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은유 가득 담긴 4막 대사에 눈물”...인간 욕망·고독 극적으로 그린 연극 ‘욘’

서울시극단 3월29일부터 4월 21일까지 M씨어터 공연
고선웅 연출 “현대적 느낌에 맞게 과감하게 쳐냈다”
​​​​​​​김미혜 교수 “엄청난 작품...관객 눈시울 붉어질 것”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4.01 10:51 | 최종 수정 2024.04.01 12:00 의견 0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배우 이남희, 정아미, 이주영, 이승우가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4막에서 아들 엘하르트가 떠난 후 욘이 구불구불한 길을 끝도 없이 오르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을 읽는데 너무 슬프더라고요.”(고선웅 연출)

“130년 전 탄생했지만 지금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담겨 있어요. 굉장히 시의성 있는 작품이죠. 특히 4막의 대사는 우리 인생을 나타내는 은유들이 많아 항상 눈물이 나요.”(김미혜 교수)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이 2024시즌 첫 작품으로 3월 29일부터 4월 21일까지 M씨어터에서 인간의 절대 욕망과 고독을 주제로 한 연극 ‘욘(John)’을 선보인다. 근대극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헨리크 입센이 만년에 쓴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이 원작이다.

입센은 노르웨이 태생으로 ‘사회의 기둥’ ‘인형의 집’ 등 총 23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당대의 현실을 날이 선 시각으로 바라보며 전통적인 관념의 해체에 도전했던 그의 작품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대표작 ‘인형의 집’은 근대 여성해방론의 교본처럼 여겨지며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세계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고선웅의 각색·연출로 선보이는 ‘욘’은 젊은 시절에 누렸던 부와 명예를 한 순간에 잃고 병든 늑대처럼 8년간 칩거해 온 남자 욘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충돌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고독을 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권력과 구원, 사랑에 대한 인물들의 상반된 욕망이 무대 위에 뒤섞이며 ‘인간 영혼의 중요성’ ‘자유의지’ ‘인간 삶의 숭고한 목적과 의미’ 등 입센이 그의 드라마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한 주제들이 드러난다.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고선웅 연출(왼쪽)과 김미혜 교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고선웅 연출은 개막에 앞서 지난 29일 열린 미디어 프레스콜에서 “희곡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머저 입을 뗐다. 그는 “연출하는 과정에서 겁이 많이 났는데 김미혜 교수께서 많은 부분을 열어주셨다”며 “교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각색을 하며 현대 관객들에 맞춰 많은 부분을 쳐내면서 잘랐다. 어제(28일) 한 번 더 원작을 읽어봤는데 아쉬운 부분은 별로 없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고 연출은 “봄 시즌에 서울시극단의 첫 작품으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욘’을 선택하는데 부담이 있었다”라며 “하지만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공연장 밖을 나갔을 때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쨍한 느낌을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입센 희곡 전집을 번역한 공로로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을 받은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가 번역가이자 드라마투르기(문학·예술적 조언하는 연극 전문가)로 참여해 원작의 핵심을 살리며 현대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는 입센 작품을 완벽하게 번역하기 위해 노르웨이어를 배웠고, 15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입센의 희곡 전집을 완성했다.

김 교수는 “입센은 자신의 작품을 순서대로 읽기를 원했기 때문에 저 역시 그의 작품을 순서대로 번역했다”며 “‘욘’의 희곡집이 나온 것이 2022년인데, 고선웅 연출이 연락해와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해 고마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센은 리얼리즘의 대가인 만큼 굉장히 길고 촘촘하게 작품을 썼다”며 “오늘날 이 시대 한국 관객들은 너무 긴 작품을 힘들어하기도 하고, 모든 정보를 다 주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도 해서, 적절한 시간 안에 공연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비는 부분은 고 연출이 각색해 넣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입센이 작품 제목을 ‘욘’으로 단 이야기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입센은 주인공이 엄청난 캐릭터일 때만 작품의 제목을 사람 이름으로 했다. 욘도 그렇다”라며 “이 작품을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체호프와 입센 작품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체호프는 옛날 걸 회상하기 좋아하는 한국인 심상에 잘 맞고, 입센은 머리 아픈 사람이다. 관객에 질문을 던지고 ‘대답은 너희가 해’ 하는 식이다”라며 “체호프는 지주 계급의 노스탤지어를 그렸고, 입센은 냉철한 눈으로 당대를 비판했다. 그렇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아니었다. 그런 비판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꾼 사상가였다”고 설명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욘’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욘 역할을 맡은 배우 이남희는 “연출에게 ‘불의 전차 같은 연기를 부탁한다’는 디렉션을 받았다”며 “제가 느낀 감정들을 투영하자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다. 관객들이 인간의 존엄, 허무함, 사랑, 눈물, 배신 등 다양한 요소를 느끼면 좋겠다”고 했다.

엘라 역의 정아미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허와 외로움 있다.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희비극으로 굉장히 좋은 작품이다”고 소개했다. 귀닐 역의 이주영은 “귀닐은 현재에 살지만 과거에 있던 여자고, 작품이 진행되며 현실을 찾고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귀닐을 맡게 돼 행복하다”고 뿌듯해했다.

엘하르트 역의 이승우는 “엘하르트가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떠나는 것을 보고 관객들이 긍정 에너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화니 빌톤 부인 역의 최나라는 “다른 배역과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다. 과거에도, 지금도 존재하는 용기를 내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다”고 했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