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지난 30년간 세종솔로이스츠를 통해 젊은 연주자들이 크게 성장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세종솔로이스츠 강경원 총감독)
“세종솔로이스츠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오랜만에 만나도 언제나 반가운 가족이에요.”(함부르크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니얼 조 악장)
세종솔로이스츠의 ‘제7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이 8월 16일부터 9월 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IBK챔버홀 등에서 열린다.
올해 특히 눈길을 끄는 포인트는 세종솔로이스츠가 배출한 세계적 오케스트라 악장 4명이 동시에 참여한다는 것. 뉴욕 필하모닉의 프랭크 황,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데이비드 챈, 함부르크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대니얼 조, 몬트리올 심포니의 앤드루 완은 모두 세종솔로이스츠 출신 음악가다.
축제 개막을 앞두고 14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올해 설립 30년을 맞은 세종솔로이스츠의 음악적 성과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내비쳤다.
세종솔로이스츠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줄리어드 음대 교수가 된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예술감독이 1994년 8개국 출신 11명의 제자를 중심으로 뉴욕에서 창설한 현악 오케스트라다. 지금까지 세계 120개 이상의 도시에서 700회 넘게 연주회를 했다.
2004년 대관령국제음악제(현 평창대관령음악제)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2010년까지 음악제의 핵심 앙상블로 활약했다. 2017년부터는 도심형 음악축제를 모토로 서울을 중심으로 힉엣눙크를 개최하고 있다. 라틴어인 ‘힉 엣 눙크(Hic et Nunc)’는 ‘여기(Hic) 그리고(et) 지금(Nunc)’이라는 뜻이다.
먼저 중국계 미국인 프랭크 황은 “세종솔로이스츠는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연주자들이 마법 같은 협업을 만드는 곳이다”라며 “민주적으로 진행되는 세종솔로이스츠만의 리허설 방식은 뉴욕 필하모닉 악장으로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한국계라 지금까지 40~50여 차례 방한했다. 한국이 집처럼 편안하다”고 덧붙였다.
대만계 미국인인 데이비드 챈의 아내도 한국계다. 그는 “저 역시 한국 방문 횟수를 셀 수가 없다”며 “올여름만 해도 메트 내한 공연까지 벌써 세 번째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세종솔로이스츠는 눈부신 기교와 앙상블, 사운드를 추구하는 곳이다”라며 “30년간 추구하는 가치를 바꾸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어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인 대니얼 조는 유창한 한국어로 “제게 세종솔로이스츠는 오랜만에 봐도 며칠 전에 본 것같이 친근한 음악적 가족이다”라고 말해 참석자들을 웃게 했다. 그는 세 살부터 초등학생 시절까지 한국에서 자랐다.
개인 스케줄로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앤드루 완은 “30년간 톱클래스 연주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세종솔로이스츠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며 “여기 멤버가 된 것은 무한한 영광이고, 그 덕분에 훌륭한 친구들과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고 동영상 메시지로 소감을 전했다.
지휘자가 스포츠팀의 감독이나 학급의 담임선생님과도 같다면,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며 이끄는 악장은 주장이나 반장과도 같다. 이날 간담회에서 3명의 악장들은 직업적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지만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대니얼 조는 ‘조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케스트라마다 단원들이 반응하는 속도가 다르고, 단원 개개인이 지휘자의 박자를 해석하는 방식도 역시 다르다”며 “악장의 역량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좀 더 화합하는 소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끼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악장들도 대니얼 조의 의견에 동의했다. 악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단원들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이라고 입을 모았다.
데이비드 챈은 “악장의 역할은 다양한 측면이 있지만 아무래도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며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케스트라를 융합해 하나의 앙상블로 만드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프랭크 황도 “악장이 단원들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연주에 큰 차이를 만든다”면서 “모든 단원이 같은 방향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악장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4명의 악장은 자신들을 키워준 세종솔로이스츠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합동무대를 준비한다.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세종솔로이스츠와 4명의 콘서트마스터’ 공연에 바이올린 협연자로 나선다. 작곡가 김택수(샌디에이고 주립대 교수)가 이번 축제를 위해 만든 ‘with/out(네 대의 바이올린과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고독한 군중’ ‘운명 공동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지난 5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 초연됐으며 이번 한국무대는 아시아 초연이다.
이날 공연 1부에서는 MIT 교수이자 작곡가인 토드 마코버에게 위촉한 ‘플로우 심포니’를 처음으로 선보인다. ‘플로우(flow)’는 ‘강’ ‘흐름’ 등의 의미를 가진다. 생성형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신작으로, 작곡가가 강의 소리를 직접 녹음한 음원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 및 재창조해 음악적 소재로 사용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데이비드 챈은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27일 공연에서는 바이올린 대신 지휘봉을 든다. 소프라노 황수미와 함께 ‘피가로의 결혼’ ‘루살카’ ‘로미오와 줄리엣’ 등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선보인다. 또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호흡을 맞춰 미국 작곡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연주한다.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도 ‘서른살 세종솔로이스츠’의 소회를 밝혔다. 강효 예술감독의 부인인 그는 “지난 30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인데, 시작보다 지속하기가 더 어렵다는 점을 느꼈다”며 “조직이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이사회를 통해 전문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중장기 비전을 세우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뿌듯한 순간도 고백했다. “강효 선생님이 창단할 때 젊고 탁월한 연주자를 모아 세종의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해보자, 또 젊은 연주자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자는 목표가 있었다”라며 “자신이 성장하는 데 세종이 도움이 되었다는 단원들의 말을 듣고 굉장히 기뻤다”고 말했다.
강 총감독은 ‘살아있는 21세기의 클래식 음악 현장을 보여준다’는 축제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에는 ‘환경, 다양성, 테크놀로지’ 세 가지 주제로 힉엣눙크를 이끌어왔다”며 “올해도 이 3개의 키워드로 많은 분들이 알만한 실력파 연주자를 초대했고 작품 선곡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31일 공연도 눈길을 끈다. 힉엣눙크가 신예 연주자를 소개하는 ‘젊은 비르투오소’ 시리즈에 비올리스트 이해수가 출연한다. 이해수는 지난해 독일 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무대에서 다리우스 미요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얼굴’, 에드윈 요크 보웬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파나지 작품 54’ 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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