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서혜경이 지난 26일 데뷔 50주년 콘서트를 마친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리음아트앤컴퍼니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금세 피아노와 하나가 됐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을 연주하자 객석은 숨이 멎었다. 무대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만 반짝였다. 살포시 건반을 누르자 아련함과 애절함이 퍼졌고, 힘을 실어 누를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가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피아노인지 모르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펼쳐졌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올해로 꼬박 56년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열한 살에 공식 데뷔했다. 벌써 프로 입문 50주년이다. 산전수전에 이어 공중전까지 겪은 솜씨가 어디로 가겠는가.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선율은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환상케미를 발휘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역시 서혜경’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라흐마니노프 스페셜 콘서트’에서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이 지난 26일 데뷔 50주년 콘서트를 마친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리음아트앤컴퍼니


1세대 피아니스트는 여전했다. 서혜경은 여자경의 지휘하는 유토피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열정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8번의 항암치료와 절제 수술, 그리고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이겨낸 한 예술가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관객 반응도 뜨거웠다. 3악장을 마쳤을 때 박수 소리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아쉬움과 기대에 화답하듯 서혜경은 라흐마니노프의 ‘플렐류드’와 모슈코프키의 ‘불꽃’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했다.

서혜경의 연주에 앞서 차세대 대한민국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윤아인은 안정적인 호흡으로 ‘협주곡 2번’을 선사했고, 러시아 피아니시즘의 새로운 얼굴 다니엘 하리토노프는 ‘파가니니 주제의 의한 랩소디’를 들려줬다.

서혜경은 다음달 16일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되는 한러수교 30주년 기념음악회에 참가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과 파가니니 주제 랩소디를 협연한다. 이후에도 줄줄이 공연 일정이 잡혀 있다.

“건강만 유지 된다면 50년은 더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서혜경의 바람대로 앞으로 50년 롱런을 입증한 무대였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