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올해의 테마는 ‘다양성’입니다. 국내에서 자주 연주 되지 않는 곡, 클래식 주류 무대에서 조명 받지 못하는 악기, 미래의 관객인 영유아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포커스를 맞추니 프로그램이 더 흥미진진합니다.”
세종솔로이스츠의 강경원 총감독은 9일 개막하는 ‘제6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주제를 ‘다양성’에 뒀다고 밝혔다. 한국 클래식 앙상블의 출발점 격인 세종솔로이스츠는 오는 22일까지 6개의 메인행사와 사회공헌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무대를 준비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콘서트는 14일 열리는 예술의전당 공연. 세계적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가 벤저민 브리튼의 ‘일뤼미나시옹’(‘채색된 판화’라는 뜻)을 연주한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동명 시집에서 발췌한 9개의 산문시에 곡을 붙인 작품이다. 최근 클래식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보스트리지를 헤드라이너로 초이스한 과정을 설명했다.
“7~8년 전부터 협연을 계획했는데 번번이 좌절됐어요. 첫 공연은 그의 건강상 문제로, 두 번째 공연은 코로나로 취소됐죠. 드디어 세 번째는 함께하게 돼 기쁩니다. 아주 귀한 곡이에요. 가곡 역사상 시인과 음악가의 매혹적 만남을 꼽으면 늘 거론되는 작품이죠. 이번에 제대로 감상할 굿찬스입니다. 강추합니다.”
보스트리지는 개막 첫날(9일) 거암아트홀에서 ‘음악, 인문학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렉처도 진행한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음악가가 되기 이전에 역사학자로 옥스퍼드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학자였다. 그래서 이름 앞에 ‘노래하는 인문학자’ ‘역사학 박사 테너’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강연에서는 자신이 부를 노래를 만든 브리튼과 전쟁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강 감독은 스티븐 뱅크스의 색소폰 연주회(19일)도 놓치면 후회한다고 장담했다. 그는 “다양성 주제를 대표하는 연주자이기도 하지만 그의 색소폰 연주를 들으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며 “본인 창작곡부터 슈만의 곡, 재즈풍의 곡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힉엣눙크’는 샛별 발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미나 유럽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젊은 음악가를 소개해왔고, 그 반대로 한국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들의 해외 진출도 꾸준히 지원해오고 있다. ‘힉엣눙크’의 전통인 ‘젊은 비르투오조’ 시리즈(16일)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올해는 바이올리니스트 장한경을 선정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종솔로이스츠 사무국에서 지난 몇 년간 주의 깊게 보아온 연주자입니다. 작년에 월튼의 콘체르토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저희 스태프가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16세의 나이에 비해 놀랄 만큼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이번 공연 전반부는 미국 작곡가(에이미 비치, 존 코릴리아노), 후반부는 프랑스 작곡가(외젠 이자이, 가브리엘 포레)를 연주할겁니다.”
이밖에도 15일 낮에는 음악계가 소홀하기 쉬운 관객층을 위한 콘서트 ‘Songs My Mother Taught Me(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가 진행된다. 미래의 관객인 영유아를 대상으로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연이다. 모두 바닥에 앉아 감상하는 콘서트다.
또한 이날 저녁에 열리는 ‘NFT 살롱’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진화하는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거리를 좁히는데 노력해 온 ‘힉엣눙크’는 그간 음악을 주제로 한 NFT를 드롭하는 것(2022년) 외에도 메타버스에서 공연(2021년)을 하는 등 트렌드를 리딩하는 선구자적 음악 단체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힉엣눙크(Hic et Nunc)’라는 타이틀이 멋지다. 라틴어인데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이다. 강 감독은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미들 네임 용재(勇才)를 직접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 ‘힉엣눙크’도 직접 이름을 지었을까.
“새로운 음악제를 구상했을 때 클래식 음악이지만 오늘의 사회와 관련이 있는 정체성을 추구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현대음악만 연주하는 음악제가 세종솔로이스츠에게 적절한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죠. 예술적·사회적으로 현재와 관련된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페스티벌을 생각했고, 그에 관한 키워드들을 모았어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힉엣눙크’였죠. 당시 음악제의 공동주최 기관인 인천대 조동성 총장과 작명에 대한 마지막 회의에서 의견을 주고받다가 최종 결정했어요.”
강 감독은 그동안 남편인 강효 교수와 함께 세종솔로이스츠, 평창대관령음악제, 힉엣눙크 등 굵직한 플랜을 잇따라 론칭하고 키웠다. 당장은 힉엣눙크에 집중하겠지만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계획도 살짝 공개했다. ‘에너자이저 강경원’이다.
“내년부터 카네기 홀에서 연례화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어요. 세종솔로이스츠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한국의 클래식을 보여주고, 뉴욕 무대에 다양성을 보태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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