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조철희·김미소·염현준이 충격 막장 드라마를 표방한 오페라 ‘버섯피자’에서 연기하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2023 본격 충격 막장 드라마!!’ 포스터의 홍보문구가 눈에 확 띄었다. 짐작컨대 불륜, 살인,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 소재를 담고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런데 오페라 제목이 ‘버섯피자’다. 맛있는 버섯피자다. 머리를 조금 더 굴려보면 ‘버섯피자에 독을 넣는다고 설정하지 않았을까’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눈길 끄는 것들을 잔뜩 끌어들였으니 기본적 재미는 보장된 셈이다.
볼룹투아(소프라노 이소연 분)는 포르마조(바리톤 염현준 분)와 결혼했지만 젊고 매력적인 운전사 스콜피오(조철희 분)와 사랑에 빠진다. 아슬아슬한 밀회를 즐긴다. 볼룹투아는 아예 포르마조를 없앨 결심을 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버섯피자에 독을 집어넣어 살해하려는 계략을 세운다.
평소 포르마조를 흠모하는 볼룹투아의 여동생 포비아(메조소프라노 김미소)는 언니의 속셈을 알게 된다. 사냥에서 돌아온 형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독이 들었으니 절대 피자를 먹지 말라”고 알려준다. 분노한 포르마조는 숨어있는 스콜피오를 끌어내 아내가 만든 피자를 먹으라며 총으로 위협한다. 잔뜩 겁을 먹은 스콜피오는 어쩔 수 없이 피자를 한 조각 먹는데...
이소연·조철희·김미소·염현준이 충격 막장 드라마를 표방한 오페라 ‘버섯피자’에서 연기하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메조소프라노 김미소와 바리톤 염현준이 충격 막장 드라마를 표방한 오페라 ‘버섯피자’에서 연기하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오페라팩토리가 제작한 ‘버섯피자’가 제21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를 빛냈다. 12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공연을 감상했다. 모두 네 차례 팬들을 만나는데 이날이 세 번째 무대였다.
‘버섯피자’는 블랙코미디다. 네 남녀의 얽히고설킨 막장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자칫 무거운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는 주제를 현대 희극 오페라의 대가인 세이모어 바랍의 재치 넘치는 대본·작곡으로 커버했다. 거기에 더해 예술감독 박경태, 연출 이강호, 지휘 문진탁, 피아노 안희정, 엘렉톤 백순재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줬다.
오페라에 대한 선입관이 있다, 뭔가 무게감이나 장중함이 느껴져야 한다는. 하지만 ‘버섯피자’는 이런 생각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 노래와 대사로 진행돼 극에 몰입할 수 있다. 서로의 소통을 중시하는 연출 덕분에 보다 친밀하게 즐길 수 있다. 소극장도 메리트다. 좌석 앞뒤 간격이 살짝 좁아 불편하기는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연주자를 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 오페라의 최대 장점은 끊임없이 깔깔거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웃음폭탄이 곳곳에 배치돼 시의 적절하게 빵빵 터진다. 네 명의 성악가는 노래는 기본이고 수준급 연기실력으로 60분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볼룹투아 이소연’은 위험한 사랑에 빠진 불륜녀를 잘 표현했다. 그는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늘 동생에게 시장에 다녀오라고 한다. 그 시간에 맞춰 스콜피오를 몰래 집으로 끌어들여 달콤함을 즐긴다. 손가락질 받는 역할이지만 밉지 않다. 촘촘한 흰색 도트 문양의 빨강 드레스는 욕망을 갈구하는 캐릭터에 안성맞춤 의상선택이다.
테너 조철희와 바리콘 염현준이 충격 막장 드라마를 표방한 오페라 ‘버섯피자’에서 연기하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이소연·조철희·김미소·염현준이 충격 막장 드라마를 표방한 오페라 ‘버섯피자’에서 연기하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스콜피오 조철희’는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볼룹투아가 3시까지 집으로 오라고 하는데도 늘 4시가 넘어서야 도착한다. 그는 밀회를 즐기려는 순간, 소파 밑에 있던 뜨개질 바늘에 엉덩이를 찔리는 코믹장면을 여러 번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거기에 더해 ‘저질 춤’까지 척척 선보여 미션 클리어했다. 장롱에 숨어 있다 들킨 그는 빨리 불륜 사실을 이실직고하라는 포르마조의 강압에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하다. “항상 늦는 버릇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멘트를 날리자 관객 모두는 뒤집어졌다.
‘포비아 김미소’도 한방이 있었다. 느닷없이 “형부 사랑해요”를 외치며 키스 세례를 퍼부으려고 달려들 땐 코빅급 웃음이 터졌다. 버섯을 먹었는데도 스콜피오가 죽지 않자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오판한 포르미조는 포비아를 죽인다. 상체가 소파에 고꾸라진 상태로 죽은 모습을 연기하는 투혼은 압권이다. 오랫동안 불편한 자세를 유지해야 했음에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나머지 주인공들이 한명씩 죽을 땐 갑자기 일어나 “내가 죽다니!”를 한번 씩 외쳐 배꼽이 빠질 정도였다. 죽지 않는‘좀비 포비아’다. 또한 ‘포르마조 염현준’은 익살스러운 얼굴 표정과 경쾌한 노래로 극의 중심을 잡아줬다.
이 기막힌 코믹오페라를 아직 보지 못했다면 한차례의 기회가 남아있다. 16일(일) 오후 3시 마지막 네 번째 공연이 열린다. 웃을 일 많지 않은 요즘 확실한 웃음 서비스를 기대해도 좋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