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복·최원진·송난영이 건강한 해학미 가득한 오페라 ‘봄봄’에 출연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1930년대 강원도의 한 시골 농가. 딸부자 오 영감(베이스 심기복 분)은 고된 농사일에 부려 먹기 위해 첫째 사위에 이어 길보(테너 최원진 분)를 둘째 데릴사위로 맞아들인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부지런하기만 한 길보는 5년간 일하면서 자나 깨나 순이(소프라노 송난영 분)와 혼례를 올릴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오 영감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인물인가. 길보가 장가를 들면 농사일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둘째 딸의 키가 자라면 승낙해 주겠다며 결혼을 계속 미룬다.

봄을 맞아 순이의 가슴이 봉긋해졌다. 콧속으로 따뜻한 바람이 숭숭 들어보니 마음이 진달래 빛으로 요동친다. 어서 자기도 신부가 되고 싶은데 길보는 즉각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래서 “빨리 혼인 시켜달라고 졸라봐”라고 은근 닦달한다. 길보는 혼인 문제를 놓고 오 영감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만약 혼례를 올려주지 않을 거라면 그 동안 주지 않은 새경을 모두 내놓으라고 겁박한다. 안성댁(메조소프라노 신민정 분)은 순이와 길보를 응원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오 영감은 계속 미루려고 하지만 성화에 못이겨 결국 승낙하고야 마는데...

이건용 대본·작곡의 오페라 ‘봄봄’은 김유정의 소설이 원작이다. 학창시절 국어 시험문제에 단골 지문으로 나왔던 작품이기 때문에 한번쯤 읽어본 사람이 많다. 리음아트앤컴퍼니가 더 업그레이드된 ‘봄봄’으로 제21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 참가했다. 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공연을 감상했다.

심기복·최원진·송난영이 건강한 해학미 가득한 오페라 ‘봄봄’에 출연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심기복·최원진·송난영이 건강한 해학미 가득한 오페라 ‘봄봄’에 출연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심기복·최원진·송난영이 건강한 해학미 가득한 오페라 ‘봄봄’에 출연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관객 참여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것.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이다. 한숙현 음악감독은 막이 올라가기 전에 미리 “이번 공연은 여러분들의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 성공한다”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길보는 바보래요”라며 놀리는 셋째딸 역으로 일반 초등생 4명(강혜민·김가윤·김채연·신나경)을 캐스팅했다. 길보의 미래 처제들은 제법 대사가 있는 분량을 잘 소화하며 네 차례 공연을 빛냈다. 결혼식 장면에서는 즉석에서 들러리 설 사람을 신청 받아 참여시켰다. 객석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의 추억도 선사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다. 쭈뼛대지 않고 “저요 저”라며 팔을 번쩍 드는 사람이 많았다. 또 관객 모두가 권성준 지휘자의 손끝에 맞춰 “봄봄봄봄~봄봄봄봄~” 축가를 불렀다.

관객들이 결혼식 장면에서 들러리로 참여해 오페라 ‘봄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심기복과 신민정이 해학미 가득한 오페라 ‘봄봄’에 출연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제작사인 리음아트앤컴퍼니 김종섭 대표도 힘을 보탰다. 오 영감의 친구로 극을 이끌어가는 이장 역을 맡은 것. 그는 “제작비 아끼려는 눈물겨운 출연이다. 막상 서보니 무대체질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선사했다.

남녀노소 모두가 우리 전통 해학의 단물을 1시간 동안 쪽쪽 맛볼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은 역시 네 명의 주인공들. 드라마틱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지금껏 알고 있던 평면적 인물을 벗어나 입체적 캐릭터를 구축하며 극의 활력을 불어 넣었다. 토속적 구어체의 귀쏙쏙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는 오페라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오영감 심기복’은 노동력 착취하는 빌런이 아니라 점차 무너져가는 농촌을 지키려는 흙의 사나이로 해석되기도 했다. ‘길보 최원진’은 미래의 장인과 부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지만, 건강한 땀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 “나는 나는 길보랍니다. 데릴사위로 들어와 머슴처럼 일만하고 5년을 지켜온 바보예요”라는 아리아를 부를 땐 심적 동질감을 이끌어 냈다. “장인어른 장가들여 줘요. 장가, 장가, 장가, 장가”라고 외칠 땐 물불 안가리는 저돌성도 엿보였다.

한숙현 음악감독이 해학미 가득한 오페라 ‘봄봄’에 출연하는 일반인 초등생 연기자를 소개하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최원진과 송난영이 해학미 가득한 오페라 ‘봄봄’에 출연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리음앤아트컴퍼니 제공


‘순이 송난영’은 가장 줏대 있는 캐럭터였다. 아직 키가 작아 혼례를 올려줄 수 없다고 하자 하이힐을 신어 키를 늘리는 깜짝 묘안을 짜냈다. “키만 컸나, 몸도 다 컸지”라며 당돌한 노래도 주저하지 않는다. 결혼식 추진이 지지부진하자 빨강 립스틱 짙게 바르고 한껏 모델 포즈를 취하고는 “난 어린아이가 아니야”라며 길보의 적극적 행동을 부추겼다. 어디 이뿐인가, 이장과 관객들이 결혼식을 신식으로 할 것인지 전통식으로 할 것이지 결정하자고 하자, 갑자가 툭 튀어나와 “왜 내 결혼식을 당신들이 결정하느냐”라며 큰소리로 외쳐 주체적 여성상을 드러냈다.

‘안성댁 신민정’은 남편을 위하는 마음과 딸을 위하는 마음을 동시에 노래하며, 늘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따뜻한 우리네 엄마를 잘 표현했다.

연출 윤송아, 조연출 신혜지, 음악코치 백순재, 엘렉톤 서보연, 소리북 정초롱, 타악기 빈재훈이 출연자들의 연기와 음악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특히 소리북과 타악기로 살짝 단조로운 선율에 액센트를 줬다.

공연을 못본 사람들을 위해 아직 한 번의 공연이 더 남아있다. 길보와 순이의 풋풋 로맨스를 보고 싶다면 14일(금) 오후 7시30분 티켓을 예매하면 된다. “결혼은 우리를 신나게 해요, 기쁘게 해요, 미치게 해요. 봄은 우리를 신나게 해요, 기쁘게 해요, 즐겁게 해요, 들뜨게 해요.” 막이 내리면 혼자서도 흥얼흥얼 되풀이하는 선율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