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ike Classic] 4월을 위로했던 뤼케르트, 말러, 루트비히
클래식비즈
승인
2021.04.28 16:24 | 최종 수정 2022.11.02 12:37
의견
0
[클래식비즈]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42개의 가곡을 썼다. 범위를 넓혀 교향곡에 들어있는 가곡 악장까지 포함하면 모두 52곡으로 늘어난다. 그 가운데 널리 애청되고 애창되는 작품이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4곡) <소년의 마술 뿔피리>(13곡) <뤼케르트의 시에 붙인 5개의 가곡>(5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5곡)다. 하나의 주제 아래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몇 개의 노래로 구성된 연가곡이다. 요즘말로 전부 ‘깔맞춤곡’이다.
말러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1788~1866)의 시를 사랑했다. 직접 가사를 만들기도 했지만, 뤼케르트의 시를 노랫말로 삼아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말러 이전의 선배였던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도 뤼케르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 시인의 낭만적 서정시를 빌려 멋진 곡을 완성했다. 슈베르트의 ‘그대는 나의 안식(Du bist die Ruh)’과 슈만의 <미르테의 꽃>에 들어있는 ‘헌정(Widmung)’도 뤼케르트의 시다.
19세기 전반부를 살았던 뤼케르트의 이름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역시 말러의 힘이 컸다. 빅히트의 일등공신이다. 말러는 자신이 만든 가곡의 절반 정도를 뤼케르트 시를 사용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뤼케르트의 시에 붙인 5개의 가곡(5 Rückert Lieder)>과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가 대표적이다. 이 두 개의 가곡집은 20세기가 시작됐던 1901년부터 약 3~4년에 걸쳐 거의 동시에 작곡됐고,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뤼케르트의 시에 붙인 5개의 가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다.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에 삽입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꿈꾸듯 아름답고 신비롭다. 번잡한 세상에서 멀리 떠나 자신만이 고요 속에서 살고자 하는 소망이 담겼다.
노래를 들으면 대나무 숲에 살짝 일렁이는 바람, 높고 깊은 계곡을 흐르는 물길, 그리고 가슴 한구석으로 밀려오는 서늘한 아련함이 떠오른다. 익숙한 동양적 풍경과 감정이 배어 있다. 4·7 재보궐 선거가 끝나면 세상이 조금 안정세에 접어들 줄 알았는데 헛된 기대였다. 코로나 백신 논란까지 겹치면서 ‘난리났네 난리났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비록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잠시 속세를 떠나고 싶을 때 안성맞춤 곡이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에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애끊는 슬픔이 절절하다. 울컥한다. 실제로 6명의 자녀 중 2명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뤼케르트는 아픈 마음을 담아 많은 시를 썼다. 이 시에 곡을 붙일 때 말러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으나 나중에 그도 아이를 잃는 비극을 겪는다. 결국 노래대로 이루진다는 속설이 적용된 셈이니, 그 후 말러의 정신 피폐에 이 노래로 한몫했다.
세 번째 곡 ‘너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Wenn dein Mutterlein tritt zur tur herein)’를 들으면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확 올라온다. 그냥 깡소주 원샷하게 만든다. 하지만 네 번째 곡 ‘나는 아이들이 잠깐 놀러 나갔다고 생각하지(Oft denk’ ich, sie sind nur ausgegangen)’에서는 ‘아이들을 따라 햇빛 속으로, 날씨 좋은 언덕 위로 간다’는 밝은 분위기로 표현하며 어둡고 아픈 현실을 달래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그래 살아가야지”라는 결의가 읽힌다. 해마다 돌아오는 4월16일의 슬픔을 견디게 해주는 곡이다.
독일의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1928~2021)가 지난 24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성악가 부모 덕분에 어릴 적부터 “노래가 걸음마만큼 자연스러웠다”고 회고했다. 풍성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바탕으로 서정적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예술 가곡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말러 가곡에는 여러 아티스트의 명연과 명반이 존재하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는 묵직함과 비통함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그의 부고를 듣고 요즘 출퇴근 때 자주 듣는 레퍼토리다.
4월이 가고 있다. 뤼케르트, 말러, 루트비히 덕에 ‘잔인한 달’을 견뎠다. 다운받은 음원 한곡으로 이렇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음악은 가성비뿐 아니라 가심비 최고의 만병통치약이다. 이틀 후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의 5월이 온다. 그래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이렇게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이 오는데.
/classicbiz@naver.com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