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등 3명 ‘피아노 다비드동맹’ 결성...음반레이블 설립하고 앨범 동시 발매

피터 오브차로프·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 등 자작곡 수록

박정옥 기자 승인 2021.11.29 09:35 의견 0
박종훈, 피터 오브차로프, 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왼쪽부터) 세 사람은 음반 레이블 ‘Davidsbündler 21’을 설립하고 30일 자작곡으로 꾸민 앨범을 동시에 발매한다. Ⓒ루비뮤직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한국인 피아니스트 최초로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완주한 ‘건반 위의 황태자’ 박종훈, 2021경기피아노페스티벌·가와이페스티벌2021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연세대 교수 피터 오브차로프, ‘아쉬케나지 가문’의 일원이며 한때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사위였던 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 이들 3명의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이 ‘한솥밥’을 먹는다. 새로운 클래식 레이블을 설립하고 동시에 앨범을 발매한다.

박종훈, 피터 오브차로프, 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는 힘을 합쳐 음반 레이블 ‘Davidsbündler 21’을 만들었다.

‘Davidsbündler 21’은 슈만의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슈만은 작곡뿐만 아니라 음악전문지 ‘음악신보’의 편집장을 맡아 음악평론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어릴 때부터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던 그는 문학적인 요소를 음악세계로 끌어들였다. ‘다비드 동맹(Davidsbündler)’이라는 가상단체와 멤버(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를 만들어 그들의 관점에서 음악평론과 작곡을 했다. 당시엔 혁신적 시도였다.

박종훈 등 세 사람이 여기서 힌트를 얻어 ‘Davidsbündler 21’이라고 레이블 이름을 지었으며,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쇼팽, 라흐마니노프의 전통을 잇는 피아니스트와 작곡가의 계보 부활’이라는 당찬 의미를 담았다. 그래서 이들이 30일 동시 발매하는 클래식 음반 ‘Reminiscence’ ‘Piano Works’ ‘La Vita’은 모두 자작곡으로 꾸몄다.

● 박종훈 ‘Reminiscence’ : 3 Short Fantasies 등 10곡 수록

박종훈의 앨범 ‘Reminiscence’에는 타이틀곡 ‘3 Short Fantasies(after Edgar Allan Poe)’를 포함해 모두 10곡이 수록됐다. Ⓒ루비뮤직


먼저 박종훈의 앨범 ‘Reminiscence’는 타이틀곡 ‘3 Short Fantasies(after Edgar Allan Poe)’를 시작으로 모두 10곡이 수록됐다.

‘3 Short Fantasies(after Edgar Allan Poe)’는 19세기 최대의 독창적 작가로 꼽히는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감성을 슈만과 박종훈의 정서로 연결해 신선함이 담긴 곡이다. 박종훈은 “포의 작품은 짧고, 암호와 상징이 가득하고, 뜬금없이 진행되는 이야기가 많다”라며 “이런 특징은 슈만의 정서와 맞닿아 있으며, 그런 모든 정서를 내 자신의 감성을 담아 작곡했다”고 밝혔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 주제에 의한 쇼팽 스타일의 발라드 ‘Ballade Chopinesque on the Theme of Hymn of Death’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문사 김우진의 비극적이고도 낭만적인 이야기를 쇼팽 스타일의 피아노로 구현했다. 박종훈은 “쇼팽의 곡은 표제음악의 성격은 띠지 않는다. 쇼팽은 작품마다 서정성과 드라마의 요소를 적절하게 혼합했다”고 설명했다.

‘Theme and Variations on J.S Bach’s Air on G String’도 눈길을 끈다. 원래 이 악곡은 바흐의 후원자인 알한트 쾨텐의 레오폴트 왕자를 위해서 쓰인 곡의 일부다. 이 곡은 전통적인 변주곡과는 거리가 있어 화성 혹은 패턴의 변형과 응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주제에 베이스 라인을 각 변주마다 일관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주제의 일부분이 새롭게 등장하는 모티브들과 어우러져 등장한다. 기술적인 변주곡으로 보기보단 감성적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걸작 C단조 환상곡의 악보를, 그것도 뒤집어서 보고 연주한다면?” 그런 상상 속에서 쓰인 곡인 ‘Fantasy for Solo Piano, after Mozart Reversed’도 빼놓을 수 없다.

