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오는 3월 20~23일 시즌 첫 작품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하는 가운데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한국 전통요소의 매듭과 저고리를 활용한 감각적인 의상을 선보인다. 사진은 요바노비치가 디자인한 백작부인, 수잔나, 알마비바 백작, 피가로(왼쪽부터)의 의상. ⓒ국립오페라단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모차르트의 걸작 ‘피가로의 결혼’은 상류층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담긴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즉 희가극(喜歌劇)이다. ‘앙코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기록된 때가 ‘피가로의 결혼’ 초연(1786년)일 만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이다.

‘피가로의 결혼’ 속 알마비바 백작은 사랑하는 로지나와 결혼했음에도 결혼 생활에 싫증을 느낀다. 바람둥이 백작은 결혼의 일등 공신인 피가로의 피앙세 수잔나를 호시탐탐 노린다. 심지어 초야권(중세 영주가 자신의 영지에서 보호받고 있는 농노의 딸에 대해 처녀성을 취하는 권리)까지 발동하려고 한다.

한편 로지나를 백작에게 빼앗긴 바르톨로와 피가로를 좋아하는 마르첼리나는 피가로가 과거에 쓴 계약서를 이용해 수잔나와의 결혼을 막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피가로의 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재결합을 결심한다. 부모의 지지를 얻은 피가로와 수잔나는 백작부인 로지나와 힘을 합쳐 알마비바 백작을 골탕 먹인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모두의 축복 아래 결혼에 성공한다.

● 히트작이 낳은 최고의 히트작...명작 영화 속 OST로도 익숙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보마르셰의 희곡 ‘피가로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피가로의 결혼’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또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파리 오데옹 국립극장에서 초연될 당시 밀려든 인파로 인해 3명이 압사했을 정도로 18세기 최대 히트작이다.

희곡 초연 2년 후 모차르트와 다 폰테가 손잡고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잡은 오페라로 탄생시켰다. 작품 속 수잔나와 백작부인의 유명한 이중창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Sull’aria....Che soave zeffiretto)’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 OST로 삽입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쇼생크 감옥의 수감자들이 이중창을 듣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아름다운 음악과 감옥이라는 선명한 대비와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어 명장면으로 꼽힌다.

● 국립심포니 다비트 라일란트 지휘...‘다 폰테 3부작 마스터’ 뱅상 위게 연출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3월 20~23일 시즌 첫 작품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하는 가운데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회전 무대를 활용해 백작부인의 아틀리에와 백작의 저택을 다채로운 각도로 보여준다. 사진은 요바노비치가 디자인한 무대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3월 20~23일 시즌 첫 작품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하는 가운데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회전 무대를 활용해 백작부인의 아틀리에와 백작의 저택을 다채로운 각도로 보여준다. 사진은 요바노비치가 디자인한 무대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피앙세를 지키기 위한 갑을 향한 을의 통쾌한 대반격이 시작된다. 국립오페라단이 ‘피가로의 결혼’으로 2025년 시즌의 첫 문을 활짝 연다. 오늘날 관객들에게도 통쾌함을 안겨다 줄 ‘피가로의 결혼’은 오는 3월 20일(목)부터 23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작곡가의 감수성을 잘 표현하는 것으로 평단의 사랑을 받아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가 오케스트라 피트에 선다. 2018년 ‘코지 판 투테’, 2019년 ‘마호가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에 이어 세 번째로 국립오페라단과 손을 잡는다.

연출은 2021~2022년 베를린 국립극장에서 모차르트 ‘다 폰테 3부작’을 전통적 순서에서 벗어나(‘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프로덕션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던 프랑스 출신 뱅상 위게가 맡는다. 뱅상 위게는 세 개의 다른 작품들에서 유기적인 연관성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구성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프로덕션에선 그만의 새로운 해석이 무대에 어떻게 담길지 주목된다.

● 요바노비치의 감각적 무대....한국적 디자인·20세기 감성 녹인 53벌의 의상

이번 프로덕션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무대와 의상이다.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무대디자이너인 피에르 요바노비치의 프랑스적 손길이 담겼다. 그는 2023년 뱅상 위게와 손잡고 스위스 바젤 극장에서 ‘리골레토’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부각한 무대디자인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멋진 데뷔를 마쳤다.

이번에는 회전 무대를 활용해 백작부인의 아틀리에와 백작의 저택을 다채로운 각도로 보여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태양 빛의 변화를 통해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광란의 하루’라는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또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의상 디자이너로도 데뷔한다. 매듭과 저고리 등 한국의 전통적 요소와 1920~30년대 시대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53벌의 의상을 선보일 예정으로 국립오페라단의 무대와 의상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 사제지간 같은 배역 맡아 주목...유럽극장 ‘라이징 스타’ 대거 출연

알마비바 백작 역에는 국립오페라단 ‘맥베스’ ‘호프만의 이야기’ 등에서 선 굵은 연기와 훌륭한 연주를 선보였던 바리톤 양준모가 생애 첫 알마비바 백작을 맡는다. 또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던 바리톤 이동환도 알마비바 백작을 연기한다.

백작부인에는 풍부한 표현력으로 사랑받는 소프라노 홍주영과 그의 제자이자 베르디 국제 콩쿠르 1위, 비냐스 국제 콩쿠르 1위에 빛나는 라이징 스타 최지은이 맡아 사제지간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백작부인을 볼 수 있다.

수잔나 역으로는 청아한 음색, 투명한 고음으로 평단의 사랑을 받아온 소프라노 이혜정과 독일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전속 솔리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프라노 손나래가 무대에 오른다.

피가로 역에는 독일 도이체오퍼 베를린 극장 솔리스트로 맹활약 중인 베이스바리톤 김병길, 2023년 ‘도밍고 콩쿠르’라 불리는 오페랄리아 우승을 거머쥐었던 베이스 박재성이 연주한다.

이밖에 케루비노 역은 메조소프라노 라헬 브레데와 김세린, 바르톨로 역은 베이스 김동호, 마르첼리나 역은 메조소프라노 신성희가 맡는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