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곡을 ‘프랑스어 버전’ 깜작노래…2000년생 김태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홍혜란·황수미 이어 퀸콩쿠르 K클래식 성악가 탄생
???????작년 첼로 최하영 이어 ‘한국 2년연속 대회 석권’ 쾌거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6.04 08:55 | 최종 수정 2023.06.11 07:51 의견 0
바리톤 김태한이 4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오른쪽은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소프라노 조수미.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영상 캡처


[클래식비즈 민은기기자] 2000년생 성악가인 바리톤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올해 스물두 살인 김태한은 세계 톱 클래식 경연대회로 꼽히는 퀸콩쿠르에서 한국 남성 성악가 최초로 1위에 올랐다.

결선에서 부른 4곡 모두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지만, 특히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베르디의 곡을 ‘프랑스어 버전’으로 완벽하게 소화해 깊은 인상을 안겨줬다. 대회 주최지인 벨기에가 프랑스어권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김태한은 4일 새벽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끝난 성악 부문 경연 최종 순위 발표에서 1위에 올랐다. 1988년 성악 부문이 신설된 이후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 남성 성악가로는 첫 우승 사례다. 또 한국은 첼로 부문으로 열린 지난해 대회에서 우승한 최하영에 이어 2년 연속 대회를 석권하면서 K클래식 파워를 뽐냈다.

바리톤 김태한(왼쪽에서 세번째)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함께 결선에 진출한 한국 출전자, 심사위원을 맡은 조수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다니엘 권, 조수미, 김태한, 정인호.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제공


그는 향후 열리는 시상식에서 벨기에 마틸드 왕비로부터 직접 상을 받으며, 2만5000 유로(약 3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김태한은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서 나건용 교수를 사사했다. 2000년 8월생으로 이번 대회 12명의 결선 진출자 중 최연소이자 작년 9월 독주회에 갓 데뷔한 성악계 샛별이다. 결선 진출자 12명 중 한국인은 김태한을 비롯해 바리톤 권경민(다니엘 권·31), 베이스 정인호(32) 등 3명이다.

그는 2021년 국내에서 개최된 한국성악콩쿠르, 한국성악가협회 국제성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작년에는 스페인 비냐스·독일 슈팀멘·이탈리아 리카르도 잔도나이 등 3개 국제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차츰 해외로 무대를 넓혔다.

이후 성악 부문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르며 또 한 명의 K클래식 스타 탄생을 알렸다.

총 12명이 진출한 이번 대회 결선 무대는 지난 1일부터 3일 오후까지 사흘에 나눠 진행됐다. 결선 진출자는 최소 3곡에서 6곡을 부르고, 두 가지 이상 언어 및 오페라 아리아 1곡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바리톤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노래하고 있다.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제공
바리톤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노래하고 있다.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제공
바리톤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노래하고 있다.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제공


전날 무대에 오른 김태한은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중 ‘죽음의 예감처럼 황혼이 대지를 뒤덮고(저녁별의 노래)’, 말러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타는 듯한 단검으로’, 코른콜트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중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 등 네 곡을 선보였다.

결선 현장에서 콩쿠르를 참관한 평론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김태한은 ‘저녁별의 노래’에서 말쑥하고 정리된 목소리로 깔끔하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호흡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맞아떨어졌다”라고 평했고 “이어 부른 ‘타는 듯한 단검으로’에서도 역시 모범적인 가창과 깔끔함으로 개운한 뒷맛을 남겼다”고 밝혔다.

또한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는 밸런스가 잘 맞는 힘과 호흡으로 모난 게 없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감동과의 연결선도 지니고 있는 안정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는 절절한 비극성 면에서는 부족함도 느껴졌지만 깔끔함과 밸런스 면에서는 모범적인 노래였다. 규격에 맞춘 손에 잡힐 듯한 노래라는 점이 장점이었고, 거친 야성미와 느닷없이 마음속으로 침투하는 요소는 없었던게 단점이었다”고 평했다

특히 김태한은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베르디의 곡을 ‘프랑스어 버전’으로 완벽하게 소화해 주목을 받았다. 벨기에가 프랑스어권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전달력을 극대화한 탁월한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벨기에 왕가가 주관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매년 피아노·첼로·성악·바이올린 부문 순으로 돌아가며 개최된다.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최고의 음악 경연대회로 꼽힌다.

바리톤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제공
바리톤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제공


역대 한국인 우승자로는 홍혜란(성악·2011년), 황수미(성악·2014년), 임지영(바이올린·2015년), 최하영(첼로·2022년) 등 4명이 있다.

올해 대회의 경우 본선 무대부터 한국인 참가자가 최다를 차지하며 초반부터 현지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가 올해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면서 의미를 더했다. 조수미는 결과 발표 전 “이제는 정말 많은 한국인, 아시아계 예술가들이 굉장히 많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심사하면서 느낀 건 역시 우리 한국 성악가들이 정말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을 갖게 됐다”고 뿌듯해했다.

주벨기에유럽연합 한국문화원은 올해 대회까지 9년 연속 주최측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한국인 참가자들을 지원했다. 문화원은 추후 콩쿠르 입상자들을 초청해 갈라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eunk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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