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오케스트라 전체의 역량이 성장해 있어야 객원 지휘자, 혹은 새로운 지휘자를 맞았을 때 좋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작은 부분을 캐치해서 역량을 키우는 게 예술감독의 역할이자 책임입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7대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인 다비트 라일란트는 25일 오후 예술의전당 내 국립 예술단체 연습동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외국인 지휘자 혹은 외국인 예술감독이라는 정의보다는 함께 음악적 열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코리안심포니와는 2018년 오페라 ‘코지 판 투테’, 2019년 국내 초연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2021년 ‘교향악축제’ 등을 통해 호흡을 맞췄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적 열정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 코리안심포니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흔히 음악은 보편적인 언어라고 하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문화적 특수성까지 잊게 하는 게 바로 음악의 힘입니다. 2018년 처음 호흡을 맞췄을 때 세심한 것까지 신경 쓰면서도 유연하게 음악적 열정을 나누고자 하는 관대한 마음에 끌렸어요. 새로운 모험을 하면서 음악적 풍요로움을 키울 수 있어 기대됩니다.”
지난 17일 입국한 라일란트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취임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유려한 지휘 스타일을 선보이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뒤 첫 공연이라 긴장됐지만, 단원들과 최고 기량을 선보이며 완벽에 가까운 열정을 나누자는 마음으로 올랐다”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맡겨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라일란트는 코리안심포니의 개방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교향악 또는 오페라에 특화한 음악을 강점으로 내세우는데 코리안심포니는 굉장히 유연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봤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열려있는 자세를 보면서 개방적이라 느꼈다”고 밝혔다.
이제 갓 부임한 신임 예술감독이지만, 그는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머뭇거림이 없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의 역할과 책임, 앞으로의 비전을 말할 때는 막힘이 없었다. 그는 “음악이 생소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음악을 듣고 싶어하게끔 레퍼토리를 제공하는 게 예술감독의 역할이다”라며 “이는 코리안심포니뿐 아니라 모든 오케스트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라고 덧붙였다.
라일란트는 임기 3년간 코리안심포니의 음악 반경도 한층 넓힐 계획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빈 악파, 독일의 낭만주의, 19세기 중반과 20세기 프랑스 음악이라는 세 축을 바탕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2022년을 사는 음악가로서 과거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하나의 사명이다”라고 말했다.
라일란트는 한국 작곡가들의 곡을 꾸준히 선보이면서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데도 관심이 크다. 그는 “나 자신도 지휘자가 되기 전에는 작곡가였기에 관심이 크다”며 “보편적인 음악적 코드를 쓰면서도 (문화적) 뿌리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한국적인 뿌리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작곡가들의 곡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라일란트는 코리안심포니의 명칭 변경과 관련해선 ‘국립’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언급했다.
코리안심포니는 옛 국립교향악단 마지막 상임지휘자였던 고 홍연택이 기존 일부 단원들과 함께 1985년 만든 오케스트라로, 최근 ‘국립’ 명칭을 더해 이름을 바꾸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라일란트는 구체적 언급은 피하면서도 “국립이라는 말이 갖는 상징성, 의미에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국립 오케스트라에 걸맞은 프로젝트 진행 등을 어떻게 할지 회의를 통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립’이라는 명칭을 달면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같은 역할을 한다”며 “해외에서 한국이 문화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최선을 다해 단원들의 역량을 키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원래 코리안심포니는 라일란트의 기자간담회를 열지 않으려고 했다. 간담회를 개최하면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친분에 따른 낙하산 인사 의혹을 받는 최정숙 신임 대표도 동석해야 하는데, 기자들의 질문이 라일란트 대신 최 대표에게 쏠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최 대표가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자격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기자간담회를 열지 않는 것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커지자 이날 급하게 개최했다. 대신 최 신임대표는 홍보팀을 통해 미리 자신은 공식적인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뒤 간담회 중간에 들어와 뒤편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고 기자들이 떠나려고 하자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역할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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