께 퇴보하지 않고,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음악에 대한 후회와 애증도 고백했다.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왜 피아노밖에 선택할 수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서른이 넘어서야 했다. 슬럼프는 자주 온다”라며 “하지만 살아가는 힘이 기쁨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고난을 이겨냈을 때의 감정이 매일의 평화로움보다 더 큰 에너지를 주고,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내가 음악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했다.
김정원은 그간 네이버 클래식 음악프로그램인 V살롱콘서트를 진행해 연주자들을 소개해 왔고, 베이스 연광철과 작곡가 김택수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린 시절을 정상적으로 보내지 못했다.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혼자 연습실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주변의 좋은 음악가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이런 활동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정원은 다음달 1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타임리스(Timeless)-시간의 배’란 제목으로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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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정원이 16일 열린 한국 데뷔 20주년 콘서트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왼쪽은 지휘자 아드리엘 김. Ⓒ크라이스클래식
공연에서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바이어의 발레음악 ‘한국의 신부’ 중 전주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사한다. 특히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는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연주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지휘자 아드리엘 김이 올해 새로 창단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맡는다.
그는 “베토벤과 브람스의 두 협주곡은 빈과 인연이 깊은 곡이다. 빈은 유년시절부터 제 청춘을 다 보낸,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보낸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라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을 끝내고 마치 6번처럼 브람스의 곡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브람스와 베토벤이 동시대에 살지 않았지만, 브람스는 베토벤의 정신을 이어받아 신고전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 브람스에게 바통을 넘겨주듯, 20주년 한 가운데에 서서 그동안 달려온 저로선 앞으로 20년의 김정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