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상 베를린 필 이번주 진은숙과 김선욱에 꽂혔다
5일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 연주...김선욱 베를린필 데뷔 무대
박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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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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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이번 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는 온전하게 한국 음악가들이 차지한다. 한국 작곡가 진은숙(59)의 피아노 협주곡을 한국 피아니스트 김선욱(33)이 협연한다. 베를린 필은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 같은 명지휘자들이 이끌었던 세계 최고의 명문 악단. 이 불멸의 오케스트라가 두 한국인을 ‘VIP 대접’하는 것은 K클래식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셈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5일(현지 시각) 열리는 이번 공연은 베를린 필의 온라인 영상 서비스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세계에 중계된다.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인 사카리 오라모가 지휘봉을 잡는다.
이 곡은 1997년 발표됐다. 바이올린·첼로·생황 등 진은숙의 협주곡 중에서도 첫 협주곡에 해당한다. 현재 덴마크의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받기 위해 코펜하겐에 머무르고 있는 진은숙은 한 매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작곡 과정에서 내면적 고민을 모두 쏟아 넣기 위해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고 말했다.
2년여 전 베를린 필에서 이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작곡가에게 연락했을 때, 진은숙이 가장 먼저 떠올렸던 피아니스트가 바로 김선욱이다. 오케스트라도 흔쾌히 여기에 동의했다. 이번 공연은 김선욱의 베를린 필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4악장 20여 분 길이의 이 협주곡은 고난도(高難度)의 연주력을 요구하는 현대음악 작품. 진은숙은 8년 전 김선욱이 스웨덴에서 이 협주곡을 처음 연주할 당시의 일화를 들려줬다.
공연 4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한 진은숙은 김선욱의 리허설을 들은 뒤 “연주 속도를 높여달라”고 부탁했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작품을 더 빠르게 연주해달라는 작곡가의 주문에 당황할 법한 상황. 하지만 김선욱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척척 해냈다.
진은숙은 “주변에서도 ‘무리가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지만 김선욱이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무척 놀랐다”면서 “당시 무대에서 ‘어린 거장’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뒤로 김선욱은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한 피아니스트(10차례)가 됐다. 2014년 서울시향이 정명훈의 지휘로 진은숙의 협주곡 음반을 녹음할 당시에도 김선욱이 피아노 협연을 맡았다. 김선욱은 “불협화음이 깔려 있지만 수정처럼 반짝거리면서도 정교한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라며 “연주할수록 밑바탕에 숨어 있는 새롭고 환상적인 면모에 놀라게 된다”고 밝혔다.
정작 작품의 주인공인 진은숙은 레오니 소닝 음악상(상금 100만 덴마크 크로네·1억8000만원)을 받기 위해 덴마크에 머무느라 베를린 필의 공연을 보지 못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1959년 창설된 이 음악상은 스트라빈스키(1959년), 번스타인(1965년), 쇼스타코비치(1973년) 같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음악인들이 받았다. 진은숙의 수상을 기념해 같은 날 코펜하겐에서도 덴마크 국립 교향악단이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같은 날 유럽의 두 도시에서 진은숙의 협주곡이 동시에 울려 퍼지는 셈이다. 진은숙은 “몸이 두 개인 것도 아닌데 어쩌겠나. 그것이 인생이다”라며 웃었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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