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정음과 주한프랑스대사관 두 곳에서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이라는 타이틀로 김중업(사진)과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이 열린다. ⓒ연희정음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오래된 주택이자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연희정음’(연희맛로 17-3)과 1962년 완공 이후 한국과 프랑스 건축사의 상징으로 남은 서대문구 합동의 ‘주한프랑스대사관’(서소문로 43-12).
김중업이 설계한 이 두 건축물이 오는 11월에 하나의 전시장이 된다.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김중업(1922~1988)과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조우를 출발점으로, 오늘의 작가들이 다시 써 내려가는 건축과 공간의 시간이 펼쳐진다. 전시 타이틀은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이다.
● 베네치아에서 파리까지 이어진 스승과 제자의 첫 만남
1952년 9월, 유네스코가 주최한 베네치아 국제예술가회의. 그곳에서 젊은 한국인 건축가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다. 그리고 같은 해, 파리의 아틀리에에 합류한다. 1955년까지 이어진 이 경험은 김중업의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합리와 기능을 중시하는 근대건축의 원리를 배우면서도, 그는 한국적 공간 감각과 정신을 결합해 독자적 언어를 완성해 나갔다.
그 결실이 바로 주한프랑스대사관이다. 프랑스의 합리성과 한국의 공간 전통이 교차하는 건축은, 두 건축가의 만남을 가장 극적으로 증언한다. 이후 주한프랑스대사관은 김중업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건축의 명작으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 반세기 만에 베일 벗는 접근금지 진해 해군공관
오는 11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정음과 주한프랑스대사관 두 곳에서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이라는 타이틀로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래된 잡지에만 남아있던 김중업이 설계한 진해 해군공관(사진)의 현재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연희정음 제공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화제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김중업의 또 다른 대표작 진해 해군공관이다. 1968년 준공 이후 단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는 이 건축은 군사 시설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오랫동안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잡지 기사 속 사진 몇 장만이 준공 당시의 유일한 기록이었지만,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생생한 현재의 모습이 한국의 대표 건축사진 작가 김용관의 작업으로 공개된다.
김중업은 이 건축에서 한국 전통 지붕과 힘 있는 기둥, 물과 빛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구현했다. 둥근 천공으로 구름을 끌어내리는 판타지적 디테일은 그의 실험정신을 드러낸다. 이번 공개는 김중업의 건축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것이다.
● 사라져가는 두 거장의 건축, 사진과 가구로 되살리다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은 건축을 단순히 도면이나 준공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철거되거나 변형된 김중업의 건축들(부산대 인문관, 경남문화예술회관, 서산부인과, 태양의 집)은 이제 더 이상 준공 당시의 원형을 온전히 볼 수 없다.
르 코르뷔지에의 찬디가르 대법원 역시 리모델링을 거치며 원형과 많이 달라졌다. 건축은 유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기에, 변화의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이 오히려 더 유의미하다.
이번 전시에서 김용관은 한국의 건축사진을 대표하는 시선으로 김중업의 작품을 다시 기록했다. 한때 사라졌거나 변형된 건축의 흔적을 사진 속에 담으며, 건축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퇴적되는지를 보여준다.
마누엘 부고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찬디가르 시리즈‘(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가 인도 펀자브주의 주도 찬디가르에서 진행한 공동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비롯한 르 코르뷔지에의 인도 작업을 오랜 세월 기록했다. 찬디가르는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도면을 그리고 작업했던 프로젝트다. 그의 사진은 두 건축가의 협업 현장을 현재의 이미지로 소환한다.
여기에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가구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디자이너 박종선이 합류한다. 그의 가구는 사진과 함께 오랜 기간 주택으로 사용됐던 연희정음에 놓이며, 관람자의 몸을 맞이하는 또 다른 건축적 언어가 된다.
● 김용관·마누엘 부고·박종선의 시선으로 살려낸 걸작
오는 11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정음과 주한프랑스대사관(사진) 두 곳에서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이라는 타이틀로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이 열린다. ⓒ김용관/연희정음 제공
오는 11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정음(사진)과 주한프랑스대사관 두 곳에서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이라는 타이틀로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이 열린다. ⓒ연희정음 제공
김중업·르 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은 두 곳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오는 11월 6일(목)부터 내년 2월까지 연희정음에서는 김중업이 설계한 주택 자체가 전시장이자 작품으로 기능한다. 관람자는 사진과 가구를 보며 그 공간 안에 앉고, 머물고, 기억한다. ‘보는 것’을 넘어 ‘사는 것’으로서의 건축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11월 7일(금)부터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두 건축가의 어휘가 어떻게 닮고 다른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다.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운명적 만남을, 세 명의 동시대 작가(김용관, 마누엘 부고, 박종선)의 시선을 통해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린다. 한국과 프랑스, 과거와 현재, 기록과 창조가 교차하는 이 전시야말로, 한국·프링스 수교 140주년을 앞둔 지금 가장 상징적인 문화예술적 대화라 할 수 있다.
전시에 맞춰 연희정음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세계를 다층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아티스트 토크’와 ‘건축 프로그램’을 함께 마련했다.
먼저 11월 8일(토) 오후 3시 사진작가 김용관과 마누엘 부고가 참여해,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포착한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건축의 이미지와 기록의 의미를 공유한다. 건축적 공간이 어떻게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억되고 확장되는지를 논의하는 자리다.
11월 22일(토) 오후 3시에 이어지는 행사에서는 연희정음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건축가 김종석(쿠음건축사무소 대표)과 주한프랑스대사관을 리모델링한 축가 윤태훈(사티건축사무소 대표소장)이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건축작업의 과정’에 대해 소개한다.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에 관한 학술 행사도 열린다.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김현섭 교수가 김중업의 사유를 학문적·실천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건축가의 작업과 건축사 연구를 교차시켜, 한국 현대 건축의 국제적 교류와 오늘날 건축 담론 속 김중업의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룬다.
또한 안그라픽스의 ‘대화:김중업 x 르 코르뷔지에, 두 건축가의 운명적인 만남’ 도서출판기념회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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