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정애련 ‘진달래’ ‘별을 캐는 밤’ 뒤 이을 히트곡 한꺼번에 선사

제10회 작곡콘서트 1월6일 서초동 SCC홀 개최
임경희·강명성·이상규·김생기 시인의 17곡 연주

민은기 기자 승인 2022.12.27 16:12 | 최종 수정 2022.12.27 18:25 의견 0
작곡가 정애련의 열 번째 작곡콘서트가 오는 1월 6일 서초동 SCC홀에서 열린다. 임경희·강명성·이상규·김생기 시인 등의 작품에 곡을 붙인 17곡이 연주된다. ⓒ리음아트&컴퍼니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2020년 6월 초쯤에 작곡가 정애련과 상수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러 음악회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며 교류를 했지만 함께 식사를 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그는 시원시원했다. 더듬이처럼 ‘취재의 촉’을 곤두세우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는데 쿨하게 대답했다. 한국가곡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만큼 주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요즘 핫한 거리로 떠오른 상수동 카페 거리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어머, 세상에! 서울 한복판에 이런 게 있네”하며 골목 안쪽에 있는 작은 빌라 건물을 바라보았다. 제비집이었다. 삭막한 도심 한가운데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을 발견했다. 쉽게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눈썰미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면서 “6마리에요”하며 활짝 웃었다.

며칠 뒤 그 부근을 다시 갈일이 있어 제비집을 찾았더니 텅 비어 있다. 새끼 제비들이 이젠 훨훨 날 만큼 튼튼하게 자라서 집을 비운 것이다. 빈 제비집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곧 답장이 왔다. “우와 고마워요. 고 녀석들 궁금했는데.”

<진달래>
-이상규 시·정애련 곡

먼 산 진달래 필 때면
텅 빈 가슴 설움만 남아
이별의 아픔 곱게 물들어 갑니다
악몽 같은 그리움이
삶을 할퀴고 짓밟아 오면
우뢰쳐 불러보는 그대 이름
나는 목이 쉬었습니다
어느 때나 어디서나
꽃잎 같이 피어나던 당신의 모습
굳어진 입가에 비로소
웃음이 환상처럼 번져납니다
아 꿈으로 일렁이는 진달래 향기
가슴 가득 품은 채 눈 감아봅니다
어느 때나 어디서나
꽃잎 같이 피어나던 당신의 모습
굳어진 입가에 비로소
웃음이 환상처럼 번져납니다
아 꿈으로 일렁이는 진달래 향기
가슴 가득 품은 채 눈 감아봅니다
꿈으로 일렁이는 진달래 향기

요즘 크고 작은 음악회에서 늘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진달래’가 세상에 처음 나온 때는 2012년이다. 정애련은 정덕기·홍세영·최현석과 함께 ‘작곡그룹 포(For)’를 결성했다. 여러 시인의 작품에서 노랫말을 고르는 일반적인 방식을 벗어나, 오로지 이상규 시인의 작품으로만 곡을 쓰는 모험을 감행했다. 참신한 시도다.

네 명의 멤버 중 막내였던 그는 속이 탔다. 선배들이 먼저 선점한 탓에 마음에 드는 시를 찾기가 만만찮았다. 속고갱이 비어있는 배추 더미를 헤집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뭐 하나 건져야한다는 절박감으로 뒤적뒤적 시집을 들추었는데 “악몽 같은 그리움이 / 삶을 할퀴고 짓밟아 오면”이라는 구절에서 눈이 멈췄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할퀴고 짓밟는’의 어감이 너무 강해 선배들은 그냥 패싱했지만, 그는 오히려 이 시어에 마음을 빼앗겼다. 한번 꽂히고 나니 곡이 단박에 나왔다.

소프라노 서활란이 맨 처음 불렀다. 녹음을 마친 뒤 ‘이상규 시에 의한 작곡그룹 포 예술가곡 1집-오실 때처럼’ 앨범에 수록됐다. 출생신고를 마친 ‘진달래’를 공식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사람도 서활란이다. 그해 7월 서울 목동 KT챔버홀에서 열린 ‘작곡그룹 포 예술가곡 연주회’에서 관객 가슴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전국적인 빅히트를 써내려간 계기는 그해 11월에 나온 ‘정애련 3집-사랑가’에 넣으면서부터다. 이 음반엔 타이틀곡 ‘사랑가’와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진달래’를 포함해 11곡이 들어있다. 모두 소프라노 강혜정이 불렀다.

3집 녹음 당시 강혜정은 임신 9개월의 만삭이었다. 무거운 몸도 몸이지만 출산하면 목소리가 변해 음악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노래했다. 신발까지 벗어던졌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이 되레 도움이 됐을까. ‘맨발의 디바’는 흠잡을 데 없는 실력을 발휘하며 ‘진달래=강혜정’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지금 유튜브를 검색하면 강혜정이 부른 노래의 인기가 붙박이 톱이다.

“그때 강혜정 선생이 입고 신었던 원피스와 신발의 색깔이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요. 참 영리한 가수입니다. 두 번 정도만 이야기하면 알아서 척척 저의 의도대로 노래를 불렀어요. 이미 굉장한 열공을 마친 뒤 녹음실로 온 거 같아요.”

