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은 오는 3월 5일부터 4월 27일까지 세종미술관 2관에서 2025 세종미술관 기획 전시 ‘로봇드림: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를 개최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미국의 거장 판화가 마크 팻츠폴(1949년생)은 지난 1981년 미국 신시내티에 클레이 스트릿 프레스(Clay Street Press)라는 판화 공방 겸 화랑을 열고 수백 명의 미술가와 작업했다. 그는 1983년에 판화 제작들 위해 이곳을 방문한 백남준(1932~2006)을 처음 만났다. 백남준이 열일곱 살 더 많았다.
‘합’이 잘 맞았다. 팻츠폴은 협력자·조력자로 백남준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TV와 비디오로 구성된 1986년 연작 ‘로봇 가족(Family of Robot)’을 비롯해 백남준이 구상한 다수의 프로젝트를 어시스트했다. 두 사람의 협업은 1989년부터 ‘백남준 팩토리(Paik Factory)’라 불린 신시내티의 한 작업 공간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백남준은 TV를 물리적 조각 재료로 활용했다. 전통적 조각의 개념을 확장했기 때문에 작품들을 ‘TV 조각’이라고 처음 명명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오는 3월 5일부터 4월 27일까지 세종미술관 2관에서 2025 세종미술관 기획 전시 ‘로봇드림: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를 개최한다. 1980~90년대 백남준의 TV 조각 작품을 제작했던 ‘백남준 팩토리’와 이에 얽힌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를 서울에서 최초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전시는 판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남천우 프린트아트리서치센터 디렉터의 역할이 컸다. 그는 2007년 신시내티에 있는 팻츠폴의 판화 공방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백남준과 관계된 직·간접적 ‘유산’이 제법 많았다. 팻츠폴이 고이 간직하고 있던 백남준의 흔적을 국내로 가져와 지난해 부산에서 아카이브 전을 개최했고, 이번에 서울에서도 전시를 여는 것.
희귀한 자료가 많다. 1983년 첫 만남을 시작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백남준의 작품 제작을 조력했던 수석 디자이너 겸 테크니션 팻츠폴의 소장품을 소개한다. 백남준 작품 제작에 쓰인 연구 스케치·설치 도면·사진을 오려 만든 목업·사진·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 300여점과 같은 시기에 제작된 판화 20여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이를 통해 백남준의 작품 기획 과정 그리고 팻츠폴과의 협업 역사를 공개한다.
백남준과 마크 팻츠폴이 협업한 첫 판화 모음집 ‘V-아이디어: 선험적’(1984)은 빈티지 텔레비전 화면 모양의 동판화 10장으로 구성됐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백남준과 마크 팻츠폴이 협업한 첫 판화 모음집 ‘V-아이디어: 선험적’(1984)은 빈티지 텔레비전 화면 모양의 동판화 10장으로 구성됐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V-아이디어: 선험적(V-IDEA: a priori)’(1984)과 ‘진화, 혁명, 결의(Evolution, Revolution, Resolution)’(1989)를 만나볼 수 있다. ‘V-아이디어: 선험적’은 백남준과 팻츠폴이 협업한 첫 판화 모음집이다. 빈티지 텔레비전 화면 모양의 동판화 10장으로 구성됐다. ‘진화, 혁명, 결의’는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백남준이 혁명가 8인을 8개의 TV 조각으로 형상화 한 시리즈를, 판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뿐만 아니라 1980~90년대 개최된 백남준 전시 포스터도 함께 소개하며, 해당 시기에 발표된 백남준 TV 조각 작품의 전반적인 작업 활동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두 개의 주요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백남준 팩토리’ 자료로 구성됐으며, 두 번째는 백남준의 판화가 제작된 ‘백남준과 마크 팻츠폴 판화 공방’의 아카이브 자료다.
‘백남준 팩토리’ 섹션은 백남준의 대표적인 로봇 조각이 제작된 전성기 기록을 담고 있다. 이 공간에서는 팩토리의 연대기, 주요 전시 포스터, 공공 프로젝트 자료 등을 통해 백남준과 팻츠폴의 협업 역사를 조명한다. 이를 통해 백남준 미디어 조각의 황금기를 엿볼 수 있다.
이어지는 ‘백남준과 마크 팻츠폴 판화 공방’ 섹션에서는 백남준이 팻츠폴의 판화 공방에서 작업한 판화를 선보인다. 이를 통해 예술과 대중의 소통을 고민했던 백남준이 판화를 중요한 매개로 시도했던 실험과 메시지를 살펴볼 수 있다.
백남준과 마크 팻츠폴이 공동작업한 '삼원소를 위한 목업'(1989) 스케치. ⓒ세종문화회관 제공
전시 기간 연계 프로그램으로 백남준 전문가들의 토크 콘서트를 총 4회 진행한다. ‘로봇 드림: 토크 콘서트’는 백남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주제로 각 회차를 구성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선사한다.
첫 번째 토크인 ‘백남준 팩토리의 추억: 백남준의 협업자들’은 3월 9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이 자리에는 백남준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기술적으로 구현한 핵심 인물, 팻츠폴과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가 참여해 백남준과의 협업 과정 그리고 작품 제작에 얽힌 생생한 뒷이야기를 전한다. 이정성 대표는 ‘백남준의 손’으로 통하는 장인이다. 1988년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그의 작품을 전담 제작·관리·정리하고 있다. 김금미 백남준문화재단 이사가 모더레이터를 맡는다.
또한 4월 6일 오후 3시에는 미술 안내자로 유명한 양정무 한예종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백남준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교해, 두 예술가가 각기 다른 시대를 어떻게 뛰어넘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펼친다. 두 천재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이번 강연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김경아 전 월간사진 편집장이 모더레이터로 나선다.
‘로봇드림: 토크 콘서트’는 50명 정원으로 세종예술아카데미 서클홀(지하1층)에서 진행하며, 사전 신청을 통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은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작품을 구상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공간이었던 1980~90년대의 ‘백남준 팩토리’를 재조명하고 그곳에 숨겨진 방대한 양의 자료를 선보이는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기술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내다보며 예술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갔던 선구자 백남준의 실험 정신을 통해 기술과 인간, 문명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입장 마감은 오후 6시 30분이다. 전시 기간 중 1일 2회(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도슨트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며 사전 예약, 현장 접수 모두 가능하다. 전시 기간 중 휴관일은 없다.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