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어머니 ‘삶의 고단한 피부’ 예술이 되다...진주아 작가 ‘폐해녀복 업사이클링’ 전시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 조소·설치작품 13점 선보여
추석연휴 고향가지 못한 사람들에 ‘어머니의 정’ 선사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9.10 10:09 | 최종 수정 2022.09.10 10:10 의견 0
진주아 작가가 서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낡은 해녀복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은 진 작가의 작품 ‘숨’. ⓒ제주갤러리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어머니는 해녀였어요. 60여년간 물질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렸죠. 제주 해녀들의 고단한 삶을 대표하는 물건이 바로 해녀복입니다. 보통 1년에 한 벌 정도 씁니다. 하지만 버리기가 아까워 더 낡은 해녀복에서 조각을 잘라내 해어진 곳에 덧대어 수선한곤 합니다. 해녀복은 억척스러운 노동 속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삶이 피부’죠. 철갑 같은 피부요.”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속상한 전시가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8일 서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만난 진주아 작가의 ‘매크로에볼루션(MACROEVOLUTION)’이 그랬다. ‘대진화(大進化)’라는 뜻의 이번 전시는 지난 8월 31일 오픈했고 9월 12일까지 열린다.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아 거의 문을 닫기 직전에 감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더 널리 알릴 시간을 놓치게 돼 안타까웠다.

진주아 작가는 해녀들이 쓰다가 버린 해녀복을 구해 크고 작은 조각으로 해체한다. 그리고 한땀한땀 조각을 이어 붙여 작업한다. 참신한 발상이다. 낡은 해녀복을 재료로 활용하지만 그가 정성을 들여 만든 것들은 방금 바다에서 올라온 생명체들이다. 언뜻 외양은 멍게, 성게, 해삼 등을 닮았지만 한 번도 본적 없는 낯선 생명들이다. 이렇게 폐해녀복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조소·설치 작품 13점을 선보이고 있다. 독특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주아 작가가 서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낡은 해녀복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은 진 작가의 작품 ‘히아신스’. ⓒ제주갤러리 제공


처음엔 재료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박카스’ 들고 찾아다니며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지금은 예술품이 된다고 제법 소문이 나면서 자발적 기증이 많아졌다. 해녀복은 일반 잠수복과 다르다. 합성고무의 일종인 네오프렌(neoprene)으로 만들어지는데 일본에서만 생산된다. 날카로운 바다 속 위험물에서 몸을 보호해주기 위해 적절히 도톰하다. 또한 물속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부드럽고 가볍다.

“해녀들의 흔적을 받아들면 뭉클해요. 덕지덕지 수선한 곳이 많은데, 알뜰살뜰한 평생이 그대로 박혀 있는 셈이지요. 대충 땜질한 곳도 있지만 별과 하트 등 일부러 모양을 내어 붙이기도 했어요. ‘우리 어머니들은 삶 그 자체가 예술이구나’ 깊은 깨달음을 주죠. 지워지지 않도록 페인트로 자기 이름을 적어 놓은 부분을 보면, 저도 그냥 한번 어머니들의 이름을 불러보면서 쓰다듬기도 합니다.”

진 작가는 검은 색을 기본으로 해서 주황 등 여러 색이 가미된 강렬한 작품을 펼쳐낸다. 상처투성이인 폐고무옷을 가위질과 바느질로 이어 붙이는 가내수공업적 고단한 과정을 통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신산한 삶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새로운 종’이라고 부르며 생명을 불어 넣는 일에 집중한다.

“생계를 위한 작업복이었는데 점차 해양 폐기물로 바뀌어가는 해녀복을 재활용해 인간 몸에 깃든 시간성을 표현했어요. 기후위기 시대에 해양 환경, 생태계 등에 대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제주 해녀들의 힘든 노동과 모성, 삶의 흔적과 상처 등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진주아 작가가 서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낡은 해녀복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은 진 작가의 작품 ‘비양 1호’. ⓒ제주갤러리 제공


작품을 보면 진 작가의 진심에 공감한다. 엄청난 촉수를 가진 ‘가이아(GAIA)’는 금방이라도 사람을 덮칠 듯 하고, 꿈틀꿈틀 바닥을 기어가는 ‘숨(BREATH)’은 강인한 생명력이 가득하다. 원뿔 형태를 수십 개 달고 있는 ‘히아신스(HYACINTH)’와 날카로운 가시 모양이 박혀있는 ‘카르마(KARMA)’는 쇼윈도 마네킹이 연상된다. 44사이즈와 55사이즈쯤 되니, 더 친근하다.

‘비양 1호(BIYANG NO.1)’와 ‘부활(REVIVALISM)’은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가 좋아할 작품이다. 기묘한 모습이긴 하지만 돌고래를 닮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제작진이 미리 이런 작품을 알았다면 CG 대신에 살짝 출연시키지 않았을까.

미술평론가 양은희는 “작가가 정성을 들여 만들고 있는 것들은 마치 깊고 푸른 바다 속에서 갓 나온 기이한 생명체처럼 보인다. 육지의 인간들이 본적이 없고 낯설게만 보이는 그 생명체들은 바다 속 환상계와 작가의 무의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녀복을 통해 단순히 어머니의 삶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해녀의 기억 속에서 그동안 억압당했던 자신을 끄집어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들여다본다”고 평가했다.

추석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거나, 혹 한평생 헌신하신 어머니의 삶을 느껴보고 싶다면 제주갤러리를 방문하면 된다. 추석 당일엔 문을 열지 않지만 11일과 12일 아직 이틀이 더 남아있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