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프 흐루샤 “포커싱 맞추지 말고 자유롭게 들어야...이게 보헤미안 사운드 감상법”

밤베르크심포니 이끌고 내한공연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9번 선사

“지휘 인생 초기에 정명훈에 큰 영향
내가 만난 한국 음악가들 모두 최고“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3.04 10:10 | 최종 수정 2023.03.04 21:06 의견 0
체코 출신의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올해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를 이끌고 오는 3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빈체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음악을 들을 때 특별히 어떤 것에 포커싱을 맞춰야 하는지 구체적인 조언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조차도 무대 위에서는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해야 하거든요. 이번에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과 9번을 연주합니다. ‘보헤미안 사운드’를 제대로 느끼려면 아주 자유로운 감상법이 필수죠.”

체코 출신의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1981년생)가 올해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를 이끌고 오는 3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서울에서는 8번 교향곡을, 대구콘서트하우스(28일)와 경기아트센터(30일)에서는 9번 교향곡을 들려준다.

2016/17시즌부터 제5대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고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지휘한 풀편성 오케스트라 작품이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과 9번이다. 가장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심포니다”라며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 오케스트라의 핵심 레퍼토리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자신과 오케스트라의 DNA에 민족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체코 음악이 흐르고 있음을 강조한 것인데, 역사적 배경을 알면 이런 자부심이 금세 이해된다.

밤베르크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인구 7만의 도시다. 이곳을 기반으로 1946년 밤베르크 심포니가 탄생했다. 설립 과정이 특이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체코슬로바키아(1992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됨)에서 독일로 이주한 음악가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요제프 카일베르트(1908~1968), 오이겐 요훔(1902~1987) 등 전설적 마에스트로들이 초기 예술감독을 맡아 단숨에 독일 톱클래스 악단으로 만들었다.

체코 출신의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올해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를 이끌고 오는 3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빈체로 제공
체코 출신의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올해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를 이끌고 오는 3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빈체로 제공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보면 밤베르크 심포니는 수십 년 동안 체코 프라하 내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문화를 가졌던 오케스트라에서 유래했어요. 밤베르크 심포니는 체코 필하모닉과 같은 조상을 둔 ‘사촌 오케스트라’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밤베르크 심포니의 국내 첫 방문은 2016년이다. 지휘 명장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1927~ )가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교향곡을 이틀간 선보이며 기량을 뽐냈다. 이번 7년만의 내한 공연에서는 드보르자크뿐 아니라 브루크너의 ‘교향적 전주곡’도 선보인다.

흐루샤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제가 찾아낸 아름다운 곡이다”라며 “구스타프 말러의 ‘블루미네’, 한스 로트의 ‘교향곡 1번 E장조’와 함께 녹음해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팬들에게 들려줄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다.

“저희는 브루크너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해외 투어 중 브루크너와 드보르자크를 함께 선보일 기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아요. 이번에 연주할 ‘교향적 전주곡’은 교향곡에 비해서는 사이즈가 작은 작품이지만, 적어도 체코와 독일을 잇는 레퍼토리로서는 아주 의미 있는 곡이에요.”

그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사실 제 지휘 인생 초기에 큰 영향을 준 지휘자가 정명훈이다”라며 “2006~2007년 파리에서 보조 지휘자로 있을 때 많은 걸 습득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명훈은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었다. 정명훈이 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 있던 시절에 가졌던 협연에 대해서도 추억했다.

“두 번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췄어요. 2010년 스메타나 ‘나의 조국’을 연주했고, 2013년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을 연주했죠. 지금까지도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을 생각하면 한국이 떠올라요. 당시 객석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죠. 밤베르크 심포니와 그런 경험을 함께 느낄 수 있을 이번 투어가 정말 기대돼요.”

체코 출신의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올해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를 이끌고 오는 3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빈체로 제공


흐루샤는 “밤베르크 심포니에 대한 밤베르크 시민들의 지지는 엄청나다”며 “주민의 거의 10%가 음악 애호가며 정기적으로 저희 공연을 감상하는 골수팬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장 없이 말씀드리면, 밤베르크 심포니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 중 하나며 도시의 문화적 삶을 책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커리어를 넓혀가고 있는 김선욱이 협연해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준다. 흐루샤는 “김선욱은 아시아와 유럽, 특히 독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협연은 처음이다”며 “그의 음악에 대해 아주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한국 음악가들의 역량을 높게 평가했다. “제가 본 대부분의 한국 음악가는 최고의 연주가다”라며 “한국인의 에너지와 기질, 섬세함과 정밀함이 성실한 연습·준비와 만나 음악을 만들어가는 점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이 특히 집중해 들어야할 포인트를 알려달라는 말에는 오히려 ‘묻지마 감상’을 강추했다. 그의 조언은 수학 문제 풀이 과정과 엇비슷했다. 정답을 맞히려 하지 말고 설령 틀리더라도 해결 과정에 몰두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강조했다.

체코 출신의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올해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를 이끌고 오는 3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빈체로 제공
체코 출신의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올해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를 이끌고 오는 3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빈체로 제공


“저도 무대 위에서는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관객도 저처럼 자유롭게 음악을 들어야 하고요. 청중의 입장에서도 템포, 표현, 강조, 균형, 음색, 개성 등 많은 것을 상상하며 연주에 매혹되는 것이 아주 커다란 즐거움에 이르는 길이죠.”

그러면서 “‘감정’이라는 추상적인 상태는 작품의 구조를 만드는 ‘지능적인 면’과 결합돼 음악의 세부적인 디테일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음악을 이끌어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객석에서 들을 때 한 번쯤 이 설명을 떠올려 보면 저희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3년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팬데믹을 처음 경험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예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는 정신적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예술이란 우리의 마음, 두뇌, 기쁨, 슬픔, 딜레마, 문제, 희망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연결시켜줄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엔터테인먼트와 소비지상주의의 영향을 받는 예술이 아닌 순수 예술은 정신적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이 투자는 우리가 느끼는 풍요로움을 더 깊게 만들어주고요. 실제로 예술은 종종 재미없기는 하지만, 정신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게 곧 예술은 재미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eunk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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