작곡가 정애련의 열 번째 작곡콘서트가 오는 1월 6일 서초동 SCC홀에서 열린다. 임경희·강명성·이상규·김생기 시인 등의 작품에 곡을 붙인 17곡이 연주된다. ⓒ리음아트&컴퍼니 제공


정애련의 또 다른 인기곡은 ‘별을 캐는 밤’이다. 저작권 수입으로 따지면 이 곡이 현재 1위라고 귀띔했다. 2015년 7월에 나온 ‘정애련 4집-애월’에 수록돼 있다. 그는 이 곡을 녹음한 바리톤 박정섭을 만났을 때 솔직히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처음 만난 날, 목소리가 너무 쉬었어요. 완전 허스키 보이스더라고요. 마음에 안들었죠. ‘최근 레슨을 많이 해 원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며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찾기엔 시간적으로도 촉박해 어쩔 수 없이 ‘고’하기로 했어요. 약간 당돌한 구석도 마음에 들었고요.”

녹음날 박정섭은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만들어 왔다. 타이틀곡은 ‘애월’이었지만, 첫 번째 트랙에 ‘별을 캐는 밤’을 넣었다. 모두 15곡이 수록됐는데 ‘별을 캐는 밤’이 가장 널리 불린다.

<별을 캐는 밤>
-심응문 시·정애련 곡

오늘 같은 밤에는 호미 하나 들고서
저 하늘의 별 밭으로 가
점점이 성근 별들을 캐어
불 꺼진 그대의 창 밝혀주고 싶어라
초저녁 나의 별을 가운데 놓고
은하수 많은 별로 안개꽃 다발 만들어 만들어
내, 그대의 창에 기대어 놓으리라
창이 훤해지거든
그대,
내가 온줄 아시라

정애련의 인터넷카페 ‘작곡가 정애련의 춘심아’에는 이 곡을 만든 과정이 소상하게 나와 있다.

“세레나데...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 떠오른 분위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창가에서 가장 로맨틱한 고백을 하는 세레나데였다. 별을 캐다... 별을 따다...라는 흔한 표현이 있지만 이 시에서는 별을 캔다고 표현했다. 00을 캔다는 것은 소중한 것을 뜻하는 말인 것도 같다. 고구마나 감자 같은 작물을 땅에서 캔다고도 하고 산삼을 산에서 캐었다라고도 한다. 보석의 일종들인 광물도 돌 속에서 캔다고 흔히 말한다. 별을 캔다는 것. 그만큼 소중한 걸 발견해서 취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별을 캐어 별꽃다발 만들어 그대 창가에 두겠노라...창이 환해지면 내가 온 줄 아시라...이토록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다니...시어들에서 풍기는 향기는 순수하고 맑음이었다. 별꽃다발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별천지인 반짝반짝 빛나는 맑은 하늘이 있고 그 별들을 모두 캐어 별꽃다발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창이 훤해지면 내가 온 줄 알라는 수줍음과 현대에서 보기 힘든 소중한 이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었다. 자극적이거나 강하지 않으며 순수하고 맑은 청량감이 느껴지도록 노랠 만들고 싶었다. 이 노랠 들을 땐 누구나 별밭 하늘 아래 점점 환해지는 창가에 서 계셨으면 한다. 마음 언저리 어딘가에 있을 순수와 만나셨으면 한다.”

정애련은 이 곡을 쓸 때 알퐁소 도데의 소설 ‘별’에 나오는 장면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확실히 ‘감’이 좋았다. 시를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심응문 시인은 이 시가 영 마땅치 않았다. “하고 많은 시 중에 하필 이거냐”라며 핀잔을 줬다. 시가 너무 유치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으로 만들어 나왔을 때 시인은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민지·조지영·서혜원·윤승환·김지훈·최병혁(왼쪽부터)이 작곡가 정애련의 열 번째 작곡콘서트에서 노래한다. ⓒ리음아트&컴퍼니 제공


‘진달래’와 ‘별을 캐는 밤’의 뒤를 이을 히트곡을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는 정애련의 10번째 작곡 콘서트 ‘눈처럼’이 오는 1월 6일(금)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SCC홀에서 열린다. 가곡 애호가들로부터 두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비교적 최근에 만든 작품들을 선보인다. 상수동 골목 안 ‘제비집’을 찾아낸 예리함처럼 좋은 노랫말을 알아보는 혜안이 이번에도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운 겨울과 어울리는 서정적인 멜로디의 곡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에서는 겨울을 대표하는 ‘눈처럼’(정애련 시)을 비롯해 ‘한 여인의 전설’(김생기 시) 등 모두 17곡을 들려준다.

정애련은 한 시인의 작품을 깊숙이 파고드는 작곡가다. 인연을 맺으면 그 시인의 작품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하면서 명품을 만들어 낸다. 임경희 시인의 ‘그대 오는 길’ ‘그대 가시려거든’ ‘노을빛 그대’, 강명성 시인의 ‘고백’ ‘12월’ ‘그리움 실어 밤비 내리다’ ‘가을빛 담쟁이’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단향’, 이상규 시인의 ‘기약’ ‘낙화’ ‘님 생각’이 그렇다. 고봉 기대승의 ‘풍월’ ‘작별’ ‘석영정’도 기대된다. 노랫말을 곱씹어보며 감상하면 감동이 백배 천배다.

이번 무대에서 정애련의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을 성악가들은 소프라노 김민지·조지영·서혜원, 테너 윤승환·김지훈, 바리톤 최병혁이다. 피아니스트 이유화가 반주를 맡는다. 전석 5만원이며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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