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김문희·송은주 등 5명이 안내한 424년전으로의 바로크 음악여행

소프라노 김문희·하프시코드 송은주 듀오리사이틀
​​​​​​​2부에선 상승·하강 묘미 돋보인 탁현욱 작품 연주

노유경 객원기자 승인 2024.03.26 14:08 의견 0
송은주의 하프시코드 반주에 맞춰 소프라노 김문희가 노래하고 있다. ⓒ노유경 제공


[클래식비즈 노유경 객원기자(음악학 박사)]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두 악기를 생뚱맞게 우화 ‘서울쥐 시골쥐’에 비교하려 한다. 피아노가 ‘서울쥐’면 하프시코드는 ‘시골쥐’스럽다고 생각한다. 깍쟁이 같지 않고 순둥순둥한 사운드. 포르테(f)로 두들겨도 겨우 메조 피아노(mp)로 대답하니 포르티시시모(fff)는 언감생심이다.

하프시코드는 사실 피아노처럼 해머로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뾰족한 플렉트럼(작은 플라스틱인데 바로크 시대에는 새의 깃털 등을 재료로 삼았다고 한다)이 줄을 뜯기 때문에 타건악기가 아니고 발현악기다. 그러므로 피아노의 조상이기보다는 거문고나 가야금의 동료인 셈이다.

1600년과 1750년 사이에 유럽에서 연주됐던 악기들은 찌그러진 자태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바로크 악기라고 불린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하프시코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돋보이는 피아노곡도 작곡했으니 두 악기에게 본의 아니게 경쟁을 붙인 작곡가이기도 하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편안한 날이 없던 조선시대와 유럽 전반의 바로크 시대는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2022년처럼 동시대다. 17세기, 이 시기에 조선은 양금신보 악보를 보고 거문고를 발현했다면, 산체스나 보케리니는 유럽에서 하프시코드를 발현시켰다.

연세대학교 독수리 동상 앞에 놓인 금호아트홀 안에서 424년 왕복 시간 여행을 준비한 5명의 크루(김문희, 송은주, 박지형, 김주영, 탁현욱)는 ‘소프라노 김문희와 하프시코드 송은주 듀오 리사이틀’이라는 명칭으로 공연을 올렸다. 지난 2월 21일에 팬들을 만났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해설은 청중을 편안하게 타임캡슐로 인도했다. 2인으로 구성된 발현악기 하프시코드(송은주)와 기타(박지형)는 가로로 혹은 세로로 음을 통주하기 시작했다.

하프시코드 송은주와 기타 박지형이 연주하고 있다. ⓒ노유경 제공


1부의 시작은 1600년부터 시작된 바로크를 여행했다. 1600년에 태어난 이탈리아 작곡가 겸 가수였던 조반니 펠리체 산체스의 곡 ‘횡령하는 자(Usurpator tiranno)’는 여인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의 고백이다. 소프라노 김문희, 하프시코드 송은주, 그리고 기타리스트 박지형의 고백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루이지 보케리니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은 초기 고전 시대의 첼리스트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했고, 실제 그의 음악은 무척 스페인풍이다. 다시 말해 실제로 기타를 작곡 안에 많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기타에서 표출되는 음색을 종종 다른 악기로부터 꺼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송은주와 박지형이 연주한 보케리니의 ‘판당고(Fandango)’는 3박자(6박자)로 축제를 자아내며 유럽 전통을 드러내 보여줬다.

2부는 작곡가 탁현욱의 작품 발표로 이루어졌다. 김문희, 송은주, 박지형은 탁현욱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과거로 여행했던 타임머신을 현재로 이동시켰다. 작년 6월에 작곡 발표회를 가졌던 탁현욱은 이미 그가 고음악과 고악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음악으로 표출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공부했던 탁현욱은 유럽의 음악사와 전통에 특히 관심이 많다. 모음곡 같기도 하고 에튀드 같기도 한 첫 곡 ‘하프시코드를 위한 영감(Impression for Harpsichord)’은 총 3악장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작품 발표에 리뷰했던 글을 다시 인용한다.

