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아! 대한민국’서 자발적 떼창...눈물과 환희를 오간 ‘위대한 청춘 70년’

영상+가곡 결합 참신구성 입소문 타며 히트
“재미있다, 감동있다” 올시즌 롱런공연 예감
푸르지오아트홀 이어 서초 등에서도 러브콜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2.06 14:49 | 최종 수정 2023.03.16 20:44 의견 0
테너 지명훈, 소프라노 송난영, 바리톤 석상근(왼쪽부터)이 영상스토리 가곡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에서 피날레로 ‘젊은 그대’를 부르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경주로 수학여행을 온 검정교복 학생 수백명이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에 앉아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첨성대에도 빼곡하게 올라타 금세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다. 왕년의 명배우 김지미와 김희갑이 도로 한복판서 교통경찰이 돼 수신호를 하며 차량의 흐름을 이끈다. 한 꼬마는 고추 드러낸 채 푸세식 화장실에 앉아 힘을 주고 있다. 웃음이 절로 난다. 비록 가난했지만 희망을 꿈꾸었던 1960년대의 여러 풍경이 화면에 흐른다. “맞아 저때는 그랬지”라며 모두들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영상이 끝나자 테너 지명훈이 무대로 나와 ‘잘 살아보세’(한운사 시·김희조 곡)와 ‘뱃노래’(석호 시·조두남 곡)를 부른다. 건전가요라는 이름이 붙었던 ‘잘 살아보세’는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곡이다. 먹고 살기 위해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치열하게 보낸 사람들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었고, 또 입에 단내 날 정도로 불렀다. 지명훈이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첫소절을 부르자, 관객들은 스스로 “잘 살아보세~”라며 후렴구를 넣어준다.

배턴을 이어받은 바리톤 석상근은 ‘목련화’(조영식 시·조두남 곡)로 실력을 뽐낸다. 한때 테너 엄정행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곡으로, 라디오만 틀면 나왔다. 멋진 가사와 유려한 선율이 대지를 뚫고 나오는 따뜻한 기운과 어울리며 대표적인 봄노래가 됐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그냥 들을 땐 몰랐지만 집중해 들으니 마지막 부분 노랫말이 감동이다. 앞으로 나도 세상을 가치 있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만든다. 노래의 마법이다.

테너 지명훈, 지휘자 김기웅, 소프라노 송난영, 바리톤 석상근(왼쪽부터)이 영상스토리 가곡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영상과 가곡이 결합된 이색 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이 중장년층과 실버세대에게 바치는 헌정 음악회가 됐다. 지난 1월 28일 서울 을지로 푸르지오아트홀을 가득 메운 50·60·70·80세대는 산전수전을 모두 겪었음에도 뭉클, 울컥, 찔끔을 경험했다. 벅참, 환희, 기쁨도 느꼈다. 탤런트 송승환은 깜작 영상을 통해 “자식이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80여분의 순삭은 넘치는 볼거리의 힘이 컸다. 이번 콘서트를 진두지휘한 한숙현 음악감독은 귀한 영상과 사진을 구하기 위해 며칠 동안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안성맞춤 자료를 찾으려 눈을 부릅떴다. 김연희 작가는 영상에 스토리를 입히고 제목을 뽑았다. 두 사람의 협업이 빛을 발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지루하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10년씩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영상으로 다루되 역사에 남을만한 기념비적인 사건과 함께 실생활에서 체험했던 미니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엮었다. 깨알재미가 가득하다. 프롤로그-1960년대-1970년대-1980년대-1990년대-에필로그 등 6개의 파트로 콘텐츠를 구성했다.

소프라노 송난영이 영상스토리 가곡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 가족이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자는 가운데 머리맡에 놓인 요강, 여학생들까지 총검을 잡고 훈련해야 했던 교련, 전염병 예방을 위해 여성의 주요 부위까지 분말 소독제를 뿌려대는 보건소 직원, 무릎 위 20cm 미니스커트 단속 등 방울방울 추억의 시절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영상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폭소를 터트리기도 하는 등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영상에는 비발디 ‘사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중 ‘환희의 송가’,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혁명’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다수의 클래식 음악을 삽입해 주목도를 높였다.

지명훈, 석상근, 송난영 등 3명의 성악가는 김기웅이 지휘하는 리움챔버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소프라노 송난영은 ‘1980년대: 경제 급성장,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정수라가 노래한 ‘아! 대한민국’(박건호 시·김재일 곡)을 불렀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 (중략)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 (중략) / 아아 대한민국 / 아아 우리 조국 /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정부가 권장한 건전가요였음에도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빅히트했던 곡이다. 관객들은 자발적 박수와 함께 2절을 떼창으로 선보였다. 이어 지명훈은 ‘희망의 나라로’(현제명 시·곡)를 들려줬다.

테너 지명훈이 영상스토리 가곡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송난영은 ‘1990년대: 경제위기 극복과 문화강국 발전’에서 조수미가 부른 ‘챔피언’(에릭 레비 곡)을 노래해 열띤 환호를 받았다. 지명훈과 석상근은 듀엣으로 ‘올 솔레미오’(카푸아 곡)를 부른 뒤, 송난영과 함께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최영섭 곡)을 삼중창으로 선사했다.

“서로 이름도 모릅니다. 하루 만나면 싸우다가 죽고.” 6·25전쟁과 참상에서 석상근은 ‘비목’(한명희 시·장일남 곡)을, 송난영은 ‘꽃구름 속에’(박두진 시·이흥렬 곡)를, 석상근은 ‘보리밭’(박화목 시·윤용하 곡)을 들려줬다.

피, 땀, 눈물, 그리고 자유를 향한 분투를 다룬 1970년대에서 지명훈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신명순 시·김희갑 곡), 송난영은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임긍수 곡), 지명훈이 ‘네순 도르마’(푸치니 곡)를 잇따라 연주했다.

바리톤 석상근이 영상스토리 가곡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마지막 여섯 번째 파트인 ‘2000년대 선진국 도약,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에서는 세 사람이 ‘아름다운 강산’(신중현 시·곡)과 ‘젊은 그대’(김수철 시·곡)를 선사했다. 석상근은 두 다리를 엇갈리며 깡총 뛰는 김수철의 시그니처 동작을 재연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번 공연을 주최한 월간리뷰 김종섭 대표는 “영상스토리 가곡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은 절대 감동 없이 돌려보내지 않는 공연이다”라며 “이번 음악회를 계기로 서초(5월)와 안성(3월) 등에서도 잇따라 무대에 올린다”고 밝혔다.

/eunk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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