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감성가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마노스 엘레프테리우 시/미키스 테오도라키스 곡/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손영미 객원기자 승인 2023.12.09 08:18 | 최종 수정 2023.12.09 08:27 의견 0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작곡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이 노래를 불러 히트한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손영미 제공


[클래식비즈 손영미 객원기자(극작가·시인·칼럼니스트)]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지난 한해를 뒤돌아보며 이번 달에는 특별히 분위기 넘치는 그리스 노래 한 곡을 선곡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날,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그리스 여행을 계획해도 좋을듯합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12월은 한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달로 우리에게 더 특별합니다. 그 특별한 시간에 함께 불러도 운치 넘치는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eno Fevgi Stis Okto)’입니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이 곡은 그리스 음악의 거장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했고, 그리스의 메조소포라노 아그네스 발차가 불러서 더 유명해진 곡입니다. 이후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불러 화재제 됐던 곡이기도 합니다. 노래의 가사는 그리스 시인이자 작사가인 마노스 엘레프테리우가 한 동료로부터 카테리니에서 있었던 일화를 듣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비장미 넘치면서도 애절한 선율이 갖는 고혹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이 노래는, 나치 독일의 그리스 침공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지원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중해 연안 도시인 카테리니로 가서 살기로 약속했으 남자는 결국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스는 15세기 중반 오스만투르크에 침략 당했고 1922년에는 튀르키예(옛 터키)로부터 다시 침략을 당했습니다. 1930년 비로소 독립을 했으나, 2차 대전에는 독일 나치로부터 또다시 침략을 당했습니다. 이후 영국과 미국의 내정간섭을 받았고 1967년부터 7년간 파시스트 군부의 억압통치 시대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잦은 침략을 받은 그리스 국민들은 늘 조국 그리스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 했습니다.

이 노래를 작곡한 테오도라키스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64년 의회에 진출했으나 1967년 쿠데타로 파스시트 정권이 들어서자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 마침내 풀려나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외국으로 망명해 노래를 통해 조국 그리스를 위해 활동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음악의 의미는 바로 폭탄이다.” 그의 비장한 선언처럼, 그는 자유를 갈망하며 독재 정권에 맞서다가 죽은 동료들을 애도하기 위해 이 노래를 헌정했습니다.

그는 또 중산층과 지식인들이 외면하던 그리스 민족음악의 정수인 민요 렘베티카 (Rembetica)를 많이 작곡했습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도 렘베티카며 그리스 민속 악기 부주키(Bouzouki)의 선율이 애절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감미롭고 낭만적인 선율을 듣고 있자니, 눈 내리는 들판을 달리는 그리스행 기차여행이 사뭇 그리워집니다. 그럼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감미로운 기타와 부주키 선율 속에서 불평보다는 격려와 응원으로 훈훈한 연말 보내시고 새로운 해 2024년을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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