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임희영 ‘흐뭇한 콘서트’...헌정 첼로곡 7곡 엑설런트 연주로 다시 작곡가에 헌정

강종희·김지현·강은경·정재은·임경신·김수혜·이남림 곡 세계 초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1.08.27 15:07 | 최종 수정 2023.03.20 10:40 의견 0
첼리스트 임희영이 한국 여성작곡가 7명의 작품을 초연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민은기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헌정(獻呈)’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물품을 올림. 주로 책 따위를 남에게 줄 때 쓴다’라고 풀이돼 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가장 아름다운 존경의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에 헌정은 모두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

작곡가들 역시 자신의 작품을 연주자에게 헌정하는 경우가 있다. 브람스는 절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에게 ‘바이올린 협주곡 Op.77’을, 쇼팽은 각별한 우정을 맺었던 리스트에게 ‘연습곡 Op.10’을 줬다.

첼리스트 임희영에게 2021년 8월 24일은 잊지 못할 날이 됐다. 강종희, 김지현, 강은경, 정재은, 임경신, 김수혜, 이남림 등 한국의 여성 작곡가 7명이 새로 만든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다.

세계적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이 음악감독으로 재직 당시 4년 동안 공석이었던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첼로 수석에 선임됐고, 또 중국 최고의 명문 음악원인 베이징 중앙음악원 교수에 임용된 슈퍼급 타이틀 때문에 곡을 준 것은 아니다.

임희영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음악가로서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현대 작품을 배우고 초연하는 과정에서 작곡가와 직접 소통하면 음악적 영감이 샘솟는다”고 밝혔다. 작곡가들은 음악적 성취를 위해 늘 연구하는 임희영의 마음가짐에 반했다. 그래서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작품을 기꺼이 맡겼다.

서울 용산구 일신홀에서 열린 ‘첼리스트 임희영의 만남 시리즈 1-랑데부(Rendez-vous)’는 이런 이심전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콘서트였다. 임희영은 뛰어난 음악성과 유려한 테크닉으로 헌정받은 7곡을 엑설런트하게 들려줬다. 기대에 보답하는 멋진 연주를 선사해 창작자들에게 다시 헌정하는 흐뭇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이번 연주곡들은 10월에 음반으로도 발매된다.

강은경·임경신·김수혜의 곡엔 공통적으로 우리 민요 아리랑의 선율이 흘렀고, 임희영은 창작자의 작곡 의도를 정확히 꿰뚫으며 아직은 낯선 음악을 관객 가슴으로 차곡차곡 배달했다.

첼리스트 임희영이 한국 여성작곡가 7명의 작품을 초연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민은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아리랑 스피릿(Arirang Spirit)’에서는 피아니스트 이은지와 함께 무대에 올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게 해준 아리랑이 지역과 시간을 초월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 귀로 실감하게 해줬고, ‘첼로 솔로를 위한 아리랑 노리Ⅱ(Arirang NoriⅡ)’에서는 손으로 줄을 뜯거나 튕기는 피치카토 기법을 사용해 한 대의 악기지만 마치 두 대의 악기가 등장하는 효과를 살렸다.

또한 ‘첼로와 대금을 위한 만남Ⅲ(Rendez-vous Ⅲ)’에서는 김규환의 대금과 협연을 펼쳤다. 두 악기의 독자적인 선율과 음색이 끊임없이 뒤엉키면서 새로운 한국적 기풍과 우아함으로 재탄생했다.

만남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예기치 않게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약속했다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만나기도 하고, 그냥 짧게 스치듯 만나기도 하고, 인생의 긴 시간을 지속하며 낮이고 밤이고 매일 만나기도 한다. 임희영은 김지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맞닿음(Touch)’에서 결국 너와 나를 연결해 주는 접점을 매력적으로 풀어냈다. 피아노 반주는 이은지가 맡았다.

아울러 강종희의 ‘첼로 솔로를 위한 이분법적 관점의 세상에서(In a world of binary perspectives)’에서는 대나무 숲에 일렁이는 바람 닮은 느낌을 통해 우주를 떠도는 별과 같은 근원적 슬픔을 포착했고, 정재은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감정의 전이(Emotional Contagion)’에서는 유성호의 피아노가 합류해 전염병같이 순식간에 퍼지고 변형되고 다시 그것이 전염되는 감정의 흐름을 짚어냈다.

피날레곡인 이남림의 ‘첼로와 장구를 위한 산조(Sanjo)’에서는 최소리의 장구와 호흡을 맞춰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희로애락을 한국적 정취로 담아냈다.

프로그램이 모두 현대작품인 까닭에 앙코르 곡은 우리 귀에 익숙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리스트의 녹턴 3번 ‘사랑의 꿈’으로 마무리했다.

음악회를 마친 임희영은 “우리나라 작곡가의 작품을 세계무대에서 자주 연주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연주 목록에 7개 작품을 새로 추가하게 돼 기쁘다”라며 “같은 한국인이자 여성 음악가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뜻 깊은 음악회였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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