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수 픽콘서트] 연륜의 지배력 반짝...재클린 뒤프레 잊게 만든 지안 왕 ‘엘가 첼로 협주곡’

휴 울프 지휘로 서울시향 정기공연
국내 초연 ‘코마로프의 추락’ 눈길
홀스트 ‘행성’은 촘촘 조직력 발휘

손민수 객원기자 승인 2023.03.07 10:25 | 최종 수정 2023.04.07 17:05 의견 0
첼리스트 지안 왕이 휴 울프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손민수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지휘자 휴 울프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췄다. 지난 2월 17일 롯데콘서트홀. 연주 시작 전 튀르키예 지진 희생자를 추모한다고 말했다. 첫 곡은 한국 초연 작품인 브렛 딘의 ‘코마모프의 추억’. 러시아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 코마로프를 기리는 음악이 우연의 일치처럼 지진 피해와 들어맞아 더욱 집중했다. 코마로프는 1967년 단독으로 소유스 1호에 탑승했다가 지구 귀환 도중 우주선의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지상에 충돌해 숨졌다.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지 않은 사람들도 악기 편성(특히 타악기와 알루미늄호일을 비롯해 평소에 많이 쓰지 않는 악기 구성)을 관심 있게 살펴보며 감상했다면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 같다.

현악기들이 하모닉스 기법으로 첫 연주를 시작하는데 어딘지 모를 미지의 공간으로 안내받는 느낌을 준다. 이후 목관과 타악기 등으로 교차가 이루어지며 미지의 공간이더 확대된다.

프로그램을 보고 이 곡을 미리 공부하고 싶었지만 스코어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지휘하는 휴 울프의 음반을 듣고 스톱워치를 사용해 나름의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비교해 보았다.

곡의 초·중반을 지날 무렵 우주 공간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을까? 초반 이후 템포가 느려진 느낌과 중간에 악기의 소리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나오지 않은 것 같은 어색함, 관악기 사운드의 기억이 있다. 중·후반부의 튜티(전체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밀도 있는 서울시향 사운드를 체감할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로는 휴 울프가 2008년 레코딩한 시드니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더 좋은 것 같다.

이번 연주는 레코딩보다 약 2분 정도가 더 길게 연주됐다. 곡 후반부의 템포는 비슷했으나 초·중반부의 여유롭고 편안한 템포 속에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한듯하지만 레코딩 버전이 조금 더 긴장감을 몰고 가는 사운드와 박자가 매력적이다.

첼리스트 지안 왕이 휴 울프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이어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Op.85)’. 일반적 협주곡과 다르게 총 4악장으로 구성돼 1, 2악장과 3, 4악장을 붙여 연주된다.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에 의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곡으로 뒤프레의 연주가 기준이 되는 곡이다.

협연자 지안 왕의 이름을 보고 기대감이 생겼다. 레코딩과 유튜브를 통해 접한 연주자고 그의 엘가 첼로 협주곡(2006년)을 들어보면 정확한 음정과 보잉, 아름답고 풍부한 표현력 등을 통해 얼마나 훌륭한 첼리스트인지를 알 수 있다.

실황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더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휘자의 말을 빌리자면 홀스트의 ‘행성’과 엘가의 곡이 비슷한 시기, 같은 영국 작곡가라는 연결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코마로프의 추락’과 ‘행성’의 오케스트레이션과 흡사한 곡을 선정했다면 ‘조금 더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색감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첼리스트 지안 왕(오른쪽)이 휴 울프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협연한 뒤 서로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첫 서주의 5마디를 통해 첼리스트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한층 더 여유와 깊이감이 느껴졌다. 1악장의 슬픈 테마를 슬프지만 무겁지 않게 연주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어 라이브의 묘미 2악장. 첼로 첫 카덴차에서 잠깐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곧 사라졌다. 객석을 바로 흡수하는 연주자의 지배력은 공연장이 아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순간이다. 음정, 리듬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연주를 하는 연주자도 있지만 그런 연주는 좀 사람냄새가 없다고 할까? 지안 왕의 이번 연주는 2006년 보다 덜 드라마틱했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연주의 지배력은 인상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오케스트라의 응집력이 첫 곡보다 떨어지는 느낌이다. 축구로 예를 들자면 조직력보다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 같았다. 이러한 팀은 리듬을 탈 때는 무서운 조직력이 생기는데 여기서는 그 리듬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관심을 갖게 한 곡은 바로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Op.320)’이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대규모 편성이기에 기대됐다.

