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곡집 낸 장동인 “악보속 노래는 힘없어...열심히 부르고 들어야 파워 생겨”

이안삼 선생과 인연으로 시작된 가곡활동 10년 정리
독창 29곡-중창·합창 6곡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간

직접적으로 시를 묘사하는 주체로 피아노 역할 강조
“다음달 토크 콘서트 준비...마음 위로하는 음악 선사”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2.19 18:25 | 최종 수정 2024.02.20 18:04 의견 0
작곡가 장동인이 29곡의 독창곡과 6곡의 중창·합창곡 악보를 담은 한국가곡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를 출간하고 다음달 토크 콘서트도 연다. ⓒ장동인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한국 가곡계의 거장 이안삼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가곡 활동이 어느덧 10년이 됐어요. 생전에 많이 아껴주고 응원해 준 선생님께 직접 책을 보여주고 싶지만 꿈에서나 가능하겠지요. 하늘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기뻐해줄 겁니다.”

작곡가 장동인이 첫 노래곡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좋은땅출판사)를 출간했다. 강산이 한번 바뀌는 동안 틈틈이 쓴 29곡의 독창곡과 6곡의 중창·합창곡 악보를 담았다. 최근 당진 가곡콩쿠르에서 입상한 ‘잔설’의 피아노 트리오 악보도 부록으로 실었다. 모든 곡의 연주영상은 수록된 QR코드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장동인은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안삼 선생님 덕에 한국 가곡을 사랑하고 지켜나가는 귀한 분들을 많이 알게 됐다”며 “훌륭한 시에 곡을 붙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시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고영복·공한수·안효근·오안일·이강국·이석수·이해선·이현경·임승환·임하영·서영순·전하나·조재선·한상완 등 시인 14명이 창조한 언어들이 장동인의 선율과 만나 아름다운 노래가 됐다. 이안삼(1943~2020)과의 첫 만남이 궁금했다.

“국방부 군악대에서 군대 생활을 했어요. 마침 대대장님의 은사가 이안삼 선생님이었어요. 대대장님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죠. 휴가 때마다 선생님 작업실에 찾아가 손으로 스케치한 악보를 컴퓨터로 옮기는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처음엔 선생님의 연세 때문에 깍듯하게 대해야 할 것 같아 많이 긴장됐지만, 마치 친구처럼 격식없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순수하고 따뜻한 분이셨어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요. 군대 생활하면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묻길래 '짜장면이다'라고 말하자 곧바로 시켜주시기도 했어요. 꿀맛이었습니다.”

전역 후 이안삼이 주최하는 여러 음악회의 피아노 반주를 맡으며 오랫동안 교류했다. 여러 시들이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되는 지 관찰하는 좋은 계기가 됐고 가곡을 사랑하는 시인들과 중창·합창단 활동을 하며 인연을 쌓아 나갔다.

노래곡집에 실린 시들은 모두 가슴을 울린다. 장동인이 거기에 음표를 붙이자 순간의 묘사와 깊은 감정이 펄떡펄떡 뛰었다. 정체된 한국 가곡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다.

“저는 시를 마음속에 품고 잠에 들어요. 시와 주인공이 되어 꿈속을 헤매는 동안 귓가에 화음과 선율이 아련히 들려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어젯밤 꿈속에 흘러나온 음악을 되새기며 음표 하나하나를 옮겨 적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떠온 샘물, 즉 영감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고 흘러내리죠. 더듬더듬 옮겨 적은 짧은 악구의 앞과 뒤에 살을 덧붙여 하나의 곡을 완성합니다. 이처럼 저의 음악적 영감은 꿈에서부터 찾아옵니다. 그런 이유로 꿈속을 헤엄치듯 여러 조성을 이리저리 넘나드는 것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둘러 꿈 이야기로 포장했지만 ‘창작의 고통’이 엿보이는 멘트다. 귀에 쏙쏙 박히는 음을 찾아내기 위해 꿈속으로까지 시를 가지고 들어가는 마음이 어떻겠는가.

