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고향의 봄’ 한곡이 세곡으로 변신...편곡 매력 빛난 김성혜 리사이틀

피아니스트 김기경의 반주·배리에이션과 환상케미
세계가곡·한국가곡 반반씩 섞어 풍성한 음악 선물

김일환 기자 승인 2023.04.20 10:03 | 최종 수정 2023.04.24 18:52 의견 0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김성혜가 ‘사월 삼십이일(4월 32일)’이라는 타이틀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반주는 피아니스트 김기경.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가장 많이 불리는 ‘고향의 봄’(이원수 시·홍난파 곡)이 김성혜의 목소리를 타고 흐르자 ‘한 편의 작품’이 됐다. 동심을 담아 청아하고 깨끗하게 1절을 노래하더니,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스킬을 살려 ‘아아~아아~아아아아~’ 가사 없이 모음으로만 노래하는 보칼리제로 1절을 한 번 더 불렀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이번엔 2절 후반부로 훌쩍 넘어갔다.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고음에 실어 비교적 빠른 템포로 선사했다. 반주와 편곡을 맡은 피아니스트 김기경과의 케미가 놀랍다. 노래 한 곡에 세 곡을 담은 효과를 냈다. 요즘말로 콘서트장을 찢어놓았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김성혜가 ‘사월 삼십이일(4월 32일)’이라는 타이틀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반주는 피아니스트 김기경.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소프라노 김성혜가 17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사월 삼십이일(4월 32일)’이라는 타이틀로 리사이틀을 열었다. 오롯이 팬들을 위한 하루를 새로 만들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독창회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코로나의 시간을 겪으면서 하루하루가 정말 선물 같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늘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라는 상자’를 열어요. 올 4월은 ‘당신이 있어 고마워요’라고 제 마음을 포장해 보내 드리고 싶어요. 한 달은 대부분 30일과 31일까지만 있지만, 이달엔 특별히 하루를 더 만들었어요. 그 소중한 날에 생큐(Thank you)를 가득 채워 음악선물을 보냅니다. 꽃 같은 당신, 꼭 받아주세요.”

1부에서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의 외국 가곡을 들려줬다. 오페라 아리아도 넣었다. 헨리 퍼셀의 ‘Music for a while(음악은 잠시 동안)’은 우리의 모든 걱정을 잊게 만들어주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음악 하나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음악찬가였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오페라 ‘바야제트’에 나오는 ‘Sposa son Disprezzata(멸시당한 신부)’에서는 중간에 보칼리제를 넣어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시그니처 러브송인 주세페 조르다니의 ‘Caro mio ben(사랑스러운 나의 연인)’은 틀에 박힌 루틴에서 벗어난 김기경의 즉흥적 피아노 반주와 잘 어울렸다. 옆에 있는 사람이 연인이었다면 슬며시 손을 잡게 만들었을 것이다.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Ständchen(세레나데)’에서는 살짝 극적장면을 연출했다. “장미가 아침에 일어날 때 지난밤의 황홀함으로 더 활짝 피리라” 김성혜는 피날레 부분에서 오랫동안 먼 곳을 응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로베르트 슈만의 연가곡집 ‘미르테의 꽃’에 나오는 ‘Widmung(헌정)’, 가브리엘 포레의 ‘Clair de Lune(달빛)’, 프랑시스 풀랑의 ‘Les chemins de l’amour(사랑의 길)’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7곡을 논스톱으로 내달렸다. 곡의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연주자의 세심한 배려지만, 분명 힘은 들었을 터. 몇 차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도 이끌어 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김성혜가 리사이틀에서 오브라도스의 ‘스페인 고전 가곡’을 부르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모두 7곡으로 구성된 페르난도 오브라도스의 ‘Classical Spanish Songs(스페인 고전 가곡)’은 1부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더할 나위 없이 강렬했다. 7부작 드라마를 보는 듯 엑설런트했다. 제1곡 ‘오직 나만의 라우레올라’는 처음과 마지막 부분을 무반주로 노래해 인상적이었다.

제2곡 ‘사랑으로’는 노랫말이 너무 너무 멋지다. “내 사랑이여, 셀 수 없이 많은 키스를 해주세요 / 내 머리카락 수만큼 / 천 번씩 백번을 하고 / 또 바로 천 번씩 백 번을 하고 / 그리고 그 후에는 수천 번씩 세 번을! / 그리고 아무도 못 알아챌 것이기에 /셈한 것을 없던 걸로 해요 / 그리고 다시 거꾸로 수를 세기로 해요” 김성혜는 ‘수천 번씩 세 번을!’ 파트에서 손가락으로 세 번을 표시해 가사 전달을 돕는 센스를 발휘했다. 끝없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간접 체험의 황홀함을 느끼게 해줬다.

‘내 마음은 어찌하여’ ‘질투에 찬 젊은이’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부드러운 머릿결’을 거쳐 마지막 제7곡 ‘작은 신부’에 이르렀다. 피아노가 거침이 없다. 거기에 더해진 노래 소리는 ‘밤의 여왕급’이다. 음음음~ 허밍 부분은 레오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의 주요 선율이 연상됐다. 목소리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다니! 서프라이즈다. 곡의 특성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표정 연기도 멋지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김성혜가 ‘사월 삼십이일(4월 32일)’이라는 타이틀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2부에서는 한국가곡을 연주했다. ‘산유화’(김소월 시·김순남 곡)는 허밍 추임새가 돋보였고, ‘돌아가는 꽃’(도종환 시·임태규 곡)은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졌다.

“눈부신 생명의 꽃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으니 / 어찌 감격의 눈물 없으랴 / 어찌 환희의 눈물 없으리 / 어찌어찌 환희의 눈물 없으랴” 김성혜는 ‘봄비 젖은 벚꽃 길’(한상완 시·임긍수 곡)을 부른 뒤 울컥 한 듯 오랫동안 뒤로 돌아서 있어 음악적 카타르시스를 배가시켰다.

‘위로’(고옥주 시·이안삼 곡)를 통해서는 사랑할 때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로 꽉 차오르던 마음이 얼마나 힘이 되는 위안이었는지 되새겨줬다. 최근 여러 음악회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단골곡 ‘어느 날 내게 사랑이’(다빈 시·이안삼 곡)는 피아노 하나로 반주했을 뿐인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 같았다. 김기경의 편곡 파워다. ‘얼굴’(신봉석 시·신귀복 곡)과 ‘보리밭’(박화목 시·윤용하 곡)도 배리에이션의 묘미가 빛났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김성혜가 ‘사월 삼십이일(4월 32일)’이라는 타이틀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김성혜가 리사이틀을 마친뒤 피아니스트 김기경의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를 하고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고향의 봄’을 끝으로 프로그램북에 나와 있는 곡을 모두 마친 뒤 김성혜는 “너무 많은 관객이 와주셔서 힘이 됐다. 최상의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 힘 덕에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감사하다. 이번 공연으로 위로와 감사와 평화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시킨 시·김효근 역·김효근 곡)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래니 울프 시·곡)를 앙코르곡으로 선사했다. 두 곡 모두 힘을 주는 마법의 노래다. 관객 모두는 가장 값진 ‘사월 삼십이일’ 선물을 챙겼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 즐거운 날들 오리니 / 세상이 그대를 버릴지라도 /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 꼭 올 거야”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kim67@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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