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규의 개인전 ‘제주시점: 희고 흰 바람’이 7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양동규의 ‘이끼_02(2025.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0x34cm). ⓒ제주갤러리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2025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 작가인 양동규의 개인전 ‘제주시점: 희고 흰 바람’이 오는 7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제주라는 구체적 장소, 그중에서도 4·3의 시간을 품은 공간을 중심으로 그 땅에 남겨진 사물과 감각을 따라가는 사진 및 영상 설치 작업이다. 동광리 무등이왓, 다랑쉬굴, 령이골, 북받친밭 등 작가가 직접 발로 디딘 장소들에는 한때 누군가가 살았고, 사라졌고, 아직 기억되지 못한 시간들이 침묵으로 남아 있다.
양동규는 숯, 이끼, 바람, 돌, 나무 같은 자연물을 풍경이 아닌 4·3 이후의 정동(情動)을 품은 존재로 마주한다. 이 자연물들은 작가의 몸과 시선을 거치며 사진, 영상, 설치로 재현되고 관람객에게는 언어 이전의 감각으로 전달된다.
시인 김수열은 이 전시를 “장소의 혼(Genius Loci)을 직감하는 작가”의 작업이라고 표현하며, “신칼 대신 카메라를 든 심방(‘무당’의 제주 방언), 그리고 흰 바람을 아는 작가”라고 말한다.
제주의 땅속에서 발굴되는 숯은 4·3 당시 사람들을 데우던 불씨의 잔여물이다. 이것은 일상의 흔적을 넘어 생존의 기억이자 침묵되어야만 했던 체온의 기록이다. 작가는 이 숯을 감응의 매개로 불러내어, 아직도 식지 않은 정서적 잔열을 관람객에게 전한다.
이끼는 생명이 물에서 뭍으로 옮겨온 가장 초기의 생물이다. 4·3의 시간을 지나 사라진 존재들이 있던 자리에 이끼는 다시 깃들고, 조용히 퍼지며, 생명을 붙잡는다.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가 “이끼는 필요한 만큼만 갖고 크게 보답한다”고 말했듯, 이끼는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깊이 있는 생명의 방식이다.
양동규의 개인전 ‘제주시점: 희고 흰 바람’이 7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양동규의 ‘설빛_2(2025. 파인아트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0x34cm). ⓒ제주갤러리 제공
양동규는 이끼를 통해 애도와 부재의 자리에 희망을 얹는다. 이는 시각보다 감촉으로 먼저 느껴지는 경험이며, 침묵 속에서도 살아나는 생명 그 자체를 보여준다.
‘희고 흰 바람’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떠도는 감응의 통로다. 이 바람은 제주의 풍경 속을 스치고 지나가며, 그 자리에 남은 사물과 기억을 흔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감정을 자극하고, 사라진 존재들의 흔적을 드러낸다.
‘희고 흰 바람’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바람의 흐름 속에서 기억되지 못한 시간과 장소의 혼을 감지하는 것에 주목한다. 이 바람은 말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정치성과 슬픔 이후 남겨진 아름다움을 함께 품는다.
이 전시는 사진(118점)과 영상(3점) 그리고 설치(2점)를 통해 감정-기억-정체성이 연결되고 교차되며 반복되는 구조다. 이러한 점에서 사라진 존재들의 기억을 자연물을 통해 감응하게 함으로써, 기존 4·3 관련 작업들과 차별화 한다.
제목에 담긴 ‘희고 흰’이라는 말은 김지하의 ‘흰 그늘’과 한강의 ‘흰’에서 착안한 것으로 희생과 부재, 애도를 깊이 있게 엮어낸다. 한 장면, 한 기억, 하나의 사물이 한 작가의 몸을 통해 다시 재현되고, 타인에게 감응될 수 있는 과정을 관람객은 경험하게 된다.
양동규 작가는 말한다. “바람은 머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자리엔, 그 바람이 남긴 무언가가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오랫동안 바라본 풍경은 그 자체로 깊은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시간을 머금은 숯과 이끼는 오래전 머물렀던 몸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정이 있고,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바람의 무게가 있습니다. ‘희고 흰 바람’은 숯과 이끼, 나무와 바람, 산과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조금은 고요하게,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흰 바람이 스쳐 간 그 자리에, 당신의 발걸음이 머무르기를 기다립니다.” 전시는 10일 오후 5시에 오픈식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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