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엠’으로 첫 예술감독 도전 백순재 “우리 삶의 미라클 보여줄게요”

12월30일 영산아트홀 콘서트 오페라 공연
지고지순 벗은 현명한 미미 캐릭터 재창조

민은기 기자 승인 2021.12.25 13:04 | 최종 수정 2021.12.25 18:32 의견 0
12월 30일 공연하는 ‘라보엠’에서 첫 예술감독을 맡은 백순재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바로 ‘미라클’이다”라며 “이번 공연에서는 이런 점에 주목해 색다른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DMC오페라컴퍼니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사실 미미가 처음 로돌포를 만났을 때 이미 자신의 시간이 곧 꺼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삶의 끝자락에서까지 사랑과 행복을 느끼고 싶어 로돌포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죠. 그동안 붙박이 이미지로 굳어졌던 지고지순 미미의 캐릭터가 이번 작품에 어떻게 다르게 투영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예요. ‘강추’입니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은 12월의 단골손님이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파리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선보인다. 1년을 마무리하는 피날네 작품인 셈이다.

올해의 라보엠 중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보엠이 눈길을 끈다. 오는 30일(목) 오후 7시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 오페라 라보엠’이다. 정식 오페라 무대는 아니지만 오롯이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알짜 연주회다.

포스터에 이름을 올린 쟁쟁한 실력을 갖춘 성악가들과 함께 ‘예술감독 백순재’에 저절로 시선이 꽂힌다. 그는 오페라코치·피아니스트·엘렉톤스페셜리스트로 유명한데 이번에 예술감독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했다.

“얼마 전에 창작오페라 ‘미라클’을 지휘했어요. 그때 우리가 사는 모든 순간이 바로 미라클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라보엠은 ‘모든 일은 기적과 같다’라고 테마를 잡았어요. 불 꺼진 방에서 열쇠를 찾으려고 더듬거리다 미미와 로돌프가 손을 잡은 것도 기적이요, 두 사람이 불꽃 사랑을 나눈 것도 기적이요, 칼바람 추위 속에서도 작가 로돌포·화가 마르첼로·철학자 콜리네·음악가 쇼나르 등이 우정을 나누며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것도 기적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 바로 이같은 기적이죠.”

백 감독은 우리 곁을 스치는 모든 인연과 시간을 기적 측면에서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작품 방향을 잡았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소설 일부를 가져와 듬성듬성 대본으로 엮었기 때문에 라보엠을 제대로 알려면 총체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낯설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새로운’ 골격을 만들었다.

12월 30일 공연하는 ‘라보엠’ 출연자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DMC오페라컴퍼니


“라보엠은 스타일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미미가 주인공이지만 무제타를 주역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미미 역시 순백의 순수여성을 벗어나 바람기 있는 여자로 묘사하는 등 제각각이죠. 그런 방향을 예술감독과 연출이 잡아줘야 하는데, 저희는 등장인물 모두를 미라클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작업했어요.”

윤상호 연출과 여러 차례 미팅을 통해 상호 교감을 충분히 나누었다고 백 감독은 설명했다. 미미를 지고지순한 스타일 대신 로돌포의 마음을 이미 꿰뚫고 있는 현명한 캐릭터로 잡았다. 밥벌이를 위해 한땀 한땀 수를 놓으면서도 로돌포를 모두 지켜보고 있는 여인이다.

캐스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번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올 한해 동안 열린 거의 모든 오페라를 감상했다. 그렇게 해서 초청한 주인공들이 소프라노 정성미(미미 역), 소프라노 윤현정(무제타 역), 테너 김동원(로돌프 역), 바리톤 곽상훈(마르첼로 역), 바리톤 최은석(쇼나르 역), 베이스 신명준(콜리네 역), 베이스바리톤 김준빈(베누아·알친도르 역) 등이다. 총감독은 오종무, 음악코치는 김하얀이 맡았다.

이번 공연은 새로 론칭한 DMC오페라컴퍼니의 첫 작품이다. 첫 선을 보이는 만큼 예술감독으로서의 무게감이 만만찮다. 지금까지는 맡은 역할만 해내면 됐지만 이번에는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하는 총사령관이다. 자연히 일이 산더미다.

