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손톱 봉선화 물들이고 한국가곡 100년에 물들다...‘홍난파가곡제’ 둘쨋날 공연도 히트

성악가 12명 한국인 가장 사랑하는 가곡 선사
‘고향의 봄’ 랩버전으로 불러 젊은층 박수갈채

민은기 기자 승인 2022.12.30 15:22 | 최종 수정 2023.03.17 10:39 의견 0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27일 출연자와 관객들이 ‘고향의 봄’을 합창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손톱에 연분홍 봉선화 물을 들인 관객들이 800여석을 꽉 채웠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 아름답게 꽃필 적에 / 어여쁘신 아가씨들 / 너를 반겨 놀았도다” 한국가곡의 출발을 알렸던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 손가락에 봉선화를 꽁꽁 묶어 선명한 흔적을 남긴 팬들은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을 위로해주던 노랫말을 생각하며 우리 가곡 100년으로 가슴도 물들였다.

‘홍난파의집’(종로구 홍파동 등록문화재 제90호)은 26일과 27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를 열었다. 시대의 희로애락이 담긴 홍난파 선생의 작품과 함께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표 가곡을 노래했다.

첫날(26일)은 홍난파 가곡을 중심으로, 둘쨋날(27일)은 한국가곡 100년을 기념해 가장 많이 불리고 사랑받는 가곡을 선정해 무대에 올렸다. 둘쨋날 공연을 감상했다. 로비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추억의 봉선화(봉숭아) 물들이기 행사도 마련했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27일 출연자들이 ‘그리운 금강산’을 합창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출연 성악가의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파워 라인업이다. 소프라노 임청화·김민희·김민지·강혜명, 메조소프라노 신현선, 테너 이정원·이재욱·김기선·피예프 누르카낫, 바리톤 박경준·김민성, 베이스 김형삼 등 12명이 나왔다. 거기에 더해 이경선(바이올린)과 황윤주(바순), 그리고 홍난파합창단이 힘을 보탰다. 김봉미가 지휘하는 소리얼오케스트라는 성악가들과 환상 호흡을 맞췄다. 래퍼 정상수와 블리스도 특별출연했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소프라노 임청화가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소프라노 임청화가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공연의 예술총감독을 맡은 임청화는 1부에서 무궁화 무늬 새겨진 드레스를 입고 나와 ‘봉선화’(김현준 시·홍난파 곡)와 ‘목련화’(조영식 시·김동진 곡)를, 2부에서는 태극기 드레스로 등장해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시·곡)와 ‘나의 조국’(이유식 시·김한기 곡)’을 불렀다. 노래 제목에 딱 들어맞는 의상을 선택한 센스가 빛났다. 꽃노래 두곡으로 한겨울을 봄과 여름으로 만드는 계절 역주행 매직을 보여줬고, 또 나머지 두곡에서는 애국심을 샘솟게 했다. 역시 베테랑이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소프라노 김민희가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소프라노 김민지가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등불을 끄고 자려 하니 / 휘영청 창문이 밝으오 / 문을 열고 내어다보니 / 달은 어여쁜 선녀같이 / 내 뜰 위에 찾아온다 / 달아 내 사랑아 / 내 그대와 함께 / 이 한밤을 이 한밤을 / 얘기하고 싶구나” 김민희는 ‘달밤’(김태오 시·나운영 곡)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달빛 로맨스를 멋지게 표현했다. 이어 ‘꽃구름 속에’(박두진 시·이흥렬 곡)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복사꽃·살구꽃을 흩뿌렸다.

남편은 시력을 잃어 앞을 보지 못한다. 부인은 그런 남편의 손발이 되어준다. 젊은 시절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크게 고생했는데, 남편의 헌신으로 어려움을 넘겼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수고는 수고도 아니다. 부인은 금혼식(결혼 50주년 기념식)을 맞아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시를 썼고, ‘레드카펫’(민서현 시·임긍수 곡)이라는 멋진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김민지는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경쾌한 선율로 잘 담아냈다. ‘여보 사랑해요’ 찬가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소프라노 강혜명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메조소프라노 신현선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강혜명은 노래에 100% ‘빙의’하는 스킬이 놀라운 가수다. ‘고향’(정지용 시·채동선 곡)에 이어 ‘꽃별’(정원 이경숙 시·임채일 곡)에서도 퍼펙트하게 감정을 실어 전달하는 기교를 보여줬다. “그대는 아시나요 / 사랑 안에 시들지 않는 / 그대는 아시나요 / 당신 있어 내가 있음을”은 그랜드 오페라의 아리아가 연상될 만큼 웅장한 묘미를 선사했다.

