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6년의 우주로 날아간 ‘나비부인’...연출 맡은 정구호 ‘피격적 무대’ 예고

제국주의적 색채 없애고 남녀관계도 새롭게 묘사
​​​​​​​주인공 초초상 임세경 “이런 혁신적 오페라 처음”

박정옥 기자 승인 2023.09.20 15:09 | 최종 수정 2023.09.20 15:13 의견 0
2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오페라 ‘나비부인’ 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정림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정구호 연출, 파트릭 랑에 지휘자, 소프라노 임세경, 바리톤 이범주. ⓒ성남문화재단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유럽에서 활동하며 200회 가까이 초초상 역할을 맡았어요. 그동안 현대적으로 ‘나비부인’을 선보인 경우는 많았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오페라 연출은 처음 봅니다.”

2576년의 우주로 날아간 ‘나비부인’이 온다. 다음달 개막하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을 맡은 소프라노 임세경은 깜짝 놀랄만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성남문화재단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연출하는 ‘나비부인’을 오는 10월 12일(목)부터 15일(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다. 성남시 승격 50주년 기념 작품이자, 성남아트센터가 6년 만에 선보이는 제작 오페라다.

정구호 연출은 패션·공예·브랜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이제는 공연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연출부터 무대, 의상, 조명, 영상 디자인을 맡아 새로운 시각에서의 작품 해석과 미장센을 통합한 예술세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2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오페라 ‘나비부인’ 기자간담회에서 정구호 연출이 연출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남문화재단 제공


정 연출은 2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다양한 버전의 ‘나비부인’이 공연됐지만 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며 “남녀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나 제국주의적 색채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배경이 달라져도 아름다운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흐름은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고 밝혔다.

‘나비부인’은 19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그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으로 손꼽힌다. 존 루터 롱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가 쓴 대본에 푸치니가 곡을 붙인 전체 3막 구성의 오페라다.

일본의 나가사키 항구를 배경으로 미국 해군 장교 핑커톤과 집안이 몰락해 게이샤가 된 초초상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다. 돌아오지 않을 남편을 홀로 기다리다 최후를 맞는 초초상의 이야기를 푸치니 특유의 서정적이고 극적인 선율로 그려낸다.

이번 ‘나비부인’은 기존 작품에 담겨있던 포맷을 대폭 바꾼다. 19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제국주의적 시대상과 서구인들의 동양 여성에 대한 인식, 근대적인 남녀관계의 관점에서 벗어나, 현대의 변화된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한다. 정 연출은 먼저 작품의 배경을 먼 미래의 우주로 설정하고, 이야기의 구조부터 무대구성, 의상, 인물의 등장 방식 등에 SF적인 상상력을 가미해 연출한다.

작품은 서기 2576년, 행성 연합국을 대표하는 엠포리오 행성의 사령관 핑커톤이 평화 협상을 위해 파필리오 행성으로 파견되고, 파필리오의 공주 초초상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녀 주인공이 각 행성의 대표이자 동등한 협상자로 만남으로써 기존의 강대국과 약소국이라는 제국주의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캐릭터간의 계급 차이도 줄였다.

2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오페라 ‘나비부인’ 기자간담회에서 파트릭 랑에 지휘자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성남문화재단 제공


무대는 눈(目)과 우주 행성을 형상화한 흰색의 회전 스테이지로 구성되며, 장면에 따라 조명과 LED 스크린을 통해 공간을 이미지로 구현한다. 또한 합창단을 무대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비대면 영상으로 송출하는 한편, 초초상의 내면인 나비를 상징하는 무용수를 배치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 연출은 “초초상과 핑커톤이 결혼서약에 서명할 때 공상과학 영화처럼 디지털 센서를 활용하는 장면도 있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 인물의 감정선이지만, 작품 곳곳에서 독특하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오페라 특성상 대사나 가사까지 시대 배경에 맞춰 수정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노래는 원곡 그대로 이탈리아어로 부르되 한국어 자막만 수정해 극의 이해를 돕도록 하는 방법을 구상 중이다.

정 연출이 2017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한국 정서로 각색한 ‘동백꽃 아가씨’를 선보일 때도 사용한 연출 방법이다. 그는 “그동안 본 적 없었던 새로운 ‘나비부인’이지만 음악을 통한 인물의 감정선은 원작이 지닌 정서 그대로 관객이 따라가도록 할 것이다”라며 “‘나비부인’을 이렇게까지 해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와 동시에 작품의 본질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 사랑에 대한 영원불변의 메시지와 푸치니의 감동적인 음악과의 조화를 통해 기존 오페라와는 또 다른 매력의 ‘나비부인’이 탄생할 전망이다.

2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오페라 ‘나비부인’ 기자간담회에서 소프라노 임세경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성남문화재단 제공


지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파트릭 랑에가 맡는다. 파트릭 랑에는 2014년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지휘해 국내 관객들에게 인상 깊은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코리아쿱오케스트라, 노이오페라코러스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줄 전망이다.

랑에는 “‘나비부인’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라며 “정 연출과 협업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테일을 갖춘 오페라를 만들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파필리오 행성의 공주 초초상 역에는 소프라노 임세경과 박재은이 출연한다. 임세경은 2015년 한국인 리릭 소프라노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에서 초초상을 맡았으며 유럽 무대에서 ‘나비부인’을 200회 이상 공연한 국내 최고의 소프라노다. 또한 슈투트가르트 후고 볼프 아카데미 가곡 콩쿠르, 2015 ARD 콩쿠르 입상 후 2018년부터 2022-2023시즌까지 프라이부르크 오페라 극장 솔리스트로 활약했던 소프라노 박재은도 초초상 역으로 함께한다.

임세경은 “과거 현대적으로 연출한 오페라에 출연할 때는 연출가와 해석이 달라 싸우는 일도 많았다”며 “경험이 쌓이면서 마음도 점차 열리고 있다. 이번 작품은 백지처럼 열어놓고 연출과 함께 상의해보려 한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 이름을 남기는 프로덕션으로 만들고 싶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엠포리오 행성의 사령관 핑커톤 역은 베르디 국제콩쿠르, 마리아 카닐리아 국제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유럽 무대에서 먼저 주목받은 젊은 테너 이범주, 섬세한 음색과 미성이 매력적인 테너 허영훈이 맡는다. 영사 샤플레스 역에는 바리톤 우주호·공병우가, 스즈키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방신제가 출연한다. 이외에도 테너 노경범, 베이스 아이잭 킴, 바리톤 안환, 메조소프라노 강인선이 함께 한다.

성남문화재단 서정림 대표이사는 “성남아트센터가 6년 만에 내놓는 자체 제작 작품인 만큼, 대중적인 명작을 토대로 어떤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게 될지 기대해도 좋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창작 오페라 제작을 통해 제작 극장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전했다.

티켓은 성남아트센터와 인터파크티켓을 통해 온라인 또는 전화로 예매 가능하며 R석 12만원, S석 8만원, A석 5만원, B석 3만원이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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