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16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9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쇼스타코비치와 쇼팽의 전주곡으로 리사이틀을 연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연주 내내 열정과 음악성, 그리고 탁월한 기교에서 꾸준히 선두를 유지했다. 그의 해석은 깊이와 색채로 가득했다.”(텔레그래프)
러시아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1985년생)는 2010년 제16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 할리나 체르니 스테판스카·벨라 다비도비치(1949년 제4회),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제7회)에 이어 네 번째 여성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잉골프 분더(2위), 다닐 트리포노프(3위) 등 쟁쟁한 연주자들을 제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아브제예바는 ‘어둠 속 피아니스트’ 일화로도 유명하다.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던 중 갑자기 정전이 됐다. 뜻밖의 사고에도 그는 침착하게 끝까지 연주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심사위원이었던 ‘우상’ 아르헤리치 앞에서 우승을 거머쥔 그는 “아르헤리치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라며 감격해 했다.
심사위원과 언론으로부터 “쇼팽의 정신과 완벽히 일치하는 연주”라는 찬사를 받은 아브제예바는 쇼팽 레퍼토리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내며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해왔다.
콩쿠르 우승 이후에도 화려한 외면보다는 내면의 성숙함과 음악적 탐구에 집중했다.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그는 2025년 제19회 쇼팽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며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에서 이제는 차세대 연주자들을 바라보는 심사위원으로 선 그의 여정은,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증명하는 동시에 오늘날 음악적 계보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0년 제16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9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쇼스타코비치와 쇼팽의 전주곡으로 리사이틀을 연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전 세계 사람들과 음악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율리아나 아브제예바)
콩쿠르 우승 이후 아브제예바는 무대 위 연주자로서의 활약은 물론, 무대 밖에서도 예술적 시야를 확장하며 다채로운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기돈 크레머와 협업한 미치슬라프 바인베르크의 실내악 음반(2017, 2019)은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아, 쇼팽 콩쿠르 금메달 수상자에게만 헌정되는 도이치 그라모폰의 솔로 음반 컬렉션으로 발매되는 영예를 안았다. 최근 선보인 ‘Chopin: Voyage’에서는 다시 한 번 쇼팽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며 섬세한 해석과 감성의 깊이를 들려주었다.
아브제예바는 팬들과의 소통에도 깊은 애정을 기울여왔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 프로젝트 #YuliannasMusicalDialogues를 통해 음악 애호가들과 진정성 있는 교류를 이어갔다. 이 프로젝트는 정기적인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특정 작곡가의 삶과 작품을 음악적 맥락 속에 담아내고, 주목할 만한 곡들의 의미를 되짚으며,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나누는 장이 됐다. 비대면 시대에도 음악에 대한 탐구와 나눔을 멈추지 않았고, 이 프로젝트는 연주자와 청중이 예술을 함께 사유하고 공감한 소중한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곡 모음집을 준비할 때에는 온전히 집중해서 프로그램을 선택합니다.”(율리아나 아브제예바)
아브제예바가 오는 9월 21일(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지난 2023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서의 위엄을 드러내며 올 쇼팽 프로그램 독주회로 한국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 후 2년 만에 돌아온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20세기와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 쇼팽의 전주곡을 중심으로 시대와 감성의 극적인 대조를 그려낼 예정이다.
2010년 제16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9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쇼스타코비치와 쇼팽의 전주곡으로 리사이틀을 연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1부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중 제1번 다장조, 제2번 가단조, 제6번 나단조, 제7번 가장조, 제12번 올림 사단조, 제14번 내림 마단조, 제24번 라단조까지 총 7곡을 연주한다. 2부에서는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전곡을 무대에 올린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를 대표하는 두 작곡가의 전주곡을 나란히 배치한 이번 프로그램은 아브제예바 특유의 사유와 해석이 깃든 음악 언어를 보여준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쇼스타코비치의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피아노 문헌 중 가장 위대한 전곡 모음집 중 하나로 꼽은 그는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쇼팽과 쇼스타코비치처럼 쉽게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두 작곡가를 한 무대에 올린 것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음악적 탐색’의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쇼스타코비치는 1927년 제1회 쇼팽 콩쿠르의 참가자였고, 젊은 시절 쇼팽의 작품을 즐겨 연주했다는 것이다. 아브제예바는 이처럼 작곡가들의 숨은 역사적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이를 무대 위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데서 큰 의미를 느끼고 있다.
아브제예바는 무대 위에서 드레스가 아니라 항상 검은 정장을 입는다. 음악의 본연에 더 충실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음악 앞에서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고 말한다. 감성과 지성, 서정과 구조, 낭만적 서사와 현대적 긴장이 교차하는 이번 무대에서 아브제예바는 하나의 건반 위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피아노 리사이틀’의 티켓은 예술의전당, NOL 티켓을 통해 예매 가능하다. 가격은 R석 10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B석 4만원.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