신현선은 흥겹고 해학적인 ‘새타령’(박희경 시·조두남 곡)을 통해 대붕새, 봉황새, 기러기, 접동새, 원앙새, 갈매기, 종달새, 부엉새, 비둘기, 딱구리, 뻐국새, 꾀꼴새 등을 한꺼번에 몰고 왔다. 콘서트홀에 온갖 새들이 날아 다녔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테너 이정원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테너 이재욱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이정원은 힘을 빼는 능력이 대단하다. 테너의 고음을 마음껏 뽐낼 수도 있지만 일부러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80%만으로 100% 파워 효과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고파’(이은상 시·김동진 곡)와 ‘희망의 나라로’(현제명 시·곡)에서 ‘역시 이정원!’을 입증했다.

“세모시 옥색치마 / 금박물린 저 댕기가 / 창공을 차고 나가 / 구름 속에 나부끼다 / 제비도 놀란양 / 나래 쉬고 보더라” 이재욱은 장모(김말봉)와 사위(금수현)의 합작 으로 유명한 ‘그네’(김말봉 시·금수현 곡)를 부른 뒤, 인생의 관조가 돋보이는 ‘내 맘의 강물’(이수인 시·곡)을 들려줬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테너 김기선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테너 피예프 누르카낫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김기선은 ‘남촌’(김동환 시·김규환 곡)과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이안삼 곡)로 묵직한 테너의 매력을 선보였다. 특히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는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면서도 불꽃 사랑을 적절하게 강조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피예프 누르카낫은 임청화 교수(백석대)의 제자다. 마스터클래스로 인연을 맺은 뒤 꾸준히 지도를 받고 있다.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동무생각’(이은상 시·박태준 곡)과 ‘금강에 살으리랏다’(이은상 시·홍난파 곡)를 불러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바리톤 박경준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바리톤 김민성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베이스 김형삼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박경준은 ‘바위고개’(이서향 시·이흥렬 곡)와 ‘얼굴’(심봉석 시·신귀복 곡)을 선사했다. ‘바위고개’는 오랫동안 이흥렬이 노랫말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원래는 극작가 이서향이 작사했다. 1948년에 그가 월북하자 어쩔 수 없이 이흥렬 작사로 바뀌어 전해졌다. 신귀복 작곡가는 박경준이 ‘얼굴’을 끝마치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김민성은 요즘 2030의 최애곡인 ‘마중’(허림 시·윤학준 곡)으로 젊은층을 공략했다. “사는 게 무언지 /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 꽃으오 서 있을게” 묵직한 저음을 타고 러브송이 흘렀다.

김형삼은 ‘그대 있음에’(김남조 시·김순애 곡)에 이어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라는 추임새 노랫말이 돋보이는 ‘명태’(양명문 시·변훈 곡)로 겨울밤을 훈훈하게 데웠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소프라노 김민지와 메조소프라노 신현선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테너 이정원과 바리톤 박경준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바리톤 김민성이 랩퍼 정상수, 블리스와 함께 랩 버전의 '고향의 봄'을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듀엣송도 빛났다. 김민지와 신현선은 ‘보리밭’(박화목 시·윤용하 곡)과 ‘산유화’(김소월 시·김성태 곡)를, 이정원과 박경준은 ‘향수’(정지용 시·김희갑 곡)로 환상 케미를 선보였다.

파격적인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가곡 공연에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김민성이 래퍼 정상수, 블리스와 함께 ‘고향의 봄’(이원수 시·홍난파 곡)을 랩 버전으로 편곡해 불렀다. 아직은 낯설어 ‘푸처핸섭!(Put your hands up!)’ 호응은 떨어졌지만 지금껏 보지 못했던 참신한 무대다.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홍난파합창단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바수니스트 황윤주가 연주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송년기획공연 ‘홍난파가곡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이 연주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홍난파합창단은 ‘사공의 노래’(함효영 시·홍난파 곡) ‘눈’(김효근 시·곡) ‘새날이 오네’(이호준 시·곡)를 연속해서 불렀다. 홍난파 선생이 태어난 화성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합창단이다.

바수니스트 황윤주는 ‘사랑’(이은상 시·홍난파 곡)을,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은 ‘애수의 조선’(홍난파 곡)을 연주해 공연에 풍부함을 더했다.

모든 출연자들이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최영섭 곡)을 부른 뒤, 관객과 함께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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