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국악제’ 대상 박자희 “목청 굳은살 안박혔다...지금도 계속 소리 삭히는 중”

전통 확실히 배워야 퓨전·융합 장르도 가능
깜깜한 터널은 결국 내몸 불빛 있어야 탈출

체력·공력 길러 곧 6시간 ‘춘향가’ 완창 도전
​​​​​​​판소리는 뗄려해도 뗄수 없는 피부같은 존재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3.12.09 09:42 | 최종 수정 2023.12.09 09:48 의견 0
‘임방울국악제’ 대상을 받은 소리꾼 박자희는 “아직도 목청에 굳은살이 안박혔다. 지금도 계속 소리를 삭혀가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박자희 제공

[글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아직 목청에 굳은살이 안박혔어요. 지금도 계속 소리를 삭혀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굵직굵직한 국악경연대회가 몇 개 있다. 그중에서 ‘임방울국악제’는 역사가 꽤 오래된 국악제다. 1993년 ‘광주국악대전’으로 시작했으니 올해로 31년째다. 매년 300명이 넘는 내로라하는 재주꾼들이 참가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동안 임방울국악제는 수많은 명창을 배출했다. 이 ‘임방울국악제’에서 대상(대통령상)은 판소리 명창부에서 내고 있다.

올해 대상을 받은 이가 박자희다. 여덟 살 때 부모 손에 이끌려 판소리 공부를 시작해 32년의 공력을 쌓아 드디어 국악제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판소리부문 예선에서 20명이 경연을 했고 지난 9월 본선에는 3명이 올라갔다. 그는 총 7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4명으로부터 최고점인 99점을 받아 총점 493점, 평점 98.6점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최근 만난 소리꾼 박자희는 “체력과 공력을 길러 곧 6시간에 이르는 ‘춘향가’ 완창에 도전하겠다”며 “판소리는 뗄려해도 뗄수 없는 피부같은 존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통을 제대로 확실히 배워야 퓨전·융합 장르도 가능할 수 있다”며 “깜깜한 터널은 결국 다른 사람의 불빛이 아니라 내몸에서 밝혀주는 불빛이 있어야 탈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방울국악제’ 대상을 받은 소리꾼 박자희는 “이른 시일내 6시간에 이르는 춘향가 완창에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자희 제공


-먼저 '임방울국악제' 명창부 대상을 수상한 것 축하한다. 이번 경연에서 부른 판소리는 뭔가. 그리고 소감은.

“판소리 ‘홍보가’ 중에서 형님에게 쫓겨났다가 곡식이라도 좀 얻을까 해서 다시 찾아가서 비는 대목 ‘두 손 합장’이다. 뒤에 그 유명한 밥주걱으로 뺨 맞는 장면까지 했다.”

-대상을 받으리라 생각했나.

“아이고 아니다. 그냥 최선을 다해 실력을 보여주자 생각했다. 그전에도 한 번 나갔는데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경험을 쌓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됐다. 아마 심사위원들께서 잘 봐 주신 덕분이 아닌가 싶다. 다시금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꼭 그런 것은 아닌것 같다. 본인이 잘해서 된 것이다. 32년의 공력이 이제 빛을 본 것이다.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제게 상을 주신 의미는 더욱 정진해서 명창의 반열에 올라서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김만배 심사위원장님께서도 그렇게 말하셨다. 이제는 저와의 싸움이 시작된거다. 열심히 정진하겠다.”

-어떻게 해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됐나.

“8살 때 어머니가 저의 손을 잡고 전라북도 도립국악원에 데려가 소리 공부를 시켰다.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그저 언니들이랑 같이 노는 게 재미있어 다녔다. 그러다가 아버지 직장이 서울로 옮기는 바람에 서울로 이사 와서 안숙선 명창 선생님 문하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게 인연이 돼 지금도 배움을 받고 있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다 안숙선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다.”

-완창무대는 몇 번 했나. 가장 힘든 완창은.

“‘심청가’와 ‘홍보가’를 완창했다. 아무래도 ‘춘향가’가 어렵다. 이게 총 6시간 걸리는 길이다. 소리도 소리지만 먼저 체력이 뒷받침 돼야 가능하다. 이른 시일 내에 도전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이게 공력도 같이 따라줘야 한다. 체력과 공력 같이 가야 가능하다.”

-소리꾼으로 보면 아직 젊은 나이다. 물론 완창도 2번이나 했지만 앞으로 어떤 소리꾼이 되고 싶나.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숙선 선생님이다. 물론 제 스승이기도 하지만 가까이서 배우면서 늘 느끼는 것이 ‘아 나도 이담에는 선생님처럼 해야겠구나’하는 때가 너무 많다. 모든 면에서 다 훌륭하신 분이다. 어쩌면 저로서는 따라 갈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뒤를 따르겠다.”

-물론 전통도 중요하지만 변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미래의 판소리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은가.

