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단원 없이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운영...‘플렉서블’ 서울시발레단 창단

국내 첫 컨템퍼러리 공공발레단 4월 사전무대
8월에는 ‘한여름 밤의 꿈’으로 정식 창단공연

‘시즌 무용수’ 등 그때그때 투입해 유연 대처
고전 대신에 동시대성·현대성 담은 작품 승부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2.21 11:18 | 최종 수정 2024.02.21 12:48 의견 0
국내 첫 컨템퍼러리 공공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의 첫 시즌 무용수로 선발된 박효선, 남윤승, 원진호, 김소혜, 김희현(왼쪽부터) 무용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단장과 단원이 없이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컨템퍼러리 발레단이 출범한다. 무대에 올릴 작품이 선정되면 시즌 무용수, 프로젝트 무용수, 객원 무용수 등 다양하고 유연한 형태의 무용수로 팀을 구성해 공연한다. 요즘 유행하는 ‘플렉서블(flexible)’을 내세운 셈이다. 그 주인공은 48년 만에 탄생한 공공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이다.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은 20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종합연습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늘의 한국 발레’를 표방하는 서울시발레단의 창단을 알렸다.

서울시발레단은 국립발레단(1962)과 광주시립발레단(1976)에 이어 48년 만에 론칭한 국내 세 번째 공공발레단이며 또한 국내 최초의 컨템퍼러리 공공 발레단이다.

컨템퍼러리(현대·동시대) 발레단은 ‘백조의 호수’ ‘지젤’ ‘호두까기인형’ 등 클래식 작품을 주로 공연하는 일반적인 클래식 발레단과 달리 오늘날 시대성을 담은 안무가의 창작 작품을 중심으로 선보인다. 서울시발레단은 앞으로 시대성과 함께 한국의 고유성도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발레단 창단 기자간담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안무가, 무용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도 발레단 창단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는 창단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시장에 취임하면서 몇 가지 꿈이 있었다. 오늘은 그 꿈 중의 하나가 이루어지는 즐거운 날이다”라며 “올해는 ‘문화예술 도시 서울’의 새 지평을 여는 한 해가 될 것이다”라고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많은 한국인이 최고·최초·최연소 타이틀을 휩쓸며 세계 유수 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발레의 저변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시민들도 발레를 좋아하는데 공연 횟수는 턱없이 적고 티켓값은 비쌌다. 앞으로 서울시발레단이 단비가 돼 발레 갈증을 해소해주겠다”고 말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클래식 발레를 하는데, 저희까지 클래식 발레를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며 “세계적 발레 흐름도 클래식 발레와 현대 발레가 5대 5가 되는 상황이다”라고 현대 발레단을 창단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어 “지난 100여년간 만들어진 검증된 레퍼토리들이 많이 쌓여있는데 그중 일부만 관객들이 경험했다”며 “컨템퍼러리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발레 스펙트럼을 넓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발레단은 독창적인 자체 레퍼토리를 단시간에 개발하고, 해외 유명 안무가들의 라이선스 공연과 신작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작품의 창작 및 제작 인재 육성에도 힘쓴다.

20일 창단한 서울시발레단의 시즌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효선, 남윤승, 원진호, 안성수, 유회웅, 이루다, 김소혜, 김희현. ⓒ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발레단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단장과 단원 없이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단장과 정년 보장 단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존 공공예술단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공연별 맞춤형 프로덕션을 꾸려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확보한다는 취지다.

시즌마다 선발된 시즌 무용수와 프로젝트 무용수 등이 작품에 참여하게 되며,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200여명의 한국인 무용수를 객원 무용수로 무대에 세운다.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어벤저스 팀’을 구성하는 형태다. 모험적인 시도다.

창단 첫해인 2024시즌은 시즌 무용수 5명을 뽑았다. 김소혜(34) 전 뉴욕 페리댄스 컨템퍼러리 무용단 정단원, 김희현(37) 전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남윤승(22) 경희대 무용학부 발레학과 학생, 박효선(35) 전 국립·유니버설·워싱턴발레단원, 원진호(33) 전 올란도 발레단원 등이다. 이들은 2024시즌 모든 공연 무대에 오른다.

