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여주고 소리로도 들려주는 국내 첫 피아노 도슨트

제주 피아노박물관 김미경 씨 ‘33대 스토리’ 친절설명
???????세계 단 1대뿐인 로댕 조각 피아노 연주하면 짜릿감동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3.05.24 17:36 | 최종 수정 2023.05.24 17:42 의견 0
제주 피아노박물관에서 피아노 도슨트로 활약하고 있는 김미경 씨가 연주를 하며 피아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미경 제공

[클래식비즈=송인호 객원기자] 4월 제주는 동백꽃이 한창이다. 짙은 붉음이 주는 화려함은 봄바람마저 시샘하고 있었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동백나무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는 커다란 눈망울에 시원한 웃음으로 반겼다. 피아니스트 김미경이다.

그는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에서 피아노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트페어나 그림전시장에 가면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알아도 피아노 박물관에 웬 도슨트가 있을까 궁금했다.

“피아노 도슨트는 말 그대로 피아노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에요. 그림 전시회에 가면 중요한 그림별로 작업 내용, 작업 기법,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듯이 저희 박물관에 있는 각각의 중요한 피아노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는 거예요.”

눈이 생기 있게 빛났다. 그는 제주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는 국악이론을 전공해 동·서양의 음악적 사고를 확장시켰다. 음악치료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이탈리아 피렌체 Centro Studi Musica&Arte Musicoterapia(음악치료) Diploma 과정도 수료했다. 이런 그가 어떻게 해서 이름도 생소한 피아노 도슨트를 하게 됐을까.

김미경 씨는 제주 피아노박물관에서 피아노 도슨트로 활약하고 있다. ⓒ김미경 제공


“제가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본 경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르면 재미없어 해요. 조금이라도 알면 재미있어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피아노를 그냥 전시품으로만 보여주기보다는 그 당시 작곡가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또 그 작곡가의 작품을 전시된 피아노로 연주해 주면 정말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박물관장님께서도 음악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들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눈으로만 보여줄게 아니라 소리를 들려주자,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죠.”

피아노박물관에는 오래된 하프시코드부터 그랜드 피아노까지 모두 33대가 있다. 전부 오리지널이다. 2019년 7월 개관한 피아노박물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개인소장 박물관으로 김영락 대표가 직접 하나씩 모았다. 세계적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조각한 세계 단 하나뿐인 진귀한 피아노를 비롯해 베토벤, 쇼팽, 하이든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사랑했던 피아노의 특별한 스토리와 300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피아노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참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는 오래된 피아노를 조심스럽게 만지고 쓰다듬으면서 연주한다. 역사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피아노의 역사가 곧 서양음악사다. 그래서 서양음악사를 꿰고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누구보다 자신 있게 설명한다.

“서양음악사를 기본으로 깔고 피아노의 발전사를 설명하죠.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춘 근대 피아노까지 다 설명해요. 게다가 예전에는 피아노가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됐거든요. 각 피아노마다 사연이 있어요. 그런 것도 꼼꼼하게 설명하죠. 박물관에는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피아노도 있거든요. 거기에 관한 히스토리도 알려주고 연주도 해요. 대략 9~10대 정도 골라서 연주도 하고 얘기도 해요. 주로 클래식은 고전부터 낭만까지를 다루죠. 헨델, 바흐, 베토벤, 쇼팽, 슈만, 슈베르트, 엘가, 리스트,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당대 쟁쟁한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죠. 클래식만 하는 게 아니고 대중음악 작곡가의 곡도 연주해요. 엔니오 모리코네, 히사이시 조, 비틀즈, 퀸 등 현대곡도 연주해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BTS도 연주하고 어르신도 좋아하는 제주민요도 연주합니다.”

제주 피아노박물관에서 피아노 도슨트로 활약하고 있는 김미경 씨가 피아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미경 제공


피아노 박물관의 피아노는 소리가 조금씩 다 다르다. 제작 연도가 다르고 나무나 재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조금씩 다른 피아노 연주소리를 들으면 황홀해 진다. 사람으로 치면 열사람의 목소리가 모두 다르듯이 그 목소리로 노래를 듣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프시코드 소리를 들으면 금방이라도 오래된 유럽의 어느 도시 뒷골목을 서성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제가 모든 피아노를 다 좋아하지만 특히 ‘베히슈타인’ 피아노 같은 경우는 소리가 마치 바그너의 오페라를 듣는 것처럼 웅장하고 한편으로는 팝에도 잘 어울리는 소리를 갖고 있어요. 영국의 유명 보컬그룹 ‘퀸’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녹음할 때 이 베히슈타인 피아노를 사용했다고 해요. 그리고 ‘블뤼트너’는 베히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제작한 피아노입니다. 블뤼트너의 경우는 배재학당에 우리나라 최초로 그랜드피아노가 들어온 모델입니다. 1911년에 제작된 것이죠. 이걸로 많은 연주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백건우 선생님이 중학교 시절 이 배재학당의 블뤼트너로 수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문화재로 등록돼 있고 너무 오래돼 사용은 불가합니다. 그렇지만 저희 피아노 박물관에는 이 배재학당의 모델보다 한 해 앞서 1910년에 만들어진 블뤼트너 피아노가 있습니다. 지금도 소리가 아주 청명합니다. 제가 도슨트하면서 이 블뤼트너를 연주한답니다. 그리고 이 블뤼트너 피아노는 라흐마니노프가 굉장히 사랑했던 피아노이기도 합니다.”

제주 피아노박물관에서 피아노 도슨트로 활약하고 있는 김미경 씨가 연주를 하고 있다. ⓒ김미경 제공


피아노 박물관의 도슨트는 올 1월에 시작했다. 여러 번의 작업과 진행 검증과정을 거쳐 4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슨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와 낮 12시, 그리고 일요일 오후 2시와 3시 이렇게 네 차례 진행한다.

“로댕이 조각한 피아노가 있습니다. 세계에 딱 1대뿐인데 바로 이곳에 있죠. ‘앤티크 블라시우스 앤드 선즈 커스텀 카베드 그랜드피아노(Antique Blasius & Sons Custom Carved Grand Piano)’는 로댕이 1888년 직접 조각한 피아노 작품입니다. 이 피아노는 프랑스 유명 극작가 겸 화가인 유진 모랑이 아들의 탄생 기념으로 선물 할려고 로댕과 ‘블라시우스 앤 선즈 피아노사’에 의뢰해 제작한 피아노에요. 로댕은 이 피아노에 음악·드라마·연극·문학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정교한 조각작품으로 만들었어요. 특히 뚜껑에는 단테의 ‘신곡’ 중 ‘천국’을 표현하기 위해 100명의 천사가 조각되어 있답니다. 소리도 아주 맑아요. 이 피아노를 연주하면 마치 제가 로댕과 함께 조각하며 피아노 연주를 하는 착각에 빠져요.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죠”

전문 연주자가 꿈이었던 그가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 피아노 선생이 됐고 이제는 그걸 넘어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피아노 소리로 꿈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됐다. 그가 누르는 건반 하나하나 내는 소리 하나하나가 다 역사성이 묻어난다. 때로는 바흐를 불러내고, 어떤 피아노에서는 헨델을 불러내고, 또한 아름다운 피아노에서는 슈만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소리는 클래식음악의 타임머신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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