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는 상실감 위로”...한편의 영화 같은 오페라 ‘죽음의 도시’ 내달 국내 초연

초기 영화음악의 거장 코른골트 작품
5월 23∼26일 예술의전당 무대서 첫선
삶과 죽음·꿈과 현실 ‘대비의 미학’ 압권

박정옥 기자 승인 2024.04.23 17:55 | 최종 수정 2024.04.23 18:41 의견 0

국립오페라단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한국 초연하는 가운데 22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작품 프로덕션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조금 섬뜩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구나 겪는 상실감을 위로해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최상호 국립오페라단 단장)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비극입니다. 그래서 더 가깝게 느껴지고 자꾸 마음을 쓰게 됩니다.”(줄리앙 샤바스 연출)

국립오페라단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한국 초연한다. 한마디로 한편의 영화 같은 오페라다. 나중에 할리우드 영화 음악에 큰 발자국을 남긴 코른골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조르주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브뤼주’를 원작으로 코른골트가 23세 때 작곡했다. 1920년에 초연했으나 후기 낭만주의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유려한 멜로디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연상시키는 3관 편성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음향이 장점이다.

‘죽음의 도시’는 죽은 아내 마리를 그리워하는 파울의 이야기다. 파울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비롯해서 그의 물건들을 그대로 보관하며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죽은 아내를 닮은 마리에타를 알게 되어 집으로 초대한다. 마리에타는 유랑극단의 무용수로 파울의 집에 와서 유혹적인 춤을 춘다. 이후 파울에게 마리의 환영이 나타나 사랑과 신의를 요구한다.

한편 유랑극단의 예술가들이 도시 광장에 나타나 공연한다. 파울은 마리의 혼에 사로잡혀 공연에 끼어들어 마리에타를 모욕한다. 아내 외에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 않겠다던 파울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고 마리에타는 이런 그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리의 머리카락을 빼앗는다. 파울은 다시 그 머리카락을 빼앗아 그것으로 마리에타의 목을 조른다. 파울이 정신을 차리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정돈된 방을 보고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국립오페라단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한국 초연하는 가운데 22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작품 프로덕션 미팅에서 줄리앙 샤바스 연출이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연출을 맡은 스위스 출신의 줄리앙 샤바스는 22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작품 프로덕션 미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기만 하지는 않고, 순간순간 희망의 빛이 다가온다”며 “파울은 ‘다시 마리를 살릴 수 있을까’라는 희망을 가졌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 우울함에 빠지는 식의 비극이 전개된다”고 말했다.

주인공 파울이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보는 만큼 극은 삶과 죽음,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대비의 미학’을 만들어낸다. 샤바스 연출은 “죽음을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보면 된다”며 “현실은 단순해도 사람마다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다”며 감상팁을 줬다.

이어 “파울은 아내와의 관계를 계속 떠올리며 애도의 감정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고, 주변인들은 어떻게 하면 파울이 이 애도 과정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며 “이 부분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발생해 극의 재미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실과 꿈, 환각 사이에서 끝없이 대화가 이뤄진다”라며 “공연을 보다 보면 이게 현실인지, 머릿속 이야기인지, 꿈인지 확신이 안서고, ‘오페라 전체가 환각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허한 느낌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트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파울 역에는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 이정환, 마리·마리에타 역에는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와 오미선이 캐스팅됐다. 프랑크·프리츠 역에 바리톤 양준모와 최인식, 브리기타 역에 메조소프라노 임은경, 줄리에트 역에 소프라노 이경진, 루시엔느 역에 메조소프라노 김순희, 빅토랭 역에 테너 강도호, 알베르 백작 역에 테너 위정민이 맡아 무대를 빛낼 예정이며 가스통 역은 임재헌이 맡아 판토마임을 선보인다.

국립오페라단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한국 초연하는 가운데 22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작품 프로덕션 미팅에서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가 나란히 앉아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초연을 올린 1920년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로 사람들이 상실감으로 슬퍼하던 때다”라며 “초연부터 호평 받을 수 있었던 건 공연을 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서 파울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5월에 ‘죽음의 도시’를 공연하게 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있다”면서도 “죽음과 삶, 정신적 사랑과 관능적인 사랑이 부딪히는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마리와 마리에타 역을 함께 맡는 레이철 니콜스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은 극에서 펼쳐지는 비극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그동안 주로 여신이나 역사적인 대서사 속 인물을 맡았는데, 파울이나 마리에타는 실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며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만날 수 있고,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캐릭터다”라고 강조했다.

‘죽음의 도시’를 초연했던 1920년 당시는 쇤베르크가 고안한 12음 기법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기에 무조성과 불협화음이 득세했지만, 코른골트는 신음악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기 낭만주의의 연장선에서 작곡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죽음의 도시’는 말러와 유사한 낭만주의적 선율과 함께 상실감에 따른 절규를 드라마틱하게 선사한다.

국립오페라단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한국 초연하는 가운데 22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작품 프로덕션 미팅에서 출연 성악가들이 앉아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작품 자체는 생소할지라도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다. 1막에서 죽은 아내와 닮은 마리에타와 파울이 함께 부르는 ‘내게 머물러 있는 행복(Glück, das mir verblieb)’이 있으며 2막에는 바리톤이 사랑하는 아리아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Mein Sehnen, mein Wähnen)’가 있다.

바리톤의 아리아는 마리에타가 속해 있는 극단의 피에로인 프리츠의 곡으로 마리에타가 단원들에게 축배를 제안한 후, 프리츠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서 부르게 되는 애수 섞인 아리아다. 바리톤 김태한이 2023 퀸 엘리자베스에서, 바리톤 김기훈이 2021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연주한 적 있는 인기곡이다.

지휘를 맡은 독일 출신의 지휘자 로타 쾨닉스는 ‘죽음의 도시’ 성공 이유를 낭만적이고 훌륭한 음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퍼커션이 굉장히 많이 활용되고 오페라 음악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베이스 트럼펫도 사용된다”며 “다양한 악기를 통해 풍성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기 신낭만주의 작곡가로서, 푸치니의 곡들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좋아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죽음의 도시’가 아름다운 음악의 오페라임에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유는 성악가들에게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파울 역은 하이 B플랫, A음이 가득한 노래가 요구되며 2막의 일부를 제외하면 계속 무대 위에서 노래해야 하는 강한 체력이 필요한 역할이다. 이와 더불어 마리에타 역 역시 높은 테시투라(낼 수 있는 음역 가운데 가장 편하고 안정적인 음색을 내는 구간)을 요구한다.

국립오페라단은 현장 공연의 생생한 감동을 온라인을 통해서도 선보인다. 이번 ‘죽음의 도시’는 5월 25일(토) 오후 3시 국내 최초 오페라 전용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노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를 통해서 랜선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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