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피아니스트 김경은이 현대 작곡가 세 명의 ‘소리풍경’을 담았다. 세 명의 걸작을 자기 스타일로 해석해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음반을 내놓았다. 각 작품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비전을 내세워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향적 풍경을 만들어냈다.
김경은은 최근 새 앨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발매했다. 스타인웨이 앤 선즈 레이블 데뷔 음반이다. 이름 기념해 오는 2월 2일(금) 오전 11시 스타인웨이 갤러리 서울에서 쇼케이스를 연다.
앨범 제목은 ‘소리’를 뜻하는 sound와 ‘풍경’을 뜻하는 scape를 합성했다. 자연물과 동식물, 그리고 인공적인 소리를 모두 포함해 청자를 둘러싼 모든 환경의 소리를 담아냈다.
앨범에는 저마다의 독특한 음악적 언어를 가진 필립 글래스, 존 코릴리아노, 브라이언 필드의 매력적인 작품을 나란히 배치했다. 김경은은 우리를 둘러싼 소리들, 특히 피아노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곡들을 앨범에 구현했다. 무엇보다 지구 온난화를 경계하며 작곡한 ‘고통 받는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열정’은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작곡가 브라이런 필드가 2019년 특별히 김경은에게 헌정해 눈길을 끈다.
필립 글래스(1937년생)의 ‘메타몰포시스 I’과 ‘메타몰포시스 II’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전형이다. 1988년 5악장으로 구성된 피아노 모음곡의 일부로 쓴 곡들로 글래스의 트레이드마크인 반복적인 패턴과 점진적인 화성의 변화를 보여준다.
‘메타몰포시스 I’은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는 부드럽고 매혹적인 멜로디로 시작돼 듣는 이들을 무아지경의 상태로 초대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연속적인 아르페지오와 단순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화성의 ‘메타몰포시스II’는 좀 더 차분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띤다. 글래스의 미니멀한 접근 방식은 듣는 사람이 반복과 점진적인 변화의 미묘한 뉘앙스에 몰입되도록 유도한다.
반면 존 코릴리아노(1938년생)는 ‘오스티나토에 의한 환상곡’과 ‘에튀드 판타지 1-5’를 통해 확연히 다른 여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1985년작 ‘오스티나토에 의한 환상곡’은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는 베이스 라인을 차용해온 감성 충만한 작품이다. 코릴리아노는 이 오스티나토를 현대적으로 비틀어 재해석함으로써 리듬과 화성의 변주를 통해 긴장감과 강렬함을 구축하는 곡을 작곡했다. 그 결과 시대를 초월한 모티브를 현대적 맥락에서 매혹적으로 탐구한 작품이 탄생했다.
‘에튀드 판타지 1-5’는 코릴리아노의 창의적인 재능을 더욱 잘 보여준다. 1979년부터 1985년 사이에 작곡된 이 에튀드는 다양한 분위기와 테크닉을 드러낸다. 첫 번째 에튀드의 장난기 있고 기발한 성격부터 세 번째 에튀드의 내성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성격까지, 코릴리아노는 전통적인 피아노 에튀드의 형식과 현대적 표현을 매끄럽게 조화시키는 자신의 능력을 선보인다. 각각의 에튀드는 독특한 내러티브와 연주자를 위한 테크닉적 도전을 제공하며, 피아노의 능력을 탐구하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음반의 마지막은 지구의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필드(1967년생)의 3악장 구성의 모음곡 ‘고통 받는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열정’은 음향적 풍경에 대한 더욱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 악장(‘불’)은 반복적으로 그리고 점점 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캘리포니아와 미국 서부 전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산불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불꽃’의 오스티나토로 시작, 깜빡거리며 빠르게 퍼져나가 점점 더 복잡하게 발전한다. 불은 요란하게 번지기 시작해 음역을 가로지르며 결국에는 통제력이 높아지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그렇게 불길은 스스로 타들어가다 죽는다.
두 번째 악장(‘빙하’)은 지구 극지방의 거대한 얼음을 묘사하는 아득하고도 우아한 악장이다. 이 느리고 사색적인 순간들이 빠르게 떨어지는 천둥과 같은 장면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중단되며 계속해서 점차 따뜻해지는 기온으로 빙하가 깎이는 모습을 묘사한다.
마지막 세 번째 악장(‘바람’)은 점점 더 강렬해져 허리케인과 태풍 같은 파괴력을 지니게 되는 바람으로 시작하는 기교적인 피날레 악장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산들바람으로 사라지며 곡을 마무리한다.
제6회 모차르트 국제 피아노 콩쿠르 수상자 김경은은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하며 현대적인 피아니스트’(인터내셔널 피아노) ‘따뜻하고 섬세하며 역동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는 피아니스트’(피아노 매거진)라는 찬사를 받는 연주자다.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해 2년 뒤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에 선발된 단 다섯 명의 학생 중 한 명으로 니콜라이 데미덴코를 사사했다. 그는 퍼셀 음악학교에서 이리나 자리츠카야를 사사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런던에 사는 동안 김경은은 매년 여름마다 당시 생존해있던 모리스 라벨의 마지막 제자인 블라도 페를뮈테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 인연으로 김경은은 라벨의 작품들에 매료됐고, 결국 6년에 걸친 프로젝트 ‘라벨 피아노 작품 전곡’을 2001년 시작하게 됐다. 이 시리즈에서 김경은은 라벨의 독주 및 듀오 작품은 물론 ‘피아노 협주곡 G장조’까지 그의 모든 작품을 연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2021년 6월 소니 클래시컬 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 ‘라벨’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앨범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라벨의 작품 ‘물의 희롱’ ‘거울’ ‘밤의 가스파르’가 수록됐다.
열여섯 살 때 김경은은 최연소 지원자 중 하나로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 제롬 로웬탈과 세이무어 립킨을 사사해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에는 맨해튼 음대에서 솔로몬 미코프스키를 사사, 최고 연주자 과정 수료와 음악 예술 박사 학위 취득 두 가지 모두를 이루어냈다. 그의 논문은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김경은의 데뷔 무대는 열 살 때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다. 이후 서울 내셔널 심포니, 유스 오케스트라, 스테이트 아카데믹 오케스트라,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 홍콩 필하모닉, 흐라데츠 크랄로베 필하모닉, 모라비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포르투갈 북부 오케스트라, 캄머 필하모니 다카포 오케스트라, 스페인 무르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토페카 심포니오케스트라, 알바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다수의 유명 오케스트라 단체들과 협연했다.
사우스뱅크센터, 버킹엄궁, 카네기홀의 웨일홀, 서울 예술의전당 등에서 독주회를 가졌으며 ‘라이징 스타’ 시리즈의 일환으로 금호홀에서도 연주했다. 1997년 김경은은 런던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어린 피해자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의 연주는 클래시컬 FM 라디오를 통해 방송됐다.
2010년 서울로 돌아온 이후 김경은은 가톨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동시에 연주 활동을 통해 현대 작품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다수의 현대 작품들을 한국 초연했다. 예술의전당에서 가진 ‘Afternoon in Paris’ ‘Sonata Journey’ ‘Musical Portraits’ ‘Fantasy and Reality’ 등의 리사이틀 무대를 통해 혁신적인 피아노 테크닉을 선보이기도 했다. 2022년 6월 소니 클래시컬 레이블에서 발매된 두 번째 음반 ‘드림(Dreams)’은 드뷔시, 사티, 라벨, 브람스, 쇼팽, 리스트의 짧은 인기 피아노 작품 14곡이 수록돼 있다.
현재 김경은은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로, 레인보우 브릿지 매니지먼트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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