“막상 제작을 해보니 재미도 있지만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음악적 퀄리티를 높이는데만 올인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연습 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마케팅을 위한 다양한 툴을 정하고 수정하는 것까지 머리를 맞대고 결정해야 하고요. 음악코치로서 피아노 리허설이나 엘렉톤을 연주할 때는 다른 영역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지만, 제작자나 예술감독은 지휘자 총보에서부터 파트보, 무대장치, 의상, 공연장 사전 미팅 등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요. 9월부터 12월까지 운동화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녔어요. 물론 그만큼 희열도 크고 기쁨도 크지요.”

제작자는 연주자와 다를 수밖에 없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 일이 보통이 아니다. 라보엠만 해도 다양한 무대의 방식이 있는데, 그걸 다 하나하나 체크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처음 정한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런 오랜 탐구 끝에 올려질 라보엠이니 기대된다.

12월 30일 공연하는 ‘라보엠’ 출연자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DMC오페라컴퍼니


멀티 플레이어! 바로 백 감독이 그렇다. 피아니스트, 엘렉토니스트, 음악감독, 지휘에 예술감독까지 맡았다. 도대체 그 많은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것저것 다하니 헷갈리지 않느냐고 묻기도 해요. 그런데 어디서 섭외해오거나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마인드가 금세 바뀌어요. 거기에 맞게 스위치가 탁 켜지는 거죠. 흔히 서로 성격이 맞아야만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우는 그때그때 적응이 됩니다. 카멜레온처럼요.”

소속이 다른 사람끼리 만나 작업을 하면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은 타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에 있다. 제작자든 예술감독이든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일이 술술술 풀린다.

“물론 저에게도 저만의 기준이 있죠. 간단한 예로 엘렉톤 연주를 들어볼게요. 일정과 이동 시간, 편곡 여부, 연주비 등을 감안해서 우선 개런티를 정합니다. 그리고 초청한 기획사가 책정한 금액을 서로 비교해보고 타협해서 최종 개런티를 정하는 식이죠. 이 금액이 안되면 없던 일로 하자는 식으로는 하지 않아요. 제작이나 예술감독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원칙만 고수하지 않거든요. 협력의 사회고 제가 그분들을 맞춰드리면 틀림없이 저를 예우해주고 나중엔 저를 맞춰주더라고요”

12월 30일 공연하는 ‘라보엠’에서 첫 예술감독을 맡은 백순재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바로 ‘미라클’이다”라며 “이번 공연에서는 이런 점에 주목해 색다른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DMC오페라컴퍼니


피아니스트로 시작했지만 오페라코치, 엘렉토니스트, 음악감독 활동과 더불어 오페라 제작과 예술감독의 영역까지 손을 뻗은 백 감독. 어쩌면 이런 다양한 자리에 거리낌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그의 친밀감과 음악을 총체적으로 볼 줄 아는 시각에 있는지 모른다.

“사실 조금은 겁도 많고 고민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분별력을 가지고 용기를 내서 항상 도전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죠. 예전에는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놓친 것도 많았어요. 제가 큰 뜻을 품고 음악을 시작해서 피아노를 배우고, 엘렉톤을 연주하고, 지휘를 하고 예술감독을 한 것이 아니에요. ‘이걸 공부했으니 반드시 잘 활용해야지’하는 의도나 욕심 없이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했을 뿐인데 여러 장르가 하나하나씩 저에게 다가온 것뿐입니다.”

위대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주어진 일을 묵묵히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받아들이는 음악가들도 있다. 백 감독이 그렇다. 그는 학창시절 평범했고 늘 중간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음악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친구들은 놀라워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저를 이끈 것은 어쩌면 사람보다 여러 가지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 수많은 시추에이션들이 지금까지 저를 끌고 와준거죠. 반주를 하면서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 어떤 공연이든 최선을 다해 임무를 마쳐야 하는 상황들이 펼쳐졌어요. 그 상황들을 극복하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미라클이기도 하고요.”

더 다양한 분야와 콜라보해보고 싶다는 백 감독 앞에는 아직 밟지 않은 땅이 널려 있다. 예술감독으로 첫 도전하는 라보엠이 어떤 ‘미라클’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티켓은 5만원이며 인터파크와 영산아트홀에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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