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국립심포니인지 체코오케스트라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압도적 사운드를 쏟아냈다. 역대급 연주로 손색이 없다.” 체코 출신의 지휘자 토마시 네토필이 한국 데뷔무대에서 엑설런트 찬사를 받았다. 그의 지휘봉을 타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향적 잠재력이 폭발했다. 스스로 ‘내일의 거장’을 입증했다.
11일 롯데콘서트홀. 밤베르크 심포니의 야쿠프 흐루샤와 함께 지금 시대 체코를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토마시 네토필이 국립심포니 포디움에 섰다. 그는 체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며 10년간 알토 음악극장과 에센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 체코는 물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네토필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과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6번’ 등 보헤미안 감수성 짙은 체코 레퍼토리를 들려줬다. 또 피아니스트 윤홍천과 협연으로 프레데릭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사했다.
1860년대 체코는 음악적으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오스트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체코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민족주의가 움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3막으로 구성된 ‘팔려간 신부’다.
체코의 농촌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전형적인 민족주의 오페라다.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될 위기에 처한 여인과 이를 막으려는 남자침구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네토필은 날렵한 몸에 딱 들어맞는 날렵한 지휘로 ‘팔려간 신부’ 서곡의 민속적 흥겨움을 잘 살려냈다. 산뜻한 출발이다. 발동작도 손동작도 경쾌했다. 현악 파트는 탄력 있는 소리를 뽑아냈다. 최정숙 국립심포니 대표는 연주가 끝나자 “브라비!”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어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배턴을 받았다.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이 약하다며 일부에서는 이 곡을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섬세하게 다듬어진 피아노 독주를 들으면 그런 비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으리라.
윤홍천은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긴 제시부가 끝나자 그 선율을 반복하며 음악을 이어갔다. 2악장에서는 쇼팽이 사랑했던 여인 콘스탄차를 불러내며 풋풋한 러브스토리를 풀어냈다. 3악장에서는 폴란드 서민들의 춤인 마주르카를 활용한 경쾌한 스텝을 들려줬다. 국립심포니는 3악장까지 ‘조용한 내조’로 피아니스트를 어시스트했다. 앙코르도 쇼팽이었다. ‘왈츠 Op.64-2’는 귀에 착착 감겼다.
메인곡인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은 베토벤과 브람스로 대표되는 이른바 빈 교향곡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스메타나로부터 이어진 체코 민족주의 요소를 더한 독창적 음악이다. 원숙미를 갖추어가던 30대 후반의 드보르자크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교향곡 6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체코의 특징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체코의 춤과 선율, 그리고 생동감 넘치면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네토필은 관객들을 체코 음악 속으로 충실하게 이끌었다. 1악장에서 현악기 그룹의 사운드는 차돌처럼 단단했다. 2악장 아다지오에서는 긴장감 있게 소리를 빚어낸 목관 앙상블 및 호른 파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3악장과 4악장에서 네토필은 F1 드라이버가 자유자재로 머신을 다루듯 쏜살같이 달렸다. 9.58초의 우사인 볼트 같았다. 3악장은 체코 민속춤 푸리안트 리듬을 핵심 소재로 활용했다. 이 악장에서 그는 국립심포니의 포텐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마지막 4악장은 3악장의 민속적인 열기를 보다 장대하게 표현했다. 앙코르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8번’을 선사했다.
류태형 평론가(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는 네토필과 국립심포니에 찬사를 보냈다. “윤홍천이 협연한 쇼팽 협주곡 2번에서는 협연자를 거스르지 않고 음악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했다. 윤홍천 특유의 침착하고 서정적인 피아니즘이 가려지지 않고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미는 2부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이었다고 덧붙였다. 류 평론가는 “교향곡 7, 8, 9번 다음으로 자주 듣는 곡이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비경이 숨어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1악장 곳곳에서 가슴 뭉클하게 하더니 아련한 2악장과 토속적인 3악장을 지나 4악장에서 장대하게 마무리 지을 때까지 한 부분도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네토필은 자유를 주는 지휘를 지향했다. 단원들을 초원에 풀어 놓고 목 놓아 외치게 했다. 그러면서도 오와 열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기가 막힌 앙상블을 펼쳐보였다. 근래 보기 드문 명연주였다. 역시 지휘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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