‘Sonatina Classical’은 일반적으로 어린 학생들이 연주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으나 모리스 라벨의 소나티나처럼 음악적으로 원숙하고 깊이 있는 작품들도 여럿 있다. 박종훈의 ‘Sonatina Classical’은 고전적이고 심플한 소나타 형식의 작곡 기법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작은 소나타’지만 곳곳마다 그만의 위트와 해학이 들어있어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J.S.Bach :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565 (Piano Transcription by Chong Park)’에서는 오르간을 위한 원곡과는 달리 박종훈의 편곡은 피아노라는 악기에 걸맞은 거장적인 테크닉의 향연이 들어있다. 그의 편곡은 구성의 변형과 화성적 위트를 적극 적용해 바흐의 색채가 옅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모던 피아니즘의 화려한 콘서트 피스로 재탄생된 곡이다.

● 피터 오브차로프 ‘Piano Works’ : 작곡가의 영혼으로부터 나온 13곡

피터 오브차로프의 앨범 ‘Piano Works’에는 타이틀곡 ‘Prelude No.2 in G Major’를 포함해 자작곡 13곡이 담겨있다. Ⓒ루비뮤직


최근 ‘2021 경기피아노페스티벌’ ‘가와이 페스티벌 2021’에서 감각적인 연주로 많은 청중들의 환호를 받은 피터 오브차로프의 앨범 ‘Piano Works’는 타이틀곡인 ‘Prelude No.2 in G Major’을 포함해 자작곡 13곡이 담겨있다.

피터 오브차로프의 말에 의하면 친한 친구인 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의 조언으로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39세의 나이에 곡을 쓰기 시작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몇 달 안에 피아노, 첼로 그리고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인상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작품들을 작곡했고, 현재 이 곡들을 무대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음악이 정직하고, 진실하고, 감성적일 때, 그리고 음악이 청중과 청취자 개개인의 감정을 자극할 때, 그것은 공정하고 좋은 음악이다. 나는 음악이 유행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음악이 만들어지거나 발명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은 작곡가의 영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야만이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피터 오브차로프의 앨범엔 이런 소신이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Three Preludes’는 가을 수채화와 같은 풍경화를 연상시키며 따스한 햇살과 장난기 가득한 여행자의 노랫소리를 닮은 멜로디가 곁들어져 늦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곡이다.

‘Three Mazurkas’는 단조로 쓰여 있으며 어두운 화음, 그림자, 색조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Mazurka No.2’는 전통적인 집시 스케일을 바탕으로 한 폴란드 춤인 오베르크를 거칠고 격동적으로 해석했다. ‘Mazurka No.3’는 유대인의 선율적 전통을 연상시키는 애통한 주제로 시작하고 끝나지만 중반부에서는 씁쓸한 분위기가 희망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환희로 서서히 변한다.

피터 오브차로프가 초기에 완성한 작품인 ‘Piano Sonata in D Minor’에서는 낭만주의 스타일이 엿보인다. 3악장은 시작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장례 종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인물의 합창이 피아졸라의 느린 작곡을 연상시키는 자장가 같은 즉흥 연주로 전환된다.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은 대담한 기병대 돌격을 시작으로 중간 부분은 극적인 독백이 전개되는 명상곡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새로운 자장가를 보여준다.

우울한 주제와 다소 따뜻한 마음을 담은 인터메조의 대조적 조합의 시작으로 열리는 ‘Theme and Variations in F Minor’는 변주곡들이 이어진다. 주제가 살짝 수정된 (Var. I), 몽환적인 춤 (Var. II), 사려 깊은 철학 (Var. III), 내리는 눈의 음침한 그림 (Var IV). 음이 F Major로 변형되어 마치 오랜 우울함에서 벗어나 메인 테마(Var. V)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것처럼 안도감을 준다. 이어 가슴 아픈 감정적 희생(Var. VI)과 영원한 어둠을 딛고 인간 영혼의 마지막 승리를 이끌어내는 악마 같은 왈츠가 펼쳐진다.

