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감성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임긍수 곡/테너 강요셉·소프라노 강혜정)

손영미 객원기자 승인 2024.02.19 21:46 | 최종 수정 2024.02.19 21:54 의견 0
‘강 건너 봄이 오듯’은 송길자 시인의 사설시조 ‘소식’을 기초로 노랫말을 만들었다. ⓒ손영미 제공


[클래식비즈=손영미 객원기자(극작가·시인·칼럼니스트)] “봄이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이란 봄의 성장이며, 가을이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이란 봄의 수장이다.”(정도전)

겨울을 봄의 수장(收藏)이라고 말했던 정도전의 패기가 굳은 의지와 강한 기개가 되었듯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봄이 그렇게 기다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곁에 벌써 봄이 올 준비를 서두르듯, 2월에는 우리 귀에 친숙한 임긍수 작곡가의 ‘강 건너 봄이 오듯’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이 곡은 대중들에게 유명한 대표적인 봄의 노래지만 겨울은 물론 사계절 내내 많이 불립니다. 봄을 기다리는 내용을 담은 이 노래는 매우 화사하면서도 봄의 설렘을 줍니다.

‘강 건너 봄이 오듯’은 1992년 초연된 이후 소프라노 조수미, 강혜정 등이 부르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사를 보면 다소 여성적인 분위기가 강해 소프라노들이 많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겨울부터 봄까지 각종 음악회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가곡이 됐습니다. 서울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지정곡이 되기도 했고 자동차 CF 및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해마다 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강 건너 봄이 오듯’ 노래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노래는 처음 송길자 시인의 ‘소식’이라는 제목의 사설시조에서 왔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가 1982년 등단한 송길자 시인은 1992년 어느 날 박재삼 시인(1933~1997)으로부터 KBS에서 가곡으로 만들 시를 부탁받았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쓴 사설시조 ‘소식’을 노래 가사로 고쳐서 보냈습니다. 원제목 시 ‘소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소식>

앞강에 살얼음이 풀릴 때쯤이면
나뭇짐을 실은 배가 새벽안개 저어왔네.
삭정이 청솔가지 굴참나무 가랑잎 덤불
한 줄로 부려놓은 지겟목 쇠바릿대 위엔,
연분홍 진달래도 한 아름씩 꽂고 와서,
강 건너 봄 그 우련한 빛을 이쪽 강마을에 풀어 놓더니
오늘은 저문 강을 뗏목으로 저어와,
내 마음 어둔 골에 봄빛을 풀어놓네.
화사한 꽃내음을 풀어놓네.

-송길자 시집 ‘달팽이의 노래’(1994) 중

송길자 시인은 밤새워 이 시조를 기초로 노랫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시가 노래가사로 바뀌면서 제목도 ‘소식’에서 ‘강 건너 봄이 오듯’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 노래는 단순한 ‘소식’에서 유연한 봄으로 느낌이 더 구체화된 감성적인 노래로 발전됐습니다. 임긍수 작곡가는 최고의 선율을 찾아내는 귀재답게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비로소 완성했습니다.

평소 시 읽기를 좋아하던 작곡가는 새로운 시를 발견할 때마다 심장이 뛰는데 그날도 설렘으로 밤잠을 못 이뤘다고 합니다.

노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봄 길 따라 그대가 오면’ 참 행복할 것 같은 설렘과 희망이 노래 안에서 밝고 경쾌하게 흐릅니다.

겨울을 견디면 언젠가 언 강이 풀리고 기다리는 봄이 오면 새로운 기운이 날갯짓하는 희망을 담은 노래입니다. 늘 봄은 오지만 새롭게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오기에, 익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희망을 노래합니다.

또한 우리 가곡이 주는 격조와 경쾌한 봄으로 가는 그의 인생이 아름답고 찬란해 보입니다. 아름다운 노랫말이 주는 선사는 또 있습니다. ‘저문 강을 뗏목으로 저어와 내 마음 어둔 골에 봄빛을 풀어 놓네’라는 표현들은 실제로 강가에 봄빛을 풀어 놓듯 사랑스러운 설렘을 노래로 담아냈습니다. 그 노래는 강가를 옥색 빛으로 물들이며 우리들 가슴에 봄을 불러옵니다.

특히 우리 예술가곡이 주는 아련한 그리움과 아름다움은 또 있습니다. 아무리 세찬 겨울바람도 봄이 오면 언강을 녹이듯 그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찬 노래로 2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대중 속에 파고드는 노래가 곧 우리 가곡이 아닐까 합니다.

오래 묵은 집 간장처럼 깊은 맛을 우려내는 우리 예술가곡은 우리들의 삶의 정서를 온전히 닮아 냈습니다.

언제나 꿈같이 맑은 소리, 소프라노 강혜정의 연주입니다. 원시에서 각색된 노래 시로 선율이 입혀진 차이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강 건너 봄이 오듯>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거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 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 누나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거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거나
새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내 마음 어둔 골에 나의 봄 풀어놓아
화사한 그리움 말없이 그리움 말없이
말없이 흐르는 구나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거나
새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물 흐르듯 나부끼네

2월은 봄을 재촉하는 시즌으로 회색빛 하늘 속으로 굴뚝 연기를 내뿜는 도심 한복판에서는 앙상한 겨울나무만이 가는 겨울을 배웅하고 서 있습니다. 계절은 또 입춘이 다가오고 찬바람이 조금은 순해져 가는데도 골목 어귀 놀이터에는 그네만 혼자 바람결에 노닙니다. 새봄이 오는 들녘 다시 아이들의 해맑은 읏음 소리가 들려오는 날들을 그려봅니다. 돌아오는 3월에는 그 아이들의 동심과 사랑을 담아 더 좋은 곡으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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