“제가 지금 불혹의 나이인데 젊은 때 그런 고민을 안한 건 아니다. 사실 판소리가 대중적이지는 않다. 일부 좋아하는 마니아층들만 계속 들으러 오는데, 저는 ‘좀 더 젊은 사람들도 판소리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늘 했다. 제가 젊은 시절에는 퓨전국악을 참 많이 시도하기도 했다. 지금 여러 장르에서 국악이 접목되는 것들은 이미 다 섭렵했다. 근데 막상 해 보니까 근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본, 즉 전통을 확실히 알아야 퓨전이나 응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점점 더 전통에 치중하게 됐다. 젊은 친구들에게도 기본을 잘 닦아놔야 다른 것들과 융합이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들은 지금도 잘 하고 있다. 좋은 환경이 많아졌다. 유튜브 등 여러 가지로 표현 할 수 있는 환경이 많아졌다. 제가 젊었을 때는 여러 환경들이 그렇지를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생각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임방울국악제’ 대상을 받은 소리꾼 박자희는 "자신의 소리에 스스로 만족을 했을 때가 바로 ‘득음’인데, 저는 제 소리에 100퍼센트 만족을 느껴본 적이 아직은 없다":고 말했다. ⓒ박자희 제공


-소리공부를 할 때 흔히들 ‘득음’을 강조한다. 소리에 문외한들은 단편적인 얘기로 산속 폭포 앞에서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둥, 어떤 사람은 사람의 오줌을 마셔야 한다는 둥 별의별 얘기를 다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득음’이 되는가.

“그런 얘기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옛날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득음이 된다면 폭포 앞에 움막을 짓고 살아야겠다. 중요한 것은 공부다. 훌륭한 스승을 찾아서 배우는 것이 최상이다. 나머지는 자기 노력이다. 자신의 소리가 스스로 만족을 했을 때가 바로 ‘득음’이 아닌가 한다. 저는 제 소리에 100퍼센트 만족을 느껴본 적이 아직은 없다.”

-이제 최고의 상을 받았으니 그게 바로 ‘득음’이 아닌가.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목소리가 젊었을 때는 너무 카랑카랑하다. 소위 말하자면 새것, 날것이다. 거칠다고 할까. 그런 목소리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담금질이 돼 걸걸해진다. 소위 목청에 굳은살이 박힐 때 쯤이면 정말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나온다. 도자기로 치면 새것은 반짝반짝 하는 맛은 있지만 깊은 맛이 없다. 시간이 지나서 광택도 좀 사라지고 여기저기 손때도 좀 묻고 그러면서 골동품이 된다. 그때서야 값이 나가다. 음식으로 치면 푹 삭혀야 제 맛이 나는 거랑 같다. 소리도 그런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치자면 저는 지금 삭혀가는 중이다.”

-소리공부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정말 끝이 안보인다고 느낄때였다. 혼자서 컴컴한 터널을, 그것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가장 힘들었다. 아무런 보장도 없고 약속도 없고, 그냥 걸어가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물론 평생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작은 불빛이라도 보이면 ‘아, 이제 출구가 보이는구나’ 하고 힘을 낼 수 있을 건데 도무지 그런 징조조차 안보일 때가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보였다. 그건 출구의 불빛이 아니라 제 스스로 내는 빛이었다. 제가 내는 빛에 의해서 컴컴한 곳이 환하게 보이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보이니까 힘이 났다.”

‘임방울국악제’ 대상을 받은 소리꾼 박자희는 "판소리는 저에게는 ‘피부’같다. 뗄래야 뗄 수 없는 딱 들러붙은 피부 같다"고 말했다. ⓒ박자희 제공


-슬럼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방황을 많이 했다. 30대 초반까지 정말 힘들었다. 그만 두고 싶었다. 공력으로 치면 20년 넘게 했는데 뭔가 조금이라도 결과가 보여야 되는데 그때까지도 아무것도 안보였다. 계속 공부만 하고 있으니까 막막하다고 할까 그랬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것 조차 싫었다. 그런데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결과도 보이고 소리의 참맛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이 판소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 내가 이 판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명감도 생기고 그랬다. 지금은 자부심도 생겼다. 어느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그게 재미가 생겼다. 즐거웠다.”

-그럼 앞으로 계획은.

“우선 판소리에 더 집중하고 싶다. 판소리를 파고들면 들수록 매력이 넘친다. 이건 단순히 소리 차원을 넘어서, 뭐랄까 인생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고 할까, 그런 멋과 맛이 담겨져 있다. 서양의 오페라나 뮤지컬을 능가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재즈나 힙합 등 어떤 장르와도 잘 어우러져 변화무쌍하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 다음 다른 장르와 콜라보 작업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싶다.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았는데 지금은 작은 것에 더 소중함을 느낀다. 특히 안숙선선 생님과 함께 무대에 서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그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하면서 더 소중하다. 그래서 오롯이 선생님과 소리공부 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음원도 낼 계획이고, 완창 판소리도 해야 하고, 공연도 들어오면 해야 하고 등등 순차적으로 조금씩 해 나갈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멋진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판소리는 당신에게서 ‘무엇’인가.

“음, 저에게는 ‘피부’같다. 뗄래야 뗄 수 없는 딱 들러붙은 피부 같다. 예전에는 이 판소리가 싫을 때도 있었다. 싫었다가 좋았다가 그랬는데 이제는 판소리가 없으면 못산다. 그냥 삶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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