또한 강한 리듬과 서정적 멜로디가 적절히 조화된 곡으로 많은 작곡가들의 모티브가 됐다. 조성음악의 근간을 유지하며 고전적 관현악법 구조와 기법을 사용했다. 이 곡은 홀스트가 2년간 공을 들인 대표작이다. 태양계의 행성들을 나열해 천문학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홀스트는 점성학에 관심을 가지게 돼 행성 이름의 기원이 된 신들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곡의 순서가 지구를 중심으로 가까운 화성부터 금성, 수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으로 구성돼 신들에 따른 부제가 달려있다.

지휘자 휴 울프가 서울시향과 홀스트의 '행성' 연주를 마친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화성, 전쟁을 가져오는 자(Mars, the Bringer of War)

부제에 맞게 5/4박자 속 셋잇단음표를 사용해 강한 리듬감으로 긴장감을 주는 곡이다. 이번 연주에서 리듬의 강한 타격감으로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금성, 평화를 가져오는 자(Venus, the Bringer of Peace)

호른이 누군가를 부르는 느낌의 서정적이고 느린 악장으로 비너스를 조심스럽게 묘사했다.

-수성, 날개 달린 메신저(Mercury, the Winged Messenger)

스케르초 형식의 가벼운 느낌을 주는 곡으로 헤르메스를 표현한 곡으로 이번 연주에서는 비바체(Vivace)에 초점을 맞추었는지 여러 파트들이 주고받는 부분에서 음가를 다 채워서 좀 무거운 느낌이었다. 특정 한 악기 파트에서 악기의 울림 때문인지 뒤로 당기는 느낌이었다.

-목성, 쾌활함을 가져오는 자(Jupiter, the Bring of Jollity)

제우스 왕을 표현한 곡으로서 서울시향 사운드가 화려하고 역동적인 곡으로 연주된 곡 중 하나였다. 특히 안단테 마에스토조(Andante Maestoso) 부분부터 현악기와 관악기의 합주는 개인기와 조직력이 갖추어진 축구팀 같았다. 물론 팀 중 튀고 싶거나 부족한 멤버가 있겠지만, 후반부의 렌토 마에스토즈(Lento Maestoso)에서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마음껏 표출하는 그들만의 힘이 느껴졌다.

-토성, 노년을 가져오는 자(Saturn, the Bringer of Old Age)

‘시간의 신’인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표현한 곡으로 첫 도입에 노년의 시간을 표현한 듯 하프와 플루트 4파트와 파곳의 싱코페이션으로 시작하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악장 내내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응집력을 느낄 수 있었다.

-천왕성, 마법사(Uranus, the Magician)

제목은 우라누스, 즉 제우스의 할아버지인데 그 표현보다 마법사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좋은 악장이다. 오케스트라의 익살스러운 연주와 강한 사운드의 장중함과 섬세한 셈여림으로 잘 표현된 악장이었다.

-해왕성, 신비주의자(Neptune, the Mystic)

앞의 악장들과는 다르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을 표현한 곡이 아니고 해왕성의 어떠한 신비로움을 표현한 곡으로 곡 후반부에 여성 보칼리제로 마무리하는 곡이다. 처음부터 조용히 시작해 끝나는 악장으로 하프와 첼레스타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지휘자 휴 울프가 서울시향과 홀스트의 '행성'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곡이 시작될 때 합창은 어디에 숨어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역시 객석 왼쪽 바깥 출입문 쪽에 있었다. 합창이 나오자 객석은 합창을 찾는 모습이었고 좋은 선택지였다.

여성 보칼리제는 깔끔한 음색으로 잘 연주됐지만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마지막 마디는 여성합창의 소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무한 반복을 하여 마무리가 돼야 하는데, 지휘자도 더 기다리는 느낌이엇다. 합창이 2~3번 정도 더 반복하면 효과가 더욱 좋았을 것 같았다. 오페라 막후 합창지휘 기법 중 합창단이 공연장 반대편으로 돌며 디미누엔도를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조금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은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중간 중간 응집력이 떨어지는 것이 자주 보였다.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을 모아 놓은 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가 되듯 연주도 후반부로 갈수록 좋아졌다.

이날 공연의 MOM은 팀파니스트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그가 연주를 하는 순간 모두 시선을 빼앗겼다. 풍부한 사운드와 연주자세, 정말 좋은 퍼포먼스였다. 그와 더욱 좋아질 서울시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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