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썸을 타면 실패가 없다” 마음 읽어주는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

내 음악의 힘은 ‘외로움’...크면 클수록 공감 백배
​​​​​​​새해 ‘행위예술 곁들인 스트링콰르텟’ 공연 론칭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4.01.16 11:24 | 최종 수정 2024.01.16 11:25 의견 0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은 새해부터 ‘행위예술이 함께 하는 스트링 콰르텟 공연’을 론칭한다. ⓒ정유진 제공


[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몇 해 전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본 공연광고가 기억났다. 그 광고는 이랬다.

<썸 타느라 피곤하시죠!
제가 괜찮은 음악 하나 연결해 드릴게요

직장을 얻기 위해 시험에 합격 위해
더 맛난 식사 위해 더 좋은 여행 위해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을 주기 위해
더 좋은 관계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

끝없이 썸 타는 당신!

도시의 삶은
모든 관계에서
썸 타느라 방전된다

자고로
에너지만 쏟고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썸 아닌가요

넘쳐나는
흐릿한 관계 속에 지친 당신에게
또렷이 다가갈 음악친구!

썸 타느라 복잡한
당신에게
괜찮은 음악 소개해드립니다

아무도 내 맘 모른다는
외로운 당신에게
Soulmate가 되어 드릴

어디론가 떠나고픈데 갈수 없는
다람쥐쳇바귀 인생 당신과 함께
여행지로

내 마음 나도 모르는
혼란한 당신의 마음을
음악으로 스캔해 드립니다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Soulmate 같은 음악

음악이 10연애 안 부럽게 해드려요

음악회가 끝난 직후
당신 맘엔
조강지처 같은 음악이 함께 해
다시 돌아갈 일상이 든든할 거예요

나를 비우는 시간>

도대체 이런 삼빡한 광고문구로 공연 홍보를 하는 아티스트는 누굴까 궁금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을 만나게 됐다. 그는 제법 인생의 맛을 아는 나이의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젊은 사람의 마음을 고스란히 읽어 냈을까. 세상사는 일이 녹록치 않은 젊은 사람들이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여기저기 좌충우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은 썸을 타면서 흘러가고 있다. 그 썸은 늘상 실패로 끝나기 일쑤다. 그래서 이런 일상에서 썸을 타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모아 음악회를 열었다.

음악으로 썸을 타라고 일러주었다. 적어도 음악으로 썸을 타면 실패가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음악과 썸을 타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썸을 지금까지 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썸을 더 이상 타지 않고 아예 성공해서 음악에 푹 빠져 사는 사람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은 새해부터 ‘행위예술이 함께 하는 스트링 콰르텟 공연’을 론칭한다. ⓒ정유진 제공


정유진은 어릴 때부터 음악공부를 혼자서 해 왔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긴 하지만 끝까지는 아니었다. 앞부분만 조금 가르쳐주면 혼자서 나머지를 다 깨우치는 아이였다. 집안에 위로 언니 둘, 오빠 하나 있고 자신은 막내였다. 언니들이 다 음악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자란 것이다.

엄마는 막내가 음악보다는 다른 것을 하기 바랐다. 음악은 언니들만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고난 재능이 어딜 가겠는가. 결국 혼자 독학하다시피해서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까지 일사천리로 다녔다. 겁 없이 바이올린 하나만 달랑 들고 마국도 갔고 독일도 갔다. 가는 곳 마다 행운이 따랐다. 친구들도 교수들도 모두 그에게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그럴수록 그는 외로워져 갔다. 곁에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었다. 외롭고 고독할수록 더 풍부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리가 음악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는 일찌감치 그걸 알고 있었다.

공연 전에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어느새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루틴이 되어 버렸다. 썸 타는 음악도 그의 그런 오랜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그는 음악과 썸을 타는 것이 그 무엇보다 편했다. 연주를 앞두고 썸을 타지만 늘 성공으로 끝난다. 그건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에겐 늘 마음에 담고 펼치는 콘셉트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꼬리 스토리’다. 인간은 일생을 살면서 자기 꼬리를 보지 못한다. 꼬리가 없기 때문이다. 머리는 시작이고 꼬리는 끝이다. 인간이 살면서 꼬리를 딱 한 번 본다. 바로 죽을 때다.

꼬리를 못 본다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당신의 꼬리를 한 번 찾아보라”고 한다. 어쩌면 철학적인 물음이 될 수도 있고 약간 형이상학적일 수도 있다.

“너 지금 마음상태가 뭐니?”
“사실 내 마음상태를 나도 몰라”
“지난 밤 악몽을 꿨어”
“나는 겉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내면은 늘 슬퍼”
“왜? 나의 꼬리(끝)가 안보이니까”

동물은 다 꼬리가 있다. 다 보인다. 꼬리가 감정을 표현한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생각이다. 그래서 ‘유기견후원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유기견도 데려다 키우고 있다.

그는 오래전 일본에 공연을 갔다. 며칠 전 자살하려고 했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음악회를 보러왔다. 그 사람은 음악회를 보고 자살할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갔다. 이때 시작한 음악회 콘셉트가 바로 ‘꼬리스토리’다.

그전에 사용했던 ‘뷰티풀마인드’ 제목을 바꾼 것이다. 우리는 꼬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그깟 꼬리가 뭐라고. 보이지 않는 꼬리를 자꾸 생각하기 보다는 내 마음에 담겨져 있는 것이 바로 꼬리가 아닐까.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은 새해부터 ‘행위예술이 함께 하는 스트링 콰르텟 공연’을 론칭한다. ⓒ정유진 제공


2024년 새해. 그는 새로운 콘셉트의 음악회를 하고 싶어졌다. 귀로 들려주는 음악이 아닌 마음을 읽어주는 연주를 하는 것으로 말이다. 앞서 말한 두 콘셉트를 합친 것이 될 터이다. 그리고 나만의 독특한 해설이 곁들여진 음악친구들과 행복한 음악회로 ‘오르간트리오’를 하고 싶다.

마음과 몸은 하나다. 몸에 깃들어져 있는 것이 마음이다. 몸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비추는 일이기도 하다. 행위예술(퍼포먼스)은 마음을 움직이는 궁극의 표현인 것이다. 그 끝(꼬리)에 반드시 음악이 있다. ‘행위예술이 함께 하는 스트링 콰르텟(string quartet) 공연’ 이 얼마나 멋진가.

기악연주자도 성악가처럼 역시 소리가 생명이다. 그저 기교에 의해 일어나는 소리가 아닌 마음을 울리는 소리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계속된다. 그의 음악철학은 바로 ‘외로움’이다.

“음악에 몰두 할수록 새로운 세계를 마주합니다.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제 공연이에요. 외로움이 클수록 더 큰 카리스마와 확실한 나만의 세계로 관객을 데려갈 수 있어요.”

브람스가 이런 말을 했다. ‘Frei aber Einsam (자유로우나 외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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