“1악장은 점과 선의 사운드 세계를 표현하려는 듯 점으로 시작하여 선으로 수평선과 수직선을 활동적으로 만들고, 2악장은 옥타브 음계의 하강과 상승의 반복과 에튀드와 같은 장르가 표현되었으며, 3악장에서는 하논의 연습곡 형태를 가진 왼손의 화음과 오른손의 멜로디는 회화적인 표현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프시코드 송은주와 기타 박지형이 연주하고 있다. ⓒ노유경 제공


루이 14세의 오르가니스트였던 프랑수아 쿠프랭은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반에 관한 작곡을 주로 했고, 그 당신 유행했던 이탈리아 양식을 따르지 않고 프랑스적으로 곡을 해석하고 몰입했다.

탁현욱은 쿠프랭의 곡 ‘신비한 벽(Les Barricades mystérieuses)’을 편곡했다. 프랑스 바로크 시대 작곡가의 작법을 다치지 않게 정서적 표현을 섬세한 음영으로 노출시켰다. 기타의 융합으로 말미암아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춤을 추는 장면을 벗어나 건강미와 활달한 카르멘과 같은 미녀의 동작으로 쿠프랭 곡이 변신시켰다.

이번 음악회에 탁현욱 작품이 초연으로 두 곡이 연주됐는데 마지막으로 연주된 ‘소프라노, 하프시코드, 그리고 기타를 위한 바로크 환상곡(Baroque Fantasy for Soprano, Harpsichord and Guitar)’을 먼저 설명한다.

피아노와 기타로 시작한 1악장 Tambourin에서 왼손으로 연타를 치는 하프시코드와 오른손의 저음과 고음의 넘나들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려는 꿈틀거림을 연상했다. ‘돌고 돈다’라는 키워드로 해설자 김주영은 “젊은 작곡가 탁현욱이 바라본 바로크를 눈여겨보라고” 청취 레시피를 꺼냈다.

3악장 Aria와 4악장 Fantasia는 성악이 도입되어 상승과 하강의 묘미, 공기층에 포화된 서로 다른 색을 음으로 꺼내 배열하듯이 직선과 곡선을 그렸는데 아르페지오와 순차적인 상행 하행의 곡선들이 점으로 흩어지고 모아졌다. 판타지아라는 부드러운 제목 속에 일침을 넣어 무언가를 명징하게 호소했다.

1부 마지막으로 헨델의 오페라 중의 두 곡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와 ‘다시 돌아와 나를 바라봐주세요(Tornami a vagheggiar)’, 그리고 2부에 초연됐던 탁현욱의 가곡 두 편(‘서시’ ‘달밤’)은 언어를 전달하는 성악곡인데 이미 유명세를 달리는 헨델의 두 곡과 윤동주의 시는 오묘하게도 결이 유사했다.

얼마 전 윤동주 문학관에서 개최된 음악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윤동주의 시에 곡을 만들어 발표한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잔치에를 지켜보았다. 16세기 바로크 시대 유럽에서는 언어의 기원에 관한 학설이 유행했는데, 이것과 관련해 계몽주의 낭만주의자 장 자크 루소는 목소리와 소리 그리고 언어와 음악의 밀접한 연관을 제시한다.

인간의 최초의 언어는 일종의 노래였다고 말하는 가설과 정설들이, 진실이 뭐가 되었건 성악이 동반된 음악회에서 느끼는 그 무엇은 인간의 ‘정념’이다. 바로크를 관통했던 루소의 가설들이 성악과 동반된 언어와 반주를 고양했다. 인간의 고뇌를 자연에 비추어 시·공간을 압축시킨 윤동주의 ‘서시’와 ‘달밤’은 서양 고악기와 융합해 새로운 여운을 남겼다.

/classicbiz@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