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김성혜 ‘브람스 독일레퀴엠’ 제5곡으로 살아있는 사람들도 위로

수원시립합창단 제181회 정기연주회 성황...세상 모든 어머니 위한 효심의 노래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6.29 20:59 | 최종 수정 2023.03.20 10:29 의견 0
소프라노 김성혜가 23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브람스의 ‘독일레퀴엠’ 제5곡을 부르고 있다. Ⓒ수원시립합창단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소프라노 김성혜가 브람스의 ‘독일레퀴엠’ 제5곡을 부르자 쏟아지는 폭우도 잠시 잦아 들었다. 마치 귀를 쫑긋 세우고 나도 한번 들어보겠다는 듯. 김성혜와 수원·안양시립합창단은 약 7분에 걸쳐 솔로–합창-솔로-합창의 순서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를 노래했다. 콘서트장은 고요 속에서 감동이 몰려왔다.

“너희가 지금은 슬퍼하고 있지만 / 내가 너희를 다시 볼 것이니 / 너희 마음은 기뻐질 것이고 / 아무도 그런 너희 기쁨을 / 가져가지 못하리라”(요한복음 16장 22절) 김성혜의 독창 파트가 아름답게 펼쳐지며 인간적인 위로와 위안의 감정이 가득하다. 힘들었던 삶의 무게가 이렇게 가벼워지다니, 역시 음악의 마법이다.

이어 “내가 너희를 위로 하리라, 어머니가 위로하는 것처럼”(이사야 66장 13절)이라고 합창 파트가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다시 독창으로 “나를 보라 / 나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 슬퍼하며 수고하고서 / 이렇게 커다란 평안을 얻지 않았느냐”(집회서 51장 27절)라고 노래한다. 마지막엔 합창으로 “내가 너희를 위로 하리다”라며 5악장을 마무리했다.

김성혜는 지난 23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린 수원시립합창단 제181회 정기연주회에서 빼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브라바 갈채를 받았다. 이날 프로그램은 ‘브람스 독일레퀴엠’. 제임스 킴이 지휘봉을 들었고, 솔로 독창자로 소프라노 김성혜와 바리톤 서진호가 섰다. 그리고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솔로이스트·합창단과 호흡을 맞췄다.

레퀴엠(Requiem)은 라틴어로 ‘안식’을 뜻하는데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음악이다. 전례의 식순에 따른 일정한 라틴어 가사로 작곡되는 보통의 레퀴엠과 달리 브람스의 ‘독일레퀴엠’은 독일어로 된 성경의 구절을 선별해 배치했다. 그래서 말과 음악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끄는 힘이 남다르다.

김성혜와 합창단이 케미를 뽐내며 들려준 제5곡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 땅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가 됐다. 또한 살아계신 어머니에게는 “사랑해요”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게 만드는 효심의 노래가 됐다.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음악이 됐다.

소프라노 김성혜와 바리톤 서진호가 23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브람스의 ‘독일레퀴엠’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수원시립합창단


‘독일레퀴엠’은 탄생 스토리가 절절하다. 브람스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다. 1865년 빈에 머물고 있던 브람스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함부르크로 달려갔다. 하지만 고향집에 도착한 그를 맞이한 것은 싸늘한 어머니의 주검.

브람스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항상 브람스 편에 서서 따스한 마음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사랑으로 감싸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7살 연상이었다. 게다가 다리를 절었다. 평생을 가난과 불편함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마음이 더 찢어졌다.

장례를 치른 후 빈으로 돌아왔지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깊은 시름에 빠졌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텅 빈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었다. 그래서 존경하던 슈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써놓은 레퀴엠을 서랍에서 꺼냈다. 뽀얗게 먼지 쌓인 악보를 수정하고 보충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꾹꾹 눌러 오선지 위에 써내려갔다.

드디어 곡이 완성됐다. 슈만이 사망한 1856년부터 시작됐으니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심혈을 기울여 탄생했다. 1868년 4월 10일 브레멘에서 자신의 지휘로 ‘독일레퀴엠’을 무대에 올렸다. 초연에서는 여섯 개 악장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첫 연주를 마친 후 브람스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느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곡에 더 투영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프라노 독창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를 넣어 다섯 번째 악장으로 첨가해 모두 일곱 악장으로 새로 구성했다. 이듬해 2월 18일 라히프치히에서 카를 라이네케의 지휘로 최종 완성본을 공연했다.

수원시립합창단은 제1곡부터 7곡까지 촘촘한 관록의 보이스를 전달했다. 제1곡은 저음이 강조된 연주가 아주 천천히 퍼졌다. 이어 정적을 깨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이요”로 이어졌다.

제2곡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는 엄숙하고 비통한 장송행진곡으로 출발한 후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로 종결되며 영원한 기쁨을 노래했다.

바리톤 서진호의 독창은 제3곡에서 나왔다.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는 삶에 대한 회의와 인간의 고뇌를 담아냈다. 후반부 “올바른 영혼은 주의 손 안에 있어 고통 받지 않으리”는 푸가기법의 진수를 보여줬다.

제4곡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는 천국의 평안을 묘사했고, 제5곡은 소프라노가 따뜩한 위로와 위안을 건넸다.

바리톤 독창과 합창의 하모니가 어우러진 제6곡 “우리가 영원히 머물 도성은 없고”는 고난을 극복한 뒤의 영원한 평안을 들려줬다.

요한계시록에서 따온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를 장중하게 울리며 피날레 제7곡을 마무리했다.

이날의 연주는 웅장한 합창과 솔리스트들의 하모니, 독일 정통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콘서트가 됐다.

관객들은 “우리나라 합창단 실력이 세계 톱클래스다”라며 “특히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뿐 아니라 깊이 있는 소리까지 담아낸 제5곡의 연주가 귀를 사로잡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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