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퍼포먼스로 표현한 ‘집’ 잃고 떠도는 슬픈 자화상... 배효정 작가 개인전

12월23일~1월16일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 전시
‘답십리 그 집’ ‘나의 살던 바당은’ 등 3점 선보여

민은기 기자 승인 2022.12.23 18:02 의견 0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한 배효정 작가가 내년 1월 16일까지 ‘TUH:터’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사진은 ‘해녀지망생의 집터’. ⓒ제주갤러리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배효정 작가는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구·서울·제주로 이어지는 자신의 잦은 이주경험을 정체성과 기억의 문제로 확장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선보이고 있다.

2021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 대상 수상 작가인 배효정은 12월 23일(금)부터 1월 16일(월)까지 약 3주간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개인전 ‘TUH:터’를 개최한다. 오픈행사는 26일(월) 오후 5시.

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기원이자 삶의 터전으로서의 ‘집’을 다룬 영상 설치 작업 3점을 선보인다. ‘답십리 그 집’ ‘해녀지망생의 집터’ ‘나의 살던 바당은’ 등은 모두 독특한 시선을 담고 있다.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한 배효정 작가가 내년 1월 16일까지 ‘TUH:터’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사진은 ‘답십리 그 집’. ⓒ제주갤러리 제공


‘답십리 그 집’은 작가가 20년 전 거주했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집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담았다. 러닝타임은 8분 정도로 로드 무비(road movie)의 성격이 짙다. 개발로 인해 사라진 집에 대한 나와 타인의 기억, 그리고 기억 속의 집과 현실 간의 간극을 다룬다.

화면은 계속 걷는 속도로 움직이면서 골목을 찾아 진행하고, 음성은 마을 주민과 집 찾는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의 모습이 노출되며, 자막은 자신이 살았던 집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대화가 가슴 아프다. “금전관계나 사람을 찾을까봐 집을 가리켜주면 안 되는 세상”이라는 마을 사람의 말에서 오늘의 시대 인식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약 8분 분량의 ‘해녀지망생의 집터’는 작가의 제주 이주 경험을 담은 작업으로 ‘집’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꿈의 좌절을 허물어진 집의 잔해와 파편적 기억, 수중을 부유하는 자신의 모습과 중첩해 표현한다.

오버랩 된 바다 속 배경에 부서진 제주 전통 집터의 흉물스러운 몰골은 해녀의 바다가 황폐해진 백화현상을 생각나게 한다. 땅과 바다의 황폐함 사이에서 배회하는 작가 자신은 쫓기는 인어가 돼 거대한 파도에 밀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불안에 휩싸인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바닷가의 낭만은 찰나의 허상이고, 그 낭만의 밑바닥에는 황금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배효정은 “어떤 것도 아름답다고 여기는 순간 온갖 탐욕에 빠져들고 소유가 곧 권력이 된다”라고 일갈한다.

김유정 평론가는 “이 영상은 공동체가 처음 품었던 아름다운 마음마저 자본의 돈독이 오른 뒤에는 모든 게 한순간에 변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와서 살라’던 따스한 인간적 배려가 돈을 더 못 내면 당장 나가라는 탐욕으로 바뀌는 세상에서 결국 우리 자신도 자기를 배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들려준다”고 설명했다.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한 배효정 작가가 내년 1월 16일까지 ‘TUH:터’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사진은 ‘나의 살던 바당은’. ⓒ제주갤러리 제공


‘나의 살던 바당은’은 11분 정도다.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를 수집한 후 수중 퍼포먼스와 텍스트로 재해석했다. 해녀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에서 작가 자신이 해녀가 되어 물속을 헤매면서 어머니들의 고된 삶의 기억들을 몸짓으로 재현한다. 이는 제주 해녀들에게 바치는 찬가인 동시에 한 장소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제주에 오자마자 전문적으로 물질을 배우기 위해 해녀학교에 입학했고, 더 멋지게 만들려고 프리 다이빙까지 배웠다.

이 작품은 지난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열린 ‘2022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의 부대 행사로 준비한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에서 살짝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원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용암바위를 스크린 삼아 작품을 보여줬는데 돌출변수가 발생해 뒷수습한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배 작가는 “영상을 보여주려면 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발전기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자연보호구역이라 허가가 나지 않았다. 고육지책으로 충전배터리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캠핑용 발전기 2대를 구입해 위기를 넘겼다. 매일 30kg에 육박하는 배터리를 직접 나르는 육체의 고통을 감수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배효정의 장소 기억에 대한 세 편의 에피소드는 집, 집터, 바다라는 비유를 빌어 세 곳의 교차점 모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장소 상실감과 비소유의 공포를 느끼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주목할 수 있는 건강한 시선이라 새롭다”고 평가했다

배효정은 가속화되는 개발과 이주로 인한 현대인들의 고향 상실과 이방인으로서 경험을 자전적인 요소로 시각화함으로써 오늘날 ‘집’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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