‘Pantheon’은 ‘Three Historical Pieces for Large Symphony Orchestra’의 두 번째 곡을 피아노로 독주한 것이다. 묵직하고 기념비적인 화음과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는 멜로디가 장엄한 아름다움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존하는 고대 사원, 로마에 있는 거대한 판테온의 매혹적인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곡은 딸 생일선물로 작곡한 ‘Song for Maria’로 행복이 가득하다. 화창하고 귀여운 이 미니멀한 곡은 진심 어린 미소로 그의 앨범 ‘Piano Works’를 마무리한다.

● 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 ‘La Vita’ : 삶에 대한 긍정 가득

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의 두 번째 피아노 오리지널 앨범 ‘La Vita’는 호평을 받은 2019년 발매작 ‘Vision Fugitive. Piano Creations’의 뒤를 잇는 음반이다. 사진=루비뮤직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지휘자·작곡가로 활약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의 두 번째 피아노 오리지널 앨범인 ‘La Vita’는 호평을 받은 2019년 발매작 ‘Vision Fugitive. Piano Creations’의 뒤를 이을 음반이다.

앨범은 올해 작곡한 피아노 사이클 ‘Drawings in a Music Book’으로 시작한다. ‘Nine Piano Works for Children and Youth’라는 부제가 붙은 이 사이클은 피아니스트로서 젊은 시절의 신선함과 예술적 기교에 도전한 작품이다. 첫 번째 순서로 ‘The First Swallow’부터 ‘Spring Awakening’까지, 이 작품들은 무한한 상상력의 시적 축소로 다가온다. 어떤 작품은 단순한 수단으로 기발한 사운드 팔레트를 엮어 달빛에 비치는 물에 빠져들게 하거나(The Mermaid), 행성들의 조화를 뚫고 날아오르고(Falling Star), 다른 사람들은 짓궂게 15/8 박자표(Hide and Seek)와 당김음 리듬(Green Lion)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작곡된 ‘Sonata-Renaissance’에서는 르네상스라는 주제가 이 위대한 작품의 기초가 된다. 첫 번째 악장 Allegretto grazioso은 슈베르트의 우아함이 스며들어 있으며, 확실히 양식적인 오마주라기보다는 영적인 우아함이 작곡가 고유 언어의 프리즘을 통해 배어 있다. 두 번째 악장 Scherzo-Tarantelle은 몰아치는 폭풍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그 중간에서 Tarantella의 자유로움을 뚫고 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 광선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매력적인 무브먼트 중 하나는 Andante con moto이다. 그 엄청난 깊이의 고독 속에서, 우리는 인간을 넘어 영혼에 도달하는 음악을 듣게 되고, 속삭이지만 세계를 가로질러 들리는 친밀함으로 돌아가기 전 중간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치솟게 된다.

“‘La Vita’는 이탈리아어에서 ‘Life’로 번역된다. 지난해 4월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자가격리 기간 동안 작곡된 작품으로, 빛나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은 삶에 대한 긍정이자 음악 그 자체인 축복이다. 그렇다. 그것은 연약한 시, 초월적인 영혼 탐구, 투쟁을 통한 재탄생에서 삶의 메시지며, 앨범의 모든 작품들을 ‘La Vita’라는 주제로 통합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각각의 작품에서 선율과 화음의 숙달은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가 평행 우주를 창조하는 심오한 음악적 진정성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즉, 피카소의 표현에 따르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이 앨범이 증명해준다.

스베르들로프 아쉬케나지에게는 ‘아쉬케나지 가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그는 ‘다비드 아쉬케나지의 손자’이고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조카’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할아버지 다비드 아쉬케나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다. 외삼촌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다.

어디 이뿐인가. 한때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사위였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아르헤리치의 딸 리다와 결혼해 6세된 아들을 뒀다. 그는 “리다와 친구처럼 지낸다. 그와 결혼해 많은 음악적 교감을 나눴다. 6살 된 아들도 피아노를 매우 잘 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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