서울대 음대 작곡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낯선 땅에서 겪었던 슬럼프도 고백했다.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는 언어장벽, 학업에 대한 불안감, 향수병으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 등 복합적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결국 최면 치료사를 찾아가 그동안 꾹꾹 억눌렀던 이야기를 꺼내며 한참을 울다가 웃었다”며 “그 여성 치료사가 말해준 꿈에 대한 설명 덕분에 험난하게 느껴졌던 유학생활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 몸에는 자가 치유 기능이 있는데 피부에 상처가 나면 딱지가 앉으면서 아물 듯이 우리가 낮 동안 겪은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는 잠을 자는 동안 꿈을 헤매는 과정을 겪으면서 치유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의 말이 마법처럼 힘이 됐어요.”

작곡가 장동인이 29곡의 독창곡과 6곡의 중창·합창곡 악보를 담은 한국가곡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를 출간하고 다음달 토크 콘서트도 연다. ⓒ장동인 제공


정말 그랬다. 꿈을 꾸는 순간만큼은 한없이 자유롭고 포근했다. 첫 작품집 이름을 ‘꿈에서 데려온 노래’로 지은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꿈에서 데려온 저의 노래들이 정신적 피로에 지친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고 감쌀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작품집 수록곡 가운데 서울 그랜드 합창단 창작곡 부문에서 수상한 다이어트에 관한 재치 있는 노래 ‘먹고 또 먹고’, 그의 국악 크로스오버 디지털 싱글 앨범 ‘연자’에 수록된 ‘님의 말슴’과 ‘갈까부다’, 뮤직비디오와 함께 음원으로 발매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서영순 작시의 ‘아름다운 이 밤’, 이현경 작시의 ‘속삭임이 날아갔네’, 공한수 작시의 ‘봄이 왔네’, 당진에서 열린 한국가곡 대축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조재선 작시의 ‘잔설’ 등이 관심을 끈다.

장동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피아노의 역할이다. 이는 그가 피아니스트로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가 만든 노래의 피아노 파트는 성악 파트 못지않게 힘이 있고 화려하며 극적이다.

예를 들어 ‘속삭임이 날아갔네’의 전주에서는 끊임없이 교차하는 왼손과 오른손의 싱커페이션 음형이 귀를 사로잡는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감정의 흐름같이 미묘한 화성 진행을 담아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려냈다. 그리고 간주에서는 위아래로 흐르는 급격한 분산화음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겪게 되는 사랑의 굴곡을 표현해냈다. 이처럼 그의 성악 작품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노래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 혹은 도구라는 반주적 개념을 뛰어넘어 직접적으로 시를 묘사하는 주체로서 끌어올려졌다.

신작 가곡집 출간을 기념해 오는 3월 23일(토) 오후 6시 토크 콘서트를 준비한다.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아이러브아트센터(Eye Love Art Center)에서 열린다. 작품 연주와 더불어 청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나 음악 세계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장동인이 직접 피아노를 치고 플루트 윤승호, 바이올린 원훈기, 첼로 윤석우도 힘을 합친다. 바리톤 김우주가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노래도 선보인다.

정상의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소프라노 임청화는 ‘머리산 아리랑’(공한수 시), 소프라노 최예슬은 ‘서귀포 아리랑’(오안일 시)과 ‘잔설’(조재선 시), 소프라노 라하연은 ‘봄이 왔네’(공한수 시)와 ‘속삭임이 날아갔네’(이현경 시)를 노래한다.

테너 강신주는 ‘본향’(한상완 시)과 ‘가슴에 담은 별’(임하영 시), 테너 타피에브 누르카낫은 ‘수선화’(이석수 시), 바리톤 김우주는 ‘깨벗고’(이해선 시)와 ‘그 곳에 사랑이 있니’(이해선 시), 어린이 성악가 정승민은 ‘초록향기’(장동인·김만희·양아인 시)를 부른다.

최예슬과 김우주는 ‘결혼을 축하합니다!’(이해선 시), 라하영과 강신주는 ‘아름다운 이 밤’(서영순 시)을 듀엣송으로 선사한다. 시인 전하나의 시 낭송과 윤석우·장동인의 ‘Happy Birthday to Me...’ 연주곡도 준비했다.

장동인은 “작곡가로서 작품을 선보이는 순간은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하는 듯한 설렘과 떨림이 함께하는 시간이다”라며 “저의 작품이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새로운 감동과 울림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악보만으로 존재하는 음악은 아무런 힘이 없다. 열심히 불러주고 들어줘야 강력한 파워가 생긴다”며 한국 가곡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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