안호상 사장은 “시즌 무용수 지원자 129명 중 1차 심사에서 52명이 통과했고 마지막에 5명을 선발했다”며 “오디션에 직접 참여한 안무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맞는 무용수를 선택했고, 가장 많은 작품에 픽업된 무용수를 선발했다”고 말했다.

시즌 무용수 선발은 9월에 추가로 진행될 예정이며, 단일 공연에 출연하는 프로젝트 무용수도 17명을 뽑았다.

20일 창단한 서울시발레단의 시즌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원진호 무용수는 “무용계 흐름을 봤을 때 발레와 다른 무언가를 콜라보한 춤들이 많이 유행하고 있다”며 “관객이 매년 ‘호두까기인형’의 캐스팅만 달리해 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고 오디션 지원 동기를 밝혔다.

박효선 무용수도 “국내의 많은 컨템퍼러리 무용수가 해외를 찾게 되는 이유는 컨템퍼러리 발레단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서울시발레단 창단으로 해외 발레단의 시류에 발맞춰 나가는듯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단체를 이끌어가는 예술감독의 부재와 작품마다 단원이 바뀌는 만큼 인재 육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안호상 사장은 “창단 시점에 맞춰 예술감독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웠다”면서 “예술감독 체제를 궁극적으로 지향하지만 1∼2년 국내 관객들의 반응을 봐가면서 선택하는 게 어떤가 싶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는 시즌 단원제에 대해서는 “양면성이 있다. 풀어나가야 할 법적이거나 관행적인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시즌 단원제는 많은 무용수한테 기회가 갈 수 있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우리나라 발레 졸업 인구 중 신규 단원을 충원하는 인원은 극히 제한적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재 양성은 무대에 서지 않고는 의미가 없다. 더 다양한 작품을 준비해서 무용수들이 참여할 기회를 마련해 국내 무용계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발레단은 오는 4월에 이루다, 안성수, 유회웅(왼쪽부터)이 안무를 맡은 ‘봄의 제전’을 창단 사전공연으로 무대에 올린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발레단은 올해 창단 사전공연(4월 26~28일)으로 ‘봄의 제전’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인다.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안성수 한예종 교수의 ‘로즈(Rose)’, 전 국립발레단 단원 유회웅 리버티홀·리버티발레 대표의 ‘노 모어(No More)’, 블랙토 컨템퍼러리 발레 컴퍼니 안무가 이루다의 ‘볼레로 24’ 등 세 작품을 한 번에 무대에 올리는 ‘트리플 빌’이다.

8월 23~25일에는 창단 공연으로 ‘한여름 밤의 꿈’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초연한다. 컨템퍼러리 발레 무용수이자 안무가, 교육자로 30여년 활동해온 주재만 미 펜실베이니아 포인트파크대 교수가 연출과 안무를 맡는다.

주 교수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예상치 못한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복잡한 인간관계, 사랑하고 갈망하고 행복하고 슬퍼하는 순간순간이 가진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깊은 상상력과 복잡하면서도 깊은 인간미가 표현되는 아름다운 작품을 저만의 컨템퍼러리 스타일과 비전, 상상력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발레단은 10월에도 한 차례 더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서울시발레단 창단은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독립 재단법인 설립이 목표지만 창단 초기에는 공연 제작 역량을 갖춘 세종문화회관이 운영을 맡아 기반을 닦을 예정이다.

연습실을 비롯한 제반 시설과 사무 공간은 오는 9월께부터 서울 용산구 노들섬 다목적홀 ‘숲’에 들어서며, 그전까지는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종합연습실을 사용한다.

올해 서울시발레단에 배정된 예산은 제작과 인건비를 포함해 26억원이다. 이는 세종문화회관 산하의 예술단체인 서